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33] 적멸보궁...법당 밖에 모신 석가모니 부처 사리…독특한 미학의 공간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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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20 07:46  |  수정 2021-07-06 10:15  |  발행일 2020-08-20 제18면

불전(佛殿)이라고도 하는 법당에는 부처상이나 보살상이 봉안돼 있다. 대웅전, 원통전, 극락전, 비로전, 무량수전, 대적광전, 관음전, 명부전 등은 모두 그 이름에 맞는 다양한 부처상이나 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산신각에는 또 산신을 모시고 있다.

그런데 어느 산사의 중심 법당인데도 불구하고 법당 안에 불상이 없는 곳이 있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는 편액이 달린 전각이다. 불상이 없는 것은 예배의 대상이 법당 밖에 있기 때문이다. 적멸보궁의 예배대상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의 사리다. 이 사리가 봉안된 쪽으로 예배를 올릴 수 있도록 불단만 마련한 법당인 것이다.

이 적멸보궁은 눈에 보이는 불상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부근의 땅속이나 탑 속에 모셔진 석가모니의 사리를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그 시신을 화장하고 난 뒤에 남은 유골을 진신사리라고 말한다.

이런 적멸보궁이 있는 대표적 산사가 다섯 군데 있다. 영축산(양산) 통도사, 오대산(평창) 상원사, 설악산(인제) 봉정암, 사자산(영월) 법흥사, 태백산(정선) 정암사의 적멸보궁이다. 5대 적멸보궁으로 불린다. 궁(宮)은 건물 위계상 전(殿)이나 각(閣)보다 우위에 있다.

5대 적멸보궁 봉안 방식 제각각
통도사, 금강계단에 사리탑 봉안
법흥사는 법당 뒤 언덕 어딘가에
봉정암, 설악산 암반 위 오층석탑
정암사, 태백산 수마노탑에 안치
상원사, 적멸보궁 뒤 석비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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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적멸보궁 앞에 있는 금강계단. 석가모니의 사리가 봉안돼 있다.

◆통도사 적멸보궁

이런 적멸보궁은 산사에 독특한 미학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방식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통도사 적멸보궁은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향해 서 있다. 이 법당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을 비롯해 4개의 편액이 사방 처마에 걸려 있다. 통도사의 중심 법당인 이 법당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이 있는 쪽의 벽이 유리로 되어 있다. 이 법당에서는 불상이 아니라 금강계단의 진신사리탑을 향해 예배를 올리는 것이다.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적멸보궁 편액이 걸린 쪽 앞에 진신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이 있다.

석가모니 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금강계단 형태를 따랐다. 정사각형의 넓은 기단을 상하 이중으로 쌓고, 가운데에 연꽃모양의 받침돌 위에 종 모양의 사리탑을 봉안한 형태다. 네 모서리에는 계단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서 있다. 금강계단 뒤로는 잘생긴 소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법흥사 적멸보궁

법흥사 적멸보궁은 통도사 적멸보궁과 다르다. 사리를 봉안한 탑이 따로 없다. 적멸보궁 법당에서 바라보면 멀리 바위산 능선이 보이고, 그 앞으로 잔디로 덮인 거대한 무덤 같은 언덕이 펼쳐진다. 가장 앞쪽에 부도 하나와 석분이 눈에 들어온다. 석가모니 사리는 이곳 어디에 묻혀 있겠지만 정확한 장소는 알 수가 없다.

이곳 부도에 대해 석가모니 사리를 봉안한 부도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그 주인공은 밝혀지지 않았다. 전체가 8각 형태인데, 두꺼운 지붕돌 표현이나 높은 지붕돌의 꽃장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부도 옆에 석분이 있다. 신라 선덕왕 때 축조되어 승려 자장이 수도했다고 하나 그 형태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석분 밖은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석실(石室) 위를 흙으로 덮었다. 봉토는 높지 않으나 남쪽을 향한 입구의 정면만은 약간 높게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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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봉정암 오층석탑. 용아장성 능선의 암반을 기단석으로 삼아 세워져 있다.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은 법당인 적멸보궁과 사리가 봉안된 탑 사이의 거리가 매우 멀다. 법당에서 보면 아득한 거리에 있는 사리탑은 산등성의 거대한 암반 위에 서 있다. 작고 소박한 탑이다. 주위의 절경과 어우러져 철마다 시각마다 각별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진신사리가 봉안된 오층석탑은 설악산 소청봉 아래 해발 1천244m 높이에 위치하고 있다. 사리탑은 3.6m 규모로, 거대한 바위를 기단부로 삼아 16개의 연잎을 조각하고 그 위에 탑신을 안치했다. 상륜부는 횃불처럼 생동감이 있어 눈길을 끈다. '봉정암중수기'(1781년)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얻은 석가모니 부처의 사리 7과가 이 탑에 봉안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나라에서 석가모니 사리를 모시고 돌아온 자장율사가 사리를 모실 자리를 찾던 중 봉황이 인도한 자리가 바로 설악산 용아장성 능선 한 봉우리인 이곳이었다고 한다. 봉황이 인도하고 사라진 곳이 부처 형상의 바위 중 부처의 이마 부분이었다.

자장스님은 그 자리에 사리를 봉안할 5층 사리탑을 세우고 암자를 지은 뒤 봉황이 부처의 이마로 사라졌다 하여 암자 이름을 봉정암(鳳頂庵)이라 붙이게 되었다고 전한다.

사리탑 서쪽으로 설악산에서 가장 험한 능선이자 절경을 자랑하는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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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적멸보궁 뒤쪽의 산비탈 어디엔가 석가모니의 사리가 봉안돼 있다.

◆정암사·상원사 적멸보궁

정암사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 사리를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태백산에 수마노탑을 세워 안치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세운 것이다. 석탑은 정암사 적멸보궁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급경사를 이룬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평평한 대지를 만들고 석탑을 세웠다. 벽돌처럼 돌을 다듬어 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국보 제 332호. 높이 9m.

사적기에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나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영조 46년(1770), 정조 2년(1778), 고종 11년(1874) 등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쳤다.

오대산 상원사의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적멸보궁은 상원사를 지나 중대(中臺) 사자암 위쪽에 위치한다. 적멸보궁의 뒤편 어디엔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으나 정확한 지점은 모른다고 한다. 적멸보궁 뒤편에 사리를 모셨다는 증표로 탑 모양을 새긴 석비가 세워져 있다. 불상이 없는 내부에서 뒷벽에 뚫린 창을 통해 뒤쪽 어딘가에 묻혀있을 진신사리를 향해 예배하게 된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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