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배우 정진영, 영화 '사라진 시간'으로 감독 데뷔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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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10   |  발행일 2020-07-10 제39면   |  수정 2020-07-10
관록있는 배우가 도전한 감독의 꿈…"예상치 못한 스토리로 이끌고 싶었다"

사라진.시간_촬영현장(정진영)
배우가 아닌 영화감독으로 돌아온 정진영이 '사라진 시간' 촬영현장에서 컷 사인을 하고 있다.

배우 정진영은 연극으로 이력을 시작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83학번이었던 그는 재학 시절 '서울대 총연극회'서 처음 연기에 발을 담갔다. 참고로 학내 단과대학별로 흩어져 있던 연극 동아리들을 한데 모아 1958년 서울대 총연극회를 만든 이는 배우 이순재였다. 80년대 당시에는 대부분의 대학이 그랬겠지만 정진영 역시 연극으로 학생운동을 했다. 그랬던 그가 정식으로 연극배우로 데뷔한 것은 1988년 극단 '한강'에서 올린 '대결'이라는 작품이었다. '한강'은 여러 대학 내 연극반 출신들이 졸업 후에 모여서 창단한 곳이었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이 가운데 그의 대학 후배였던 배우 김의성이 있었다. '대결'이 정진영의 연극 데뷔작이었다면 영화 데뷔작은 1992년 '닫힌 교문을 열며'였다. '파업전야'로 유명했던 영화제작소 '장산곶매'가 제작한 작품이었다. 그는 여기서 전교조 선생님 역을 맡았다. 제작 당시 전교조 문제가 민감한 시기라 극장 개봉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이후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를 통해 상업영화에 출연하며 30년 넘게 대중에게 관록 있는 배우로 각인되어왔다.

사라진.시간_포스터
'사라진 시간' 포스터.

그랬던 그가 이번에 배우가 아닌 영화감독으로 돌아왔다. '사라진 시간'이라는 작품으로 직접 시나리오까지 썼다. 배우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그가 영화감독으로 돌아온 것이 관객들에겐 퍽 놀라운 일이지만 사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영화감독을 꿈꾸어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열망했던 꿈이라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전세금을 빼서 프랑스 영화학교 유학을 준비하기도 했었다고. 조연이었지만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알려진 '초록물고기'도 원래 연출부로 참여했다가 배우 한석규가 연기했던 막동이의 형 역을 맡기로 한 배우가 잠수를 타는 바람에 대타로 출연하게 된 것이었다. 이후에도 정진영은 여러 차례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했지만 연이어 고배를 마셨고,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이명세 감독이 감독 말고 배우를 계속하는 게 어떠냐고 조언해 이를 받아들여, 1998년 김유진 감독의 '약속'에서 배우 박신양의 행동대장 엄기탁 역을 맡으며 이후 배우에만 전념해왔다.

사라진.시간_스틸.1(조진웅)
'사라진 시간' 스틸 컷

영화 '사라진 시간'은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발생한 의문의 화재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내려온 형사 '형구'가 하루아침에 집도, 가족도, 직업도 사라지고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충격적인 상황에 빠지는 작품이다. 지난 5월21일 열린 온라인 제작보고회에서 정진영은 "사는 게 뭔가, 나라는 존재가 뭔가 하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해왔고, 그 이야기가 이리저리 숙성된 것 같다"며 "그 얘기를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다. 관객이 다른 생각을 못하게 예상치 못한 곳으로 스토리를 끌고 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말하며 미스터리의 형식을 빌려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삶의 정체성'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작품을 구상하면서 형구 역에 배우 조진웅을 떠올리며 평소 그의 말투를 생각하고 그가 연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썼고, 탈고하자마자 건넨 초고를 읽고 하루 만에 조진웅이 출연을 결정했다고. 조진웅 역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히 미묘한 맛이 있었고 빨리 작업해 보고 싶었다. 해저에서 보물이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서울대 총연극회에서 연기와 첫 만남
연극무대 데뷔, 30년 넘게 배우 활동
한적한 시골마을에 의문의 화재사건
주연 조진웅 떠올리며 쓴 시나리오
탈고 하자마자 준 초고, 단번에 수락

"관객 기대 무너뜨리는 실험적 영화
열일곱살 때 소망, 쉰일곱 돼서 이뤄"



정진영처럼 그간 한국 영화계에서 배우에서 감독으로 데뷔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진 않다. 배우 유지태는 2003년 '자전거 소년'이라는 40분짜리 단편영화로 제20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후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2005), '니도 모르게'(2007) 같은 인상적인 단편을 선보이다 2013년 '마이 라띠마'라는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배우 박중훈은 '톱스타'(2013)를, 김윤석은 '미성년'(2018)을 각각 내놓은 바 있다. 배우 하정우 역시 '롤러코스터'(2013)라는 독특한 코미디물과 소설가 위화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허삼관'(2014)을 잇따라 선보였다. 여배우 가운데서도 상당하다. 배우 문소리는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어 호평받은 단편 세 편을 묶어 '여배우는 오늘도'(2017)를 만든 바 있고, 배우 구혜선은 제26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유쾌한 도우미'라는 단편을 시작으로 '요술'(2010), '복숭아나무'(2012), '다우더'(2014) 같은 장편영화를 잇따라 내놓았다. 배우 방은진은 2004년 '파출부, 아니다'라는 단편을 만든 후 '오로라 공주'(2005), '용의자 X'(2012), '집으로 가는 길'(2013), '메소드'(2017)를 잇따라 선보여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최근 '82년생 김지영'(2019) 역시 배우와 단편 연출을 병행해온 배우 김도영의 연출이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사라진 시간'의 누적관객수가 겨우 18만5천646명(7월8일 기준)에 그친 것은 마케팅의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 포스터라든가 예고편을 보면 이 작품은 영락없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매우 실험적인 영화로 장르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영화였다. 그러나 조진웅을 비롯해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단박에 수락을 할 만큼 이상하게 매력적인 영화이기도 했다.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의 취향이 극명하게 갈릴 것을 예상했고 흥행은 힘들 거라는 생각도 솔직히 했었다.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진영은 원래 '사라진 시간'을 독립영화 제작 방식으로 만들려고 했단다. 그래서 마음대로 만들고 싶어 시나리오 초안이 완성될 때까지 주변의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그런데 조진웅이 출연 수락을 하고 투자사까지 연결해주면서 상업영화 방식으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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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주인공이 느끼는 당혹감을 그대로 체험하게 하면서 던지는 질문이 묵직하다. 만약 당신이 '형구'와 같은 상황에 빠진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열일곱 살 때의 꿈을 쉰일곱에 이루게" 되어 쑥스럽다는 배우 정진영, 아니 정진영 감독의 이상한 에너지로 가득한 "용감한 데뷔작"(김성훈)에 이은 두 번째 '무모한' 시도를 기쁘게 기다린다.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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