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부촌-중·남구 거쳐 수성구 부상…대구의 부촌, 다음은 어딜까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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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09   |  발행일 2020-10-09 제33면   |  수정 2020-10-09
조선시대 양반촌, 1960년대까지 이어져
봉덕1동 근처 한옥 200여채 지어졌지만
1972년 한옥건축 금지로 양옥시대 열려
부촌 중구서 봉덕·대명 등지로 '서남진'
80년대 유럽풍…90년대부턴 고급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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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촌(富村)의 사전적 의미는 부자가 많이 사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부촌이란 개념이 없었다. 그냥 '양반촌'으로 불렸다. 이춘호 영남일보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가 2007년에 취재, 영남일보에 게재된 기사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 대구의 부자들은 한옥에 주로 살았다. 1965~66년 남구 봉덕1동 근처에 200채의 한옥이 지어졌다. 그때 지역 부자들은 한옥에서 살았다. 하지만 1972년 1월1일 한옥시대는 마감을 한다. 정부에서 산림정책 일환으로 한옥 건축을 금지했다. 이때부터 한옥 부자들이 도심을 벗어나 새집을 지어 이사를 간다. 이때부터 '양옥=부자'란 등식이 성립된다.

1970년대부터 지역 부촌은 대명동쪽으로 서남진(西南進)한다. 영남대병원 후문 길 건너 대명1·3동 언덕에는 경북광유 박진희 회장, 동국직물 백욱기 회장 등 지역의 내로라는 CEO들이 몰려든다. 자연스럽게 '대명동은 부촌'이란 인식이 싹튼다. 이 무렵 편리한 도심생활이 담보되는 중구도 대표적인 부촌으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부촌은 더 남하해 앞산 옛 중앙정보부가 있던 남구 대명9동으로 이동된다. 대표적인 집이 이효상 전 국회의장 집. 기존 잿빛 스타일에서 벗어난 유럽풍이다. 이 집 스타일이 1980년대 부호들이 가장 선호했던 적벽돌조. 현재 일송명가 식당으로 변한 미문화원장 집도 그 스타일이다. 특히 18번 도로 상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누나 집이 있어 숱한 화제를 낳았다. 경찰이 늘 그 집 근처에 초소를 두고 24시간 경계하는 바람에 도둑들은 대명9동만은 건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잘나가던 이 지역도 아파트 붐에 밀려 버렸다. 급격한 인구 유입으로 도시가 팽창함에 따라 공동주택인 아파트 건설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부촌이 특정 지역에서 벗어나 신축 아파트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과거 도심으로 자리잡았던 중구와 남구에서 벗어나 각 구별로 부촌을 형성을 시작한 시기다.

1980~90년대 부촌 아파트의 특징은 5층짜리 저층 아파트에서 벗어나 고층 아파트의 공급이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형 면적의 인기는 물론 평당 분양가도 소형 면적보다 비싸게 책정됐다. 아울러 세대 내부의 마감재 수준도 보급형이 아닌 고급형이 등장했다. 시공사는 대구지역 빅3 건설업체였던 청구·우방·보성에서 건설한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여기에다 이 시기 부촌의 공통점은 편리한 교통입지에 하나 같이 브랜드 대단지들이다. 이 같은 공식은 현재에 접목시켜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시공사별로 이 시기의 대표적인 부촌을 살펴보면 청구의 경우 △서구 내당동 광장타운(1984년 3월 준공) △달서구 송현동 그린맨션(1984년 11월 준공) △남구 봉덕동 효성타운(1988년 3월 준공) 등이 있다. 우방은 상대적으로 수성구 쪽에 집중돼 있다. △수성구 수성1가동 신세계타운(1989년 12월 준공) △수성구 범어동 궁전맨션(1988년 6월 준공)이 있다. 보성은 △서구 내당동 황제맨션(1988년 12월 준공) △중구 남산동 황실맨션(1993년 3월 준공)이 부촌으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인터넷 청약제도가 없어 선착순으로 분양했는데 빠른 입장순서 확보를 위해 모델하우스 오픈 3일 전부터 입장을 대기하던 줄이 수백 미터나 늘어선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같은 현상은 도시의 발전과 더불어 도심의 영역이 넓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에는 도심과 함께 부도심이 급부상하던 시기로 주거지역으로 복잡한 도심보다는 상대적으로 쾌적한 부도심이 더 인기가 있었다. 아울러 각 건설업체들이 비싼 도심의 땅값을 피해 주변지역으로 공급을 확대했던 것도 부촌의 무게중심이 도심에서 부도심으로 이동한 계기가 됐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구지역에서 어떤 아파트가 부자 아파트로 자리매김했을까. 2006년 대구지역에서 6억원 이상부터 부과되는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 주택이 처음 등장했다. 수성구 범어4동 303~363㎡ 규모의 빌라인 우방 엘리시온. 분양가격은 9억2천만~11억5천만원. 2005년 6월부터 VIP만을 대상으로 홍보에 들어간 엘리시온은 철저하게 '부티크 마케팅'을 택했다. 1987년 분양한 두산오거리 근처 경일원 14가구도 명품으로 통한다. 2006년 당시 집값은 10억원 이상을 넘었다.

2007년 국세청이 발표한 기준시가를 기준해 대구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는 수성구 황금동 태왕아너스 287㎡(6억4천만원), 수성구 지산동 경일원 297㎡와 수성구 만촌동 메트로팔레스 2단지 297㎡가 2·3위를 차지했다. 이밖에 수성4가 수성하이츠 297㎡, 황금동 화성고려파크뷰, 상동 정화우방팔레스, 달서구 용산동 용산롯데캐슬, 수성구 범어동 우방하이니스, 수성4가동 우방사랑마을, 수성구 대우트럼프월드, 유림 노르웨이 등도 '부자 아파트'로 통했다.

당시 고가 아파트의 특징을 살펴보자. 거실 전면이 통유리창이었다. 수입 자재와 천연대리석으로 마감된 유럽풍 욕실이 유행했다. 특수악취배출장치 기능을 갖춘 비데가 놓여 있었다. 거실 안쪽에 위치한 드레스룸, 붙박이 수납장, 차음도어 시스템이 구비돼 있었다. 이 무렵 고가아파트를 중심으로 '홈네트워킹'이 도입됐다. TV 한편에는 손님 방문을 알려주는 신호가 뜬다. 지하주차장에 들어왔다는 신호가 울리면 손님은 자동으로 내려간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집으로 올라온다. 만약 아파트 단지 내의 놀이터 풍경을 보고 싶다면 무선PC인 홈패드를 조작해 CCTV에 찍힌 그 모습을 TV로 볼 수 있다. 인테리어 기능에 초점을 맞춘 시스템 에어컨이 천장에 장착돼 있었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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