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28] 청도 대적사 극락전 기단...게·거북 노니는 '바다'에 불국정토 향하는 '용선' 띄운 듯

  • 김봉규
  • |
  • 입력 2020-04-15 08:05  |  수정 2021-07-06 10:18  |  발행일 2020-04-15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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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대적사 극락전(왼쪽)과 극락전 기단 오른쪽에 새겨진 거북과 게 등. 이것은 극락전이 불법을 깨달은 중생을 극락정토로 건네주는 반야용선이고, 기단은 바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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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대적사 극락전(왼쪽)과 극락전 기단 오른쪽에 새겨진 거북과 게 등. 이것은 극락전이 불법을 깨달은 중생을 극락정토로 건네주는 반야용선이고, 기단은 바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청도 대적사(청도군 화양읍 와인터널 근처)는 작은 암자 같은 사찰이다. 널리 알려진 사찰도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찾지도 않는다. 감나무밭으로 둘러싸인 마을 뒤쪽에 있다. 마을과 감나무밭을 지나면 나오는 산비탈 계곡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전각이라고는 극락전, 명부전, 산령각이 전부다. 하지만 극락전 하나만 해도 불교 문화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흥미를 가질 만하다. 특히 극락전 기단이 눈길을 끈다. 다른 사찰 기단에서는 볼 수 없는, 흥미롭고 아름다운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인 이 극락전은 18세기에 중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보물 제836호로 지정돼 있다.

얼기설기 짜맞춘 기단 면석에
여러 마리 수생동물 돋을새김
내륙 사찰서 볼 수 없는 사례

법당내 쌍룡 '반야용선' 상징
벽화엔 선두 맡은 인로왕보살
피안으로 중생 인솔하는 모습


◆거북과 게가 노니는 기단

극락전 앞면 기단은 석탑의 기단부처럼 면석(面石)들을 조합해 만들었다. 넓적하게 다듬은 면석의 아래와 위는 길쭉하게 다듬은 장대석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정교하고 치밀하게 맞춰져 있지 않아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진다. 중앙에 계단을 만들어놓았다.

좌우 기단의 면석에는 H자 모양의 굵은 선을 돋을새김한 것도 있고, 열십자 모양을 새긴 것도 있다. 그냥 아무런 무늬가 없는 면석도 있다. 면석의 크기도 같지 않다. 얼기설기 대충 짜 맞춘 듯하고, 기단석의 색상도 균일하지 않다.

이 바탕 위에 선과 선의 교차점이나 선 위, 면석 중앙 등에다 꽃이나 원, 꽃잎 문양 등을 새겨 놓고 있다. 특히 거북과 게가 눈길을 끈다.

기단 오른쪽의 가장 큰 면석에 새겨져 있는 거북과 게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로띠와 세로띠가 교차한 부분 중 세로띠에 새겨져 있다. 가로띠보다 넓은 세로띠에 새겨져 있다. 위쪽에 아래로 향하는 엄마 거북의 머리 앞에 작은 새끼 거북 한 마리가 있다. 머리는 왼쪽으로 향하고 있다. 엄마와 산보 나와 노닐고 있는 듯하다. 게는 그 아래에 떨어져 있다. 거북 가족을 향해 위로 걸어오고 있다. 게와 거북이 둑길에서 만나기로 한 모양이다.

이 오른쪽 면석에 보면 거북 한 마리가 더 있다. 이 면석에는 가로띠가 없이 좌우 양 끝부분에 세로띠를 양각해놓고, 그 가운데 커다란 꽃 한 송이를 새겨놓고 있다. 꽃잎을 세 겹으로 둥그렇게 조각했는데, 연꽃인 듯한 이 꽃의 한가운데에 작은 거북 한 마리가 놀고 있다. 이 꽃 양옆에는 꽃봉오리처럼 보이는 것을 하나씩 새겨놓았다.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거북은 계단석의 소맷돌에도 있다. 통돌로 만든 소맷돌 중 오른쪽에 보면 두 마리의 거북이 있다. 외곽선을 두른 안쪽에 여의주를 문 용 조각을 중심으로, 연꽃 봉오리와 파도를 형상화한 것 같은 나선형의 문양 등과 함께 거북 두 마리가 한가하게 노닐고 있다.

그 반대쪽 소맷돌에는 커다란 나선형 문양 두 개와 도끼날 같은 문양 아래에 꼬리와 머리 부분을 드러낸 물고기 한 마리가 새겨져 있다.

왼쪽 기단 면석에는 알 수 없는 추상적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가로띠와 세로띠가 만나는 부분에 사각 원 모양의 선이 하나 새겨져 있고, 그 오른쪽에는 가로띠 아래 세로띠 양쪽에 알 수 없는 문양이 두 개씩 새겨져 있다. 그 옆 면석에는 금강저가 연상되는 문양이 양쪽에 있다.

계단 맨 아래 왼쪽에 넓적한 사각 석판을 하나 세워놓았는데, 그 가운데에도 거북 한 마리가 새겨져 있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매우 흥미로운 기단 조각들이다. 부재들을 보면 그 크기나 색깔, 통일성 등의 면에서 처음부터 이 기단을 만들기 위해 장만한 것이 아니라, 다른 전각의 기존 기단석을 모아 사용한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이 기단석에는 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수생 동물들이 등장할까.

◆거북과 게가 등장하는 이유

전문가들은 이 극락전 전체가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반야용선은 사바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참된 지혜(반야)를 깨달은 중생은 이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정토로 간다. 사찰에는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정토로 향하는 모습이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법당 기단부를 바다로 표현해서 법당 전체를 반야용선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기단부나 기둥 초석에 거북이나 게, 물고기 등의 바다생물을 새기기도 하고, 연꽃을 활용하기도 한다.

해남 미황사 대웅보전과 여수 흥국사 대웅전 등에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미황사의 경우는 사찰의 연기설화(緣起說話) 자체가 극락정토에 닻을 내린 반야용선의 서사를 갖고 있다. 인도 왕이 경전과 불상을 배에 싣고 모실 곳을 찾아다니다 달마산 꼭대기에 1만 분의 부처가 나타난 것을 보고 찾아왔다는 미황사 연기설화를 반야용선으로 해석한 것이다. 대웅보전 주춧돌에 게와 거북, 연꽃이 새겨져 있는데, 주춧돌과 그 아래의 기단이 바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대웅보전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가 되는 것이다. 미황사의 부도밭 부도 조각에도 게와 물고기, 거북, 연꽃 등이 새겨진 경우가 많아 눈길을 끈다.

바닷가에 자리한 여수 흥국사 대웅전 기단부에는 거북, 게 등을 새겨 두었다.

하지만 내륙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이 대적사 극락전 기단의 사례는 다른 내륙 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 흥미롭다. 극락전 법당은 선실이며 기단은 바다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다. 극락전 중앙 어간 문 위 양쪽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데 이것도 법당이 반야용선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겠다

대적사 극락전이 반야용선으로 구상되었다는 사실은 법당 내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벽화 중 반야용선의 선두에 서서 승선자들을 인솔하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과 선미를 맡는 지장보살 등이 그려져 있는데, 이 벽화도 극락전이 반야용선임을 말해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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