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32] 부도...세월 흔적 가득한 '승탑'…노송 한 그루 벗삼아 나란히 서있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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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8 07:49  |  수정 2021-07-06 10:16  |  발행일 2020-06-18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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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면서도 예술성이 돋보이는 다양한 부도들이 늘어서 있는 여수 흥국사 부도밭. 소나무 왼쪽에 보이는 부도가 흥국사를 창건한 보조국사 지눌의 부도이다.

해남 대흥사는 입구의 산문에서 전각들이 있는 사찰 경내까지 이르는 길이 매우 길다. 동백나무와 편백나무, 전나무, 소나무 등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멋진 '십리숲길'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동백숲길을 지나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이라는 유선관(遊仙館)을 지나면 계곡을 건너는 다리 피안교가 나온다. 피안교를 건너 조금 올라가면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라는 편액이 걸린 일주문이 맞아주고, 좀 더 올라가면 길 오른쪽에 부도밭이 눈길을 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이 부도밭(浮屠田)에는 보기 드물게 많은 부도가 늘어서 '부도숲'을 이루고 있다.

스님들이 별세한 뒤 화장 후 그 유골을 모신 부도(승탑이라고도 함)가 몰려 있는 부도밭은 스님들의 공동묘지라고 할 수 있다. 산사의 부도밭은 보통 전각들이 있는 사찰 경내가 아니라 대흥사 부도밭처럼 경내로 들어가는 길옆이나 부근 산비탈 등에 따로 조성돼 있다. 부도는 보통 한 곳에 모여 있는데, 이런 부도밭은 산사의 특별한 볼거리다. 물론 부도밭이 아닌 곳에 따로 있는 부도들도 있다.

부도는 돌로 되어 있어 목재로 된 전각들과 달리 세월이 오래 흘러도 보존될 수 있다. 그래서 부도는 1천년이 넘은 것도 있고,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것도 있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모양이나 방식이 달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부도에 새겨진 문양 등도 흥미로운 경우가 적지 않다.

부도밭의 부도든, 외롭게 자리한 부도든 오래되어 주변의 자연에 동화된 듯한 분위기의 부도들을 접하면 각별한 감흥을 느끼게 된다. 근래 만들어진 부도는 너무 크고 형태도 아름답지 못할 뿐 아니라 정성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씁쓸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대흥사 부도밭

대흥사 부도밭에는 80여기에 이르는 부도(54기)와 부도비(27기)가 서 있다. 서산대사, 초의선사를 비롯해 대흥사에서 배출한 13 대종사, 13 대강사 등의 부도비(부도 주인공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 및 부도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사찰 들어서는 길옆·산비탈에
스님 유해 모신 '부도밭' 자리
자연과 동화돼 특별한 분위기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문양
석조미술 진수 보여주는 것도


이중 '청허당(淸虛堂)'이라고 새겨진 서산대사부도(西山大師浮屠)는 보물 제1347호로 지정돼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래의 팔각원당형의 부도 양식을 계승한 석조부도로 높이는 2.7m인데, 다른 부도와 비교해 형태나 조각이 매우 화려하다. 근처의 서산대사 부도탑비가 1647년에 건립된 것으로 되어 있어 부도 역시 이와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중대석과 상대석의 동물장식, 옥개석의 전각에 표현된 용과 상륜부의 장식이 눈길을 끈다.

초의선사 부도는 서산대사 부도 앞에 있다.

◆흥국사 부도밭

소박하면서도 인상적인 부도밭으로 여수 흥국사 부도밭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왼쪽에 보이는 축대 위로 부도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노송 한 그루가 가운데 서 있고, 그 양쪽으로 부도 12개가 일렬로 안치돼 있다. 모두 그다지 크지 않은 데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부도들이다. 산사 부도밭 중에는 근래 스님들의 유해를 안치한 부도를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너무 크고 화려하게 만들어 추가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부도밭은 그렇지 않아 좋다. 일부가 부서지거나 마모된 것도 있지만, 굽은 노송과 어우러져 더욱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흥국사를 창건한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부도를 비롯해 12개의 부도가 그 형태나 새겨진 조각이 각기 달라 흥미롭다. 특히 취해당(鷲海堂) 부도는 규모는 가장 작지만, 그 형태와 디자인이 매우 단순하면서도 현대적 미감에도 어울려 눈길을 끈다.

◆쌍봉사 철감선사 부도

화순 쌍봉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철감선사의 부도(승탑)는 국보 제57호로 지정된 대표적 부도다. 부도 전체에 치밀하고 정교한 장식들이 새겨져 있다. 특히 목조 건축물을 연상하게 하는 정밀한 탑신의 장식 표현이 돋보인다. 부도 전체의 장식이 매우 화려하고 비례와 구성미가 빼어난 부도로, 통일신라 하대 석조 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철감선사는 중국 당나라 유학 후 이곳의 아름다운 산수에 이끌려 절을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쌍봉사라 이름 붙였다. 868년 71세로 쌍봉사에서 입적하자, 왕이 '철감'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부도와 비를 세우도록 했다.

철감선사 부도는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신라시대 부도다. 하대와 상대로 이루어진 기단부와 탑신부, 그리고 없어진 상륜부로 이루어진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격식을 제대로 갖추었다. 2단을 이룬 하대석에는 하단에 구름무늬, 상단에 사자를 조각했다. 상대석에는 연꽃무늬(仰蓮) 위에 팔각 괴임대가 있다. 탑신에는 기둥 모양과 문짝, 사천왕상, 비천상 등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지붕돌(옥개석)은 기왓골을 조각하면서 끝부분은 암막새와 수막새 기와 무늬까지 표현했다. 처마에는 서까래와 부연까지 사실적으로 조각했다. 상륜부는 부재를 꽂았던 구멍만 지붕 위에 남아 있을 뿐이다.

◆연곡사 동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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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연곡사 동부도

구례 연곡사의 동부도(주인공을 알 수 없는 연곡사 부도 중 하나)는 기단으로부터 상륜부까지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부도의 형태도 매우 수려하여 통일신라 부도 중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국보 제53호.

팔각원당형의 이 부도의 바닥면은 사각으로 되어 있고, 하대부터 팔각형의 평면이 시작된다. 하대는 크게 3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단과 중단은 구름과 용무늬를 장식하고, 상단은 각 면에 굵은 테를 돋우고 그 안에 사자상을 배치했다. 중대에는 각 면에 안상을 내어 팔부신중상을 새겼다. 상대는 밑면이 연꽃받침모양을 이루고, 위에는 난간모양의 짤막한 장식기둥을 모서리마다 세웠다. 각 면에는 가릉빈가상을 새겨 넣었다.

몸체부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기고 앞뒷면에는 문틀, 자물통, 문고리 등을 표현했다. 문틀 좌우에 사천왕상을 배치하고 양 옆면에는 향로를 새겨 넣었다. 지붕은 서까래와 기왓골 등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상륜부는 앙화(仰花) 위로 사면에 날개를 활짝 편 새를 조각하고, 그 위로는 연꽃무늬 장식의 보륜을 올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표현이 매우 뛰어나며, 세부장식도 정교하고 세련된 감각을 발휘하고 있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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