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35·<끝>] 자연미와 인공미...울퉁불퉁 자연석 위 나무 기둥…투박하지만 질리지 않는 '한국의 멋'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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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03 07:56  |  수정 2021-07-06 10:15  |  발행일 2020-09-03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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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석을 주춧돌로 사용한 경남 양산 통도사 극락전 주춧돌 및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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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 내소사 누각인 봉래루의 주춧돌과 기둥. 주춧돌의 모양과 크기, 높이가 다 다르다.

중국과 일본을 여행하다보면 말은 잘 안 통해도 한자 덕분에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보다는 훨씬 편안한 느낌이 든다. 거기다가 사람들의 겉모습도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아 크게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문화는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의식주 문화가 모두 많이 다르다. 그래서 흥미롭고 재미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같은 한자문화권에다 오랜 세월 같은 문화(불교, 유교)를 공유해왔는데도 왜 문화 차이는 생각보다 클까. 문화가 다르게 발전한 핵심적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기도 한다. 중국은 황제 중심의 '황제' 문화로 발전했으며, 일본은 무사로 상징되는 '칼'의 문화이고, 한국은 선비로 상징되는 '붓'의 문화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중국은 황제의 힘이 과시와 과장으로 치달아 엄청난 규모의 만리장성이나 자금성을 만들어내고, 일본의 경우는 무사의 칼로 상징되는 비정함이 정형적인 모습의 좌우대칭과 상하비례를 추구해 깔끔한 비례미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은 선비로 상징되는 붓이 가진 특성으로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움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한국 자연미와 일본 인공미

이런 한·중·일의 문화정체성으로 인해 중국과 일본은 인공미를 중요하게 여기고, 한국은 자연미를 추구했다. 같은 인공미라도 중국과 일본의 표현 방법이 다르다. 중국은 과장과 확대가, 일본은 정형화와 규격화가 특징이다. 일본의 인공미는 특히 비례와 대칭을 중요시하며 세밀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한국인은 인공적인 면을 오히려 가능한 거부하면서 자연으로 스며드는 성향을 보여준다. 그리고 외적인 면보다는 정신적인 면에 큰 의미를 둔다. 그래서 크기를 떠나 자연성을 받아들여 소박해보이면서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담장을 낮게 해서 자연과 소통하며 경계를 두지 않으려는 것도 이러한 특성과 연결된다. 이와 함께 창조적인 독창성과 해학성에 관심이 많고 뛰어나다. 이처럼 한국은 일본과는 반대로 규격화하는 것을 꺼려하고, 파격을 즐긴다.

산사 옛 전각 대부분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 덤벙주초 사용
돌마다 크기·모양·높이 제각각…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움 간직
인공미 두드러진 中·日 사찰, 주춧돌·기둥 모두 다듬어 사용
자연미 추구하는 한국 문화와 달리 세밀하고 정제된 느낌 강조


일본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인 인공미 강조는 정원문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의 정원은 수목이나 연못 등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 자연과의 동화나 친화를 도모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일본의 정원은 거의 모든 부분이 인위적으로 조작한 인공적 조형물로 이뤄진다. 대표적 예로, 일본의 전통적 정원 양식을 대표하는 교토 료안지(龍安寺)의 '석정(石庭)'을 비롯한 인공 정원을 들 수 있다.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으로도 불리는 석정은 정원의 중심 요소인 수목이나 물을 완전히 배제한 채 모래와 돌만으로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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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도후쿠지 비로보전의 주춧돌과 기둥.

◆주춧돌과 기둥에서 드러나는 미감

목재 건축물의 주춧돌이나 기둥에서도 한국의 자연미와 일본의 인공미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산사 건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주춧돌인 덤벙주초는 한국의 자연미를 잘 보여준다. 덤벙주초는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주춧돌로 사용한 것을 말한다.

납작한 돌을 사용하거나 울퉁불퉁한 돌을 평탄하게 다듬어서 나무기둥을 세우면 일도 쉽고 깔끔할 텐데, 제멋대로 생긴 돌을 그대로 두고 나무기둥의 하단을 돌 윗면 모양에 맞춰 다듬어 사용하고 있다. 울퉁불퉁한 자연석 주춧돌을 '덤벙주초'라 하고, 이 덤벙주초와 나무기둥이 한 몸이 될 때까지 닿는 면을 다듬는 일을 '그랭이질'이라고 한다.

기둥의 뿌리가 덤벙주초를 만나면서 자연과 인공이 하나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외국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만의 건축 문화다.

대웅전이든, 누각이든, 요사채든 이런 덤벙주초 건물을 산사의 옛 건물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자연석을 대충 그대로 사용하다보니 주춧돌마다 크기도 모양도 다르다. 높이도 차이가 난다.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는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극락전, 영산전, 용화전, 대광보전, 응진전, 약사전, 개산조당, 세존비각, 삼성각, 천왕문 등 대부분 전각이 덤벙주초를 사용하고 있다. 전남 구례 화엄사도 보제루, 대웅전, 원통전, 나한전, 명부전 등 옛 건물은 덤벙주초이고, 각황전은 자연석과 다듬은 돌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대구 동화사 대웅전, 충남 논산 쌍계사 대웅전, 전북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전북 고창 선운사 대웅보전 등 문화재 전각들은 대부분 덤벙주초이다.

덤벙주초에 올리는 기둥도 일정한 굵기로 다듬지 않고 굽은 자연상태 그대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사의 건물들을 보면 일정한 규격으로 다듬은 주춧돌은 오히려 찾아보기가 어렵다. 자연의 불규칙성을 일부러 다듬어 규격화하기보다 그대로 활용하며 그 가운데 아름다움을 찾는 미적 감각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덤벙주초 보이지 않은 일본 사찰

일본의 사찰은 우리와는 다르다. 닌나지, 료안지, 도후쿠지, 긴카쿠지, 기요미즈데라, 덴류지 등 교토의 여러 사찰을 둘러보았지만, 우리 같은 덤벙주초는 보이지 않았다. 둥글게 다듬든지, 사각으로 다듬든지 해서 모두 같은 모양 같은 크기로 만든 주춧돌을 사용하고 있다. 너무나 똑같이 세밀하게 다듬어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같이 보인다. 기둥도 마찬가지로 같은 굵기로 다듬은 것만 사용하고 있다.

중국 사찰도 마찬가지다. 주춧돌이든 기둥이든 일정하게 다듬어 사용하고 있다.

우리 같은 자연스러움이나 파격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본이나 중국의 이런 전각들을 접하면 우리와는 다른 모습에 잠시 눈길이 갈 뿐이지 정이 가지 않는다. 마음 깊은 곳에서 감흥이 일어나는 경우는 경험하기 어렵다. 물론 그들의 느낌은 다를지 모르지만.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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