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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
신라시대 유명 인사 3인의 이름을 풀이해 보면 6~7세기 우리말을 캐낼 수 있다. 신라의 불교 수용에 공을 세운 이차돈의 성이 이(李)씨인 줄 아는 이가 더러 있다. 한자어로 異次頓(이차돈)이라 적기 때문에 이씨가 아님은 금방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이차돈의 성은 박(朴)씨이고, 이름은 염촉(厭)·이차(異次)·이처(伊處) 등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염(厭)은 '밉다·싫다'는 뜻이고, 촉()은 이차돈의 돈(頓)과 함께 이름 뒤에 붙은 접미사다. '수돌이'나 '복돌이'에 붙은 '돌이'와 비슷한 접미사이며, '-도'로 발음되었을 듯하다. 한자로 적은 異次(이차)와 伊處(이처)는 동사 '이철-'(싫어하다)을 가차 표기한 것이다. '이철-'이란 낱말은 15세기 한글 문헌에 '아철-'로 나타나 있다. 신라 사람들이 이차돈을 불렀던 발음은 '이쳐도·이치도' 정도가 되고, 그 뜻을 풀면 '싫은이·미운이'가 된다.
신라 사람들은 하늘과 자연을 숭배하는 토착 신앙을 갖고 있었다. 이것을 풍도(風道)라고 불렀으며, 화랑도들이 명산대천을 다니며 수련한 것은 풍도의 실천이었다. 이차돈은 법흥왕을 돕기 위해 토착 신앙에 반하는 새로운 종교, 즉 불교 수용을 주창했다. 새로운 사상이나 종교를 처음으로 들여오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의 미움을 사기 마련이다. 이차돈 역시 많은 사람의 증오 대상이었고, 이런 까닭에 당시의 서라벌 사람들은 그를 싫어해 '이쳐도'라고 불렀던 것이다.
태종 무열왕이 즉위했을 때 당나라 사자가 황제의 조서를 가지고 신라에 왔다. 조서의 어려운 한문을 아무도 풀이하지 못하니 왕이 강수를 불러 물었다. 강수가 왕 앞에서 한문을 다 풀이하니 뜻을 모두 알게 되었다.
왕이 놀라고 기뻐하며 성명을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신은 본래 임나가라 사람이며 이름은 '쇠머리'(牛頭·우두)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대답하되 "경은 머리에 높은 뼈가 있으니 강수선생(强首先生)이라 칭함직하다"라고 했다. 이로부터 그의 이름은 우두에서 강수로 바뀌었다. '牛頭'를 우리말로 읽으면 '쇠머리'가 된다. '强首'를 우리말로 읽으면 '센머리'가 된다. '쇠머리'와 '센머리'는 발음이 비슷하다. 좋은 뜻의 한자로 바꾸었지만 원래 이름이 가졌던 뜻을 살린 것이다.
원효(元曉)는 한반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승려이자 탁월한 불교 사상가다. 원효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보면 7세기의 신라말에 쓰였던 '설'(설날의 설)을 찾아낼 수 있다. 삼국유사에 원효의 속성(俗姓)은 설(薛)이고, 스스로 원효(元曉)라 칭했으며, 당시 사람들은 그를 '始旦'(설)이라 불렀다고 했다. 元曉를 원효라고 말하지 않고, 고유어인 '설'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는 증언이다. 元曉란 이름은 '으뜸 새벽' 즉 1년 첫날 새벽이란 뜻이다. 설날을 한자어로 원단(元旦)이라 한다. 시단(始旦)에도 旦(단)자가 들어 있다. 始는 처음 시작한다는 뜻이고 旦은 아침이다. '시작 아침'은 설날을 뜻하는 元旦과 뜻이 같다. 따라서 始旦을 고유어 '설'로 읽은 것이다. 일본어의 한자 훈독 방식과 같다. 원효의 속성은 설(薛)이다. 이것은 고유어 '설'을 한자 '薛'로 표기한 것이다. 薛(설), 元曉(원효), 始旦(시단)이란 한자 표기는 모두 고유어 '설'을 적은 것이다. 신라 사람들의 이름은 물론 그들이 붙인 땅이름 '달구벌'(대구)이나 '압량'(경산)에도 1천500년 전 조상들이 썼던 한국어 화석이 박혀 있다.
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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