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대구 중구 근대로의 여행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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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24   |  발행일 2020-07-24 제36면   |  수정 2020-07-24
추억의 긴 골목길에서 들리는 듯한 옛 살던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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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진골목 전경.

장미가 7월의 혀를 찌른다. 흘리는 피와 말이 섞여 비명이 된다. 7월의 장미꽃 눈부시고, 시나브로 붉은 아픔으로 피어나고 있다. 지난달 6월은 동족상잔의 최대 비극인 6·25전쟁이 터진 달이다. 6·25를 겪은 세대의 여름은 늘 가슴이 방망이질하고 피란 행렬, 상이군경, 영양실조로 번진 버짐이 얼룩반점을 그리는 아이들이 눈자위에 아롱거렸다. 그 어두웠던 시대의 밤에는 별조차 별 떡으로 보였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전쟁 중에서도 인간애가 넘쳐났기에 무지렁이 백성들은 애면글면 살았고, 그 길고 먼 고통의 날들을 건널 수 있었다.

그 몽롱한 6월의 환상이 사라지자 태양의 열기에 주눅 든 7월의 도시 빌딩들이 보였다. 그 공간 사이 어딘가에 피어 수채화가 되는 푸른 숲과 꽃. 문화재 보존과 아늑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대구의 경상감영공원. 지난 400여년 영남의 심장부였다. 지금은 도시 생활에 찌든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쌈지 공원이 되었지만 경상감영 안내도를 보고 가락을 뗀다. 돌아서면 '절도사 이하 개 하마'라 새겨진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이 비는 조선시대 경상감영 정문인 관풍루 앞에 있던 것으로 병마절도사 이하 관직은 말에서 내려 출입하라는 표지석이다. 병마절도사란 도의 병권을 맡은 책임자로 대개 종이품관인 관찰사가 겸임했다.

400여년 영남의 심장부 경상감영공원
푸른 숲과 꽃 아늑한 공간으로 태어나
하마비·시민의 나무조각상·모자상…
눈길만 스쳐도 느껴지는 대구의 명예

천재화가 이인성 파란만장한 삶과 화풍
근대역사관서 후덕한 한국인 얼굴 마주
종로 샛골목 진골목 들어서며 시간여행
첫 서양식 붉은벽돌 주택 정소아과 의원
지역 정치인·문인들 단골 명소 미도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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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골목에 있는 미도다방 실내.

안내도를 따라가면 '시민의 나무 조각상'이 있다. 대구시목(大邱市木)인 전나무와 대구시조(大邱市鳥)인 독수리를 형상화하고 그 아래 대구시민들의 사랑과 화합을 상징하는 아기를 안고 있는 모자상을 조각해 놓았다. 눈길만 스쳐도 어마한 대구의 명예를 느낀다.

선화당(宣化堂·대구시 유형문화재 1호)으로 발길을 옮긴다. 선화당은 '임금님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건물'이란 뜻이다. 즉 관찰사가 지방에 내려가 선정(善政)을 펼치라는 큰 의미가 담겨 있다. 감영에는 선화당, 징청각(澄淸閣), 내아인 응향당, 중군(中軍)이 집무하던 응수당, 별무사의 관덕당 등 다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선화당과 징청각만 남아 있다. 경상감영은 과거 경북 안동에 있었는데 경상 좌우도가 1601년 통합되면서 관찰사 김신원이 대구로 옮겨 왔다. 그 후 선화당과 징청각은 세 차례나 화재를 입었다. 지금의 건물은 1807년 경상도 관찰사 윤광안이 중건하여 내려오다 1970년 중앙공원 조성 시 원형을 옛 모습대로 보수한 것이다. 정청인 선화당이 남아 있는 곳은 충청, 강원, 경상 셋뿐이라고 한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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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진골목.

징청각(대구시 유형 문화재 2호)으로 간다. 관찰사의 살림집인 징청각도 선화당과 마찬가지로, 옛 원위치에 있다. 학계에서 발굴조사 결과 감영지가 확인됨에 따라 그 역사적 가치가 실증되었다. 이 공원은 그 터와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1970년 만든 것으로, 대구의 중심에 위치해 중앙공원으로 불리다가 1997년 경상감영공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어 옛 장독대 수레바퀴와 돌절구를 보고 옴니암니 선정비도 둘러본다.

선정은 수신(修身)에서 시작된다. 마음이 올바르고 정직한 정인(正人)이 아니고는 선정을 할 수 없다. 돈과 권력에 무릎 꿇고 아부와 결탁 패거리 정치로, 거짓과 위선 독단에 빠진 이념정치로, 바람도 불기 전에 먼저 누워버리는 나라를 망치는 요즈음 정치인들을 이 선정비 앞에 세워 징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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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영공원에 있는 하마비.

