[山寺미학 .26] 산사 동백숲...눈부시게 푸르른 '春栢(춘백)'…붉은 꽃까지 피우니 그저 고마울 뿐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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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17 08:18  |  수정 2021-07-06 10:19  |  발행일 2020-03-17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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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시 옥룡면 백계산 자락에 있는 옥룡사지 동백나무숲. 옛 절터를 둘러싸고 있는 이 동백나무숲에는 100년 이상 된 동백나무 1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지금 한창 동백꽃을 피우고 있어 숲에 들어가면 동박새와 벌 등의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고창 선운사는 산 속에 있지만, 전각들이 평지에 건립돼 있다. 누각인 만세루가 큰 마당 한가운데 서 있고, 그 맞은편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전각들이 펼쳐져 있다. 선운사 경내 입구인 천왕문을 들어서면 만세루를 비롯한 전각들 대부분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세루 옆을 돌아 대웅전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전각들 뒤편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숲이 특히 눈길을 끈다. 대웅전과 그 좌우의 영산전·관음전 등 뒤로 푸른 숲이 띠를 이루며 좌우로 길게 펼쳐져 있다. 산사 전각들과 어우러져 특별한 분위기를 선사하는데, 바로 동백나무숲이다. 동백나무숲은 다른 수목들이 꽃이나 잎을 피우지 않고 있는 겨울과 초봄에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각별한 인상을 준다. 지금은 동백나무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어 더욱 볼 만하다.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멋진 고목 동백숲이 사찰 주변을 둘러싸서 보호하며 각별한 아름다움을 사계절 변함없이 선사하고 있는 산사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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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의 영산전 뒤쪽을 둘러싸고 있는 동백나무숲.

◆고창 선운사 등 동백나무숲

선운사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84호)은 2천여 그루의 동백나무 군락이 1만6천530㎡에 걸쳐 30m 정도 폭의 긴 띠 모양으로 조성돼 있다. 나무의 평균 높이는 6m 내외라고 한다. 가슴높이의 줄기 지름은 30㎝ 정도이며, 수관(樹冠: 나무의 줄기 위에 있어 많은 가지가 달려 있는 부분) 너비는 8m 정도.

이곳 동백나무를 정확하게 언제 심었는지 알 수 없으나 500년 정도 수령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운사 동백나무는 산불이 났을 때 사찰 전각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방화림으로 심어졌다고 한다. 동백나무숲은 대웅전 등 전각에서 15m 이상의 공간을 띄워 조성돼 있어 산불이 동백나무숲에 옮아 붙는다 해도 전각들까지는 쉽게 침범하지 못하도록 했다.


산사 둘러싼 수백년 동백군락
선운사·백련사 등 특별한 풍광
옥룡사지 숲 사찰 중 최대규모
산불·강풍 막아내는 역할 담당
열매 짠 기름 사찰재정 보탬도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51호)도 유명하다. 백련사 남쪽과 서쪽의 5만여㎡에 1천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 높이는 7m 정도. 이 동백나무숲은 고려 말 원묘 국사가 사찰을 중창할 때 방화림 등의 목적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스님들의 부도가 숲 속 곳곳에 있는 이 숲에 동백꽃들이 한창 피고 질 때면 붉은 비단을 깔아 놓은 듯한 바닥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동백나무와 함께 비자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 등 우리나라 남부 해안에서 자생하는 수종들도 자라고 있다.

구례의 화엄사 전각들도 동백나무숲이 보호하고 있다. 서쪽 산비탈과 접하고 있는 각황전과 원통전, 만월당 뒤쪽에 동백나무숲이 조성돼 있다. 이 숲이 언제 조성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정유재란(1597) 때 전각들이 전소된 후 각황전 등을 중건하면서 스님들이 심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해남 대흥사와 미황사의 동백나무숲도 아름다운 산사 풍광을 더하는데 한몫을 한다.

◆옥룡사지 동백나무숲

전각들은 사라져버리고 주변에 심었던 동백나무들만 지금까지 남아 지난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곳도 있다. 옛 절터인 광양 옥룡사지 동백나무숲(광양시 옥룡면 추산리)이다. 사찰 동백나무숲으로는 최대 규모일 것이다. 절터 주위에 조성된 동백나무숲은 7㏊에 이르고, 이 숲에는 100년 이상 된 동백나무 1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이 동백나무숲은 2007년 12월에 천연기념물 제489호로 지정됐다.

이곳 동백은 지금 꽃을 한창 피우고 있다. 지난 12일 이곳을 찾아갔다. 옥룡사지 입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니, 청량한 공기 속에 맑고 은근한 향기가 코를 즐겁게 했다. 무슨 향기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멀리 이곳저곳에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매화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백꽃은 향기가 거의 없다.

매화나무와 감나무가 있는 밭을 지나 옥룡사지를 향해 조금 올라가니 하늘을 가리는 동백나무 숲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속에 들어가니 바닥에도, 나뭇가지에도 붉은 동백꽃이 수를 놓고 있었다. 동백나무숲의 분위기를 즐기며 잠시 걷다 보면 동백 터널이 끝나고 옥룡사지가 펼쳐진다. 옥룡사지는 산비탈에 있는데, 석축과 주춧돌로 보이는 유적들이 조금 보이는 것 말고는 눈에 띄는 문화재는 없고 잘 관리된 잔디밭만 펼쳐져 있었다. 이 절터 사방을 모두 동백나무숲이 둘러싸고 있었다. 크고 작은 동백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동백나무숲에 들어가니 절정의 동백꽃에 드나드는 수많은 동박새와 벌들이 내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했다.

백운산(해발 1천218m)의 한 지맥인 백계산(505m) 남쪽 옥룡사지(사적 제407호) 주변의 이 동백나무숲은 옥룡사(玉龍寺)를 창건한 도선 국사(827~898)가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처음 심었다고 전해온다. 도선 국사는 옥룡사에 35년간 머물면서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으며, 이곳에서 입적했다. 옥룡은 도선 국사의 어렸을 때 이름이다.

광양시는 옥룡사지 동백나무숲 주변에 계속 동백나무를 더 심어 이 일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동백나무숲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산사에 동백을 심은 뜻은

산사의 동백나무숲은 방화림이자 방풍림으로 조성하거나 풍수지리적 비보 차원에서 조성한 것이지만, 사찰경제를 떠받치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동백나무 열매에서 짠 기름인 동백기름은 등잔불을 밝히는 용도 등으로 사용되는 스님들의 필수 생활용품이자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으로 가뜩이나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사찰경제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수입원이기도 했을 것으로 본다.

조성 당시 스님들이 동백나무를 심은 목적이 무엇이든, 사시사철 푸르름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동백나무숲으로 산사의 각별한 풍광을 누리게 해주니 고마울 뿐이다.

동백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 추백(秋栢), 동백(冬栢)으로 구분한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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