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29] 경주 장항리사지 사자상...포효 대신 앙탈 부리는 사자상…선인들 여유·해학 정겹게 다가와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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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29 08:07  |  수정 2021-07-06 10:17  |  발행일 2020-04-29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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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장항리사지 사자상(아래)과 이 사자상이 새겨진 불상대좌. 귀엽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 보는 이를 미소짓게 만드는 사자상이다.

산사에 가면 다양한 동물을 만날 수 있다. 용, 봉황, 사자, 코끼리, 원숭이, 물고기, 게, 토끼, 거북 등을 사찰 건물과 석탑, 석등, 계단과 축대, 벽화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들 중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이 용과 사자다. 사자는 특히 석탑, 석등, 불상 대좌, 대웅전 앞, 기단석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문수보살이 타고 있는 동물도 사자다.

사자는 불교에서 석가모니 부처의 상징으로도 활용된다. 부처가 앉는 자리나 경전을 법문하는 자리를 사자좌(獅子座)라 한다. 사자후(獅子吼)라는 말은 사자가 내는 소리가 모든 동물의 소리를 잠재우듯이, 다른 모든 삿된 잡설들을 깨뜨리는 부처의 설법을 상징한다. 사자는 동물 중에 가장 강하기도 하지만, 또한 단체 사냥을 할 때는 매우 영리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으로 인해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인 문수보살이 타는 동물로 등장한다.

사자는 인도의 불교에 수용된 후 중국과 우리나라 불교에도 전래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사자가 용맹하기보다는 매우 친근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많이 변용돼 나타난다.

◆장항리사지 불상대좌 사자상

귀엽고 재밌는, 조각 솜씨도 뛰어난 최고의 사자상은 경주 장항리사지 불상대좌에 새겨진 사자상이 아닐까 싶다.

장항리사지는 깊은 산속 계곡 가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오층석탑 2기와 법당 건물터(금당지) 주춧돌, 불상대좌 등이 남아있다.


우리나라 불교에 전래된 사자
친근한 모습으로 많이 변용돼
장항리사지 작품 생동감 넘쳐
귀여운 자세로 웃음도 자아내

합천 영암사지 엎드린 사자상
햇살아래 조는 삽살개 보는 듯



이곳의 불상대좌(佛像臺座)는 아래와 위가 분리되어 있고, 팔각형이다. 아래쪽은 8면에 안상(眼象: 연화문과 함께 불교 장식에 사용되는 대표적 문양으로, 코끼리 눈을 형상화한 것)을 새긴 뒤, 그 안에 신수(神獸)와 신장(神將)을 새겼다. 위에 있는 원형 돌에는 아래위로 맞붙은 연꽃이 16송이씩 조각되어 있다. 대좌는 전체적으로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 솜씨는 탄성을 자아낸다.

이 대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웃음을 자아내는 귀여운 자세를 취한 사자상이다.

살아서 튀어나올 듯한, 생동감이 넘치는 귀여운 사자 한 마리. 새끼 사자가 먹을 것을 형한테 빼앗기자 분통을 터뜨리며 고함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입을 벌리고 혀를 드러낸 채 주먹을 쥔 두 앞발은 앞을 향해 내 지르고 있다. 하나는 쫙 뻗고 하나는 약간 굽은 상태다. 뒤쪽 왼발은 발가락으로 딛고 있고, 오른발은 살짝 들어 발가락을 움켜쥐고 있다. 엉덩이는 땅에 닿아 있다. 움켜쥔 한 다리로는 배를 차며 앙탈을 부리고 있는 듯하다. 한쪽으로 드러난 꼬리도 위로 치켜든 채 화가 잔뜩 났음을 말해주고 있다.

볼수록 재미있고 귀엽다. 집으로 데려가 키우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신성한 불단을 지키는 사자상인데도 이처럼 재미있게 표현하는 우리나라 석공과 스님들의 여유와 해학이 정겹게 다가온다.

이 절터가 근래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20년대.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1㎞ 지점에 금광이 생겨난 후였다. 그런데 1923년 4월28일 사리장치를 탈취할 목적으로, 광산에 쓰이던 폭약으로 오층석탑과 불상을 폭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후 1932년 석탑은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불상은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옮겼다가 몇 번의 복원수리를 거쳐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자리하고 있다.

당시 사자 부분이 파괴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온전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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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영암사지 금당 기단석에 새겨진 사자상.

◆영암사지 금당 기단 사자상

합천 황매산 영암사지에는 흥미롭고 소중한 석조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사자상 조각이 단연 눈길을 끈다. 보물로 지정된 쌍사자석탑의 사자 두 마리가 먼저 눈길을 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적지 않게 마모된 느낌이지만, 허리를 곧추세우고 화사석(火舍石)을 받치고 있는 사자 모습은 최고로 꼽을 만하다.

맛이 다르지만, 이에 못지않게 멋진 사자 조각들이 있다. 하나둘이 아니다. 각기 다른 모습의 사자상이 여덟 군데나 있다. 쌍사자석탑 뒤의 금당터 기단석 사방에 새겨져 있다. 흥미로운 사자들이다.

금당터에는 사방에 쌓은 기단과 각 면의 중앙에 놓은 네 개의 계단이 남아있다. 계단의 소맷돌은 한군데는 소실되고 세 군데만 남아있는데, 모두 가릉빈가를 조각해 놓았다. 전문가가 아니면 잘 분간하기도 어렵긴 하다. 가릉빈가는 불경에 나오는, 사람의 머리를 한 상상의 새다. 계단에 가릉빈가로 소맷돌을 장식한 것은 드문 일이다.

사자상은 이 금당터 기단의 면석에 조각해 놓았다. 따뜻한 햇살 아래 졸고 있는 삽살개마냥 순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자가 있고, 뒤로 머리를 돌려 으르렁거리며 경계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사자도 있다. 졸고 있는 듯한 모습도 있고, 웃고 있는 듯한 모습도 있다. 얼굴 부분을 강조해 돋을새김한 사자상도 있다. 이 사자상의 조각솜씨가 특히 돋보인다.

모두 사자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얼굴이나 꼬리 등이 개 모습에 더 가까운 사자상도 있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흥미롭다. 많이 마모되어 잘 분간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같이 생동감 있는 조각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사자는 '백수(百獸)의 왕(王)'으로 불리는 맹수로 불교에 다양하게 수용되어왔지만, 우리나라에는 살지 않아 동물원이 없던 옛날에는 그 실물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상이 가미되기도 해서 사자 같지 않은 사자상도 나타났을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 사찰의 사자상들은 무섭거나 근엄한 데 비해, 우리나라 사찰에는 이처럼 친근하고 재미있는 사자상들이 많다. 우리나라 승려나 석공들의 해학성과 창의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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