돌아 나오는데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1912~1950)의 1934년 작 '가을 어느 날'이 포스터에 걸려 있다. 엉너리치는 그림이 아니다.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한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한국에서 최초인 구상풍경화다. 그때까지 풍경화는 인물이 배경의 일부로 그려졌으나 이 작품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화풍을 선보이고 있다. 억세면서도 강한 붓질, 조밀한 공간 구성, 열정적인 원색 사용, 두터운 마티에르 등 후기인상파의 기법에서 더 나아가 토속성이 묻어나는 색을 사용, 조선의 향토성을 나타낸 그림이다. 특히 맑고 푸른 하늘, 농염한 흙빛을 한 인물의 피부색, 그 짙은 검붉은 흙색에는 한국인의 심호흡이 되는 한과 은근, 끈기가 있다.

이쯤이면 그림도 예술의 최고봉에서 줄을 서는 철학과 인문학을 갖는다. 1944년 발표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해당화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작이다. 이인성은 1912년 8월29일 대구 남성로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4남1녀 중 차남이었던 그는 빈곤으로 수창보통학교를 겨우 마치고 17세에 일제치하 미술전람회에서 입선했다. 뛰어난 그의 재능에 후원자가 나와 19세에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낮에는 아르바이트하고, 야간부 미술학교에 다니며 쉬지 않고 출품해 많은 상을 받는다. 23세에 귀국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1950년 11월4일 6·25 전쟁 당시 음주 후 야간통행금지령을 어기고 귀가하다가 경찰이 쏜 오발탄에 38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다. 그의 일생의 부침이 실로 파란만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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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영공원 안에 있는 선화당.

지척에 있는 대구근대역사관에 들른다. 안내는 김한임씨가 했는데, 요점만 간추려 은쟁반 울리듯 설명하고 얼마나 친절 유연한지, 공감의 감정에 몰입한 기쁜 시간이 되었다. 물론 볼거리도 감동적인 자료도 너무 많아 여기서 다 진술할 수 없지만 근대한국인의 얼굴(Modern Korean Faces)전이 열리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순수하고 후덕한 얼굴, 그 뚝배기 같고 청자 백자 같은 얼굴들. 근대 한국인의 얼굴은 무언의 의미를 준다.

거리로 나와 종로로 간다. 종로는 읍성의 여닫음을 알리던 종루(鐘樓)에 연원을 둔 거리다. 현재 우리는 무슨 종소리를 듣고 있는가. 빚의 올무에 걸려 허적거리고 공짜가 아닌데도 공짜같이 받아먹고 노예가 되는, 우리에게 누가 깨달음의 종을 울려 줄 것인가. 돈과 권력의 맛에 중독된 에덴의 뱀들이 감언이설로 국민을 사로잡고 유혹한다. 금지된 사과를 따 먹으라고. 치악산 뱀에게 칭칭 감겨 죽게 된 스님을 구원할 상원사 까치는 진정 없는가. 내 머리가 터지더라도 국민들에게 종을 울릴 종로의 까치, 대깨종(대가리가 깨어져도 종을 친다)은 어디에 누구인가. 힘들어 번 아웃되는 지금의 한국인. 그들의 얼굴에 자유와 영혼을 심어줄 영적 성형전문의는 정말 없는가.

종로의 샛골목인 진골목으로 들어간다. 한국관광의 별이자 한국관광100선에 오른,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대구 중구 골목 투어. 말하자면 보석 같은 골목으로의 시간 여행이다. 진골목은 '긴 골목'이란 뜻이다. 경상도 말씨로 '길다'를 의미하는 '질다'에서 따온 말이다.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 온 역사이자 문화다. 골목길은 소중한 문화재이고 상상의 공간이다. 대구근대 골목길의 조그만 여행을 통해 잊힌 추억과 살아있는 옛 생활을 찾는다. 진골목은 대구 토착세력이었던 달성서씨들이 곰비임비 모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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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영공원 종각과 분수대.

일본식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과 집의 건물들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에도 재력가 기업가들의 거주지로 알려졌다. 역시 붉은 벽돌로 지어진 양옥 건물, 정소아과 의원이 눈에 띈다. 이 건물은 1928년 대구에 최초로 지어진 서양식 주택이다. 그리고 팔능거사 서병오, 거부 서병국, 서우순 등이 살았던 집터와 고택들도 볼 수 있다. 근대의 성쇠가 얼락배락한 진골목에 미도다방이 있다. 미도다방은 한때 대구 정치인과 문인들의 명소였고 시인 전상렬의 단골 다방이었다. 근대 영화에 등장하던 영판 그 다방이다. 유명한 약차 값도 헐하다.

골목길은 이어진다. 어디서 옛 선조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간이 흘러도, 갓 경험한 새파란 기억들이 물 위에 뜬 풀잎처럼 흘러가도, 우리는 진골목의 투어를 잊지 못할 것이다. 진골목이 끝나고 종로로 나온다. 지나온 길이 마치 꿈속의 길처럼 아슴아슴하다.

글=김찬일 시인 대구 힐링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 대구 힐링 트레킹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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