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30] 법당 수미단...부처 앉은 '수미산' 형상화...영원·안락 누리는 신비의 세계 한눈에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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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1 08:03  |  수정 2021-07-06 10:17  |  발행일 2020-05-21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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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흥암 극락전의 수미단.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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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은해사 부속암자인 백흥암의 극락전 수미단 서쪽 측면에 새겨진 문양들. 이 수미단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수미단으로 꼽힌다.

산사의 법당에 들어가면 불상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그 불상이 놓인 좌대가 있다. 이 불상 좌대를 수미단(須彌壇)이라 한다. 불교적 세계관을 나타내는 상상의 산인 수미산을 형상화한 단이어서 수미단이라 한다. 수미단은 보통 나무로 되어 있다. 수미단은 대부분 사각인 장방형이지만, 육각이나 팔각도 있다. 육각은 육바라밀(六波羅蜜: 피안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여섯 가지 수행 덕목)을 의미하고, 팔각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여덟 가지 수행 방법인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한다. 수미단은 통상 상단과 중단, 하단으로 구분된다. 수미단은 수미산의 초월적이고 환상적인 세계, 부처의 위신력에 의해 나타나는 상서로운 현상, 당시 사람들의 염원 등이 묘사돼 있는 곳이다. 여기에는 부처에 대한 환희심과 외경심이 다양한 형태의 문양 속에 담겨 있다. 대표적 수미단으로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양산 통도사 대웅전, 강화 전등사 대웅전, 동래 범어사 대웅전, 김천 직지사 대웅전, 밀양 표충사 대광전 등의 수미단이 꼽힌다. 이런 수미단의 조각은 당대 최고의 불교 조각을 보여준다.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

백흥암 극락전의 수미단(보물 제486호)은 조선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수미단 중에서 문양의 다양성과 조형미, 조각 기법 등 여러 방면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불단 가장 아래 받침 부분에는 귀면과 용을 조각했고, 맨 위에는 안상(眼象: 코끼리 눈 모양의 문양)을 조각했다. 받침과 몸체, 덮개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높이는 1.25m, 너비는 4.13m.

받침과 덮개 사이의 몸체는 3단으로 구획돼 있다. 정면은 15개면이고, 양 측면은 각 6개면이다. 모두 27개의 면으로 짜여 있다. 면마다 화려한 색채와 다채로운 형상의 동물과 식물 문양이 가득 차 있다. 일반적인 불단 장식과 달리 금니(金泥)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불상 좌대에 온갖 동식물 가득
적·황·녹 등 화려한 색채까지
당대 최고의 불교조각 보여줘
영천 은해사 백흥암 작품 백미


조각은 얇은 판자에 문양을 투각하면서 가장자리를 둥글게 처리해 부조 효과를 냈다. 완성된 투각판 뒤에 적황색을 칠한 얇은 판자를 덧댔다. 색채는 기본적으로 적색, 황색, 녹색, 흑색, 백색을 사용하고 있다. 용과 학 등의 동물은 특별히 금니를 칠했다.

서쪽 측면에는 연꽃 봉오리를 손에 든 가릉빈가, 여의주를 든 거북, 네 발 달린 물고기, 게, 사람 얼굴에 네 발 달린 물고기, 인두귀갑(人頭龜甲)에 새 발이 달린 동물, 달리는 기린, 물고기, 자라 등이 조각돼 있다. 동쪽 측면에는 물고기·여의주를 들고 있는 반인반어(半人半魚) 형상의 동물, 흰 호랑이 형상의 동물, 인두어신(人頭魚身) 형상의 동물, 기러기 형상의 새 등이 있다.

정면에는 흰 코끼리, 봉황, 연잎 줄기를 잡고 있는 동자, 황룡, 개구리, 여의주, 말 형상의 동물, 모란꽃, 용 발가락에 물고기 꼬리 형상의 동물, 공작, 국화, 두 마리 사자, 모란, 봉황, 연꽃, 사슴뿔의 익마(翼馬), 다양한 식물문양 등이 펼쳐져 있다.

이처럼 신비롭고 기괴한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극락전은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고, 아미타여래는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다. 불자들에게 서방 극락정토는 영원한 안락을 누릴 수 있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세계로 인식되고 있다.

'극락국토에는 밤과 낮 여섯 번 만다라화 꽃비가 내리고, 하늘에서는 백 천 가지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고, 땅에는 온갖 새들이 노닐고 있다. 흰 고니와 공작과 앵무, 사리조(舍利鳥), 공명조(共命鳥), 가릉빈가 같은 새들이 밤낮으로 여섯 때에 걸쳐 아름답고 온화한 소리를 낸다. 이 새들은 모두 아미타여래께서 법음을 널리 펴기 위해 화현(化現)한 것이다.'

극락정토의 정경을 설명한 '불설아미타경'의 내용이다. 여기에 나오는 가릉빈가를 백흥암 수미단에서 볼 수 있다. 하반신은 새, 상반신은 사람, 등에는 새 날개를 단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환성사 대웅보전 수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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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환성사 수미단에 새겨진 가릉빈가 문양.

수미단 문양 중에는 경산시 환성사 대웅보전의 수미단처럼 민화적 정감과 매력이 넘치는 문양도 있다. 나무로 된 수미단 전면의 12폭, 양 측면의 8폭에 다채로운 문양이 장식돼 있다. 받침에는 용과 귀면이 조각돼 있다. 귀면은 모두 정면상이고, 용은 불단 양쪽 끝에서 중앙을 향해 모여드는 모습이다.

문양 내용은 코끼리, 기린, 게, 사슴, 가릉빈가, 새 등과 함께 표현한 식물(꽃) 문양이 주종을 이룬다. 식물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모란, 국화, 인동, 연꽃, 접시꽃 등을 쉽게 구별해 낼 수 있다. 새는 한 문양 속에 한 마리만 있는 것도 있고, 한 쌍이 들어 있는 것도 있다. 한 쌍의 경우에는 수놈이 암놈 등에 올라타고 있는 것도 있다.

새 중에는 비익조도 있다. 비익조는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아니하면 날지 못한다는 상상의 새다. 부부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움, 애틋함, 우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꽃과 새를 주제로 한 화조 문양은 역사가 매우 오래됐다. 화조 문양은 자연계의 조화를 특별한 애정과 관심으로 보았던 동양인의 자연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환성사 수미단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동쪽 측면의 수면조신상(獸面鳥身像)과 서쪽 측면의 인물상 및 나찰상이다. 동쪽의 것은 새 몸에 짐승의 얼굴, 귀갑(龜甲)을 갖춘 괴이한 형상인데, 상서로운 기운이 뻗치는 여의주가 담긴 그릇을 머리에 이고 서있다.

서쪽의 사람 닮은 형상은 서기로 충만한 오색 구슬이 가득 담긴 그릇을 머리에 이고 서있다. 그리고 서쪽 측면 구석자리에는 쪼그리고 앉아 네모난 물건을 두 손으로 받쳐 든 붉은 몸의 난쟁이가 있다. 이것은 나찰로 알려진 인물상이다. 푸른 눈과 붉은 머리털을 가진 것이 특징인 나찰은 사람을 잡아먹거나 지옥의 죄인을 못살게 군다고 하는 고대 인도의 신이다. 후에 불교에 귀의해 부처님을 수호하는 신이 됐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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