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가기 딱 좋은 청정 1번지 영양] <7> 외씨버선길 영양 구간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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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1   |  발행일 2020-10-21 제22면   |  수정 2020-11-27
장계향·오일도·조지훈…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와 문학의 향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영양 출신 시인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다. 이 시에서 이름을 딴 길이 있다. 이름도 어여쁜 '외씨버선 길'. 경북 청송·영양·봉화, 강원도 영월 4개 군의 마을길과 산길을 이은 총 170㎞의 길이다. 

이 중 영양 구간은 제4길부터 제7길까지다. 이 가을 그 길은 폭염과 장마를 이겨낸 풍요와 치열하게 불타오르는 단풍 속에 있다. 치맛자락 끝에서 보일 듯 말 듯한, 그 오이씨처럼 볼이 조붓하고 갸름한 외씨버선 같은 길이…. 좁다란 산길이 이내 끊어질 듯 나아가고 산허리를 안고 돌아서면 길은 다시 이어진다. 숲길은 보일 듯 말 듯 휘어지고 들길은 물길과 함께 굽는다. 

그 길에는 눈부시게 안온한 자연이 있고, 역사의 놀라움과 아픔이 있고, 치유와 희망의 전언이 있고, 땅이 품어온 최고의 이야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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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버선길 제4길 장계향 디미방길은 청송 고현지에서 시작해 영양 입암면 선바위까지 18.3㎞ 구간이다.


#1. 제4길 장계향 디미방 길(18.3㎞, 6~7시간)
☞청송고현지~진시골~지경리재~지경리마을~두들문화마을 음식디미방~옥계1리~옥계지~임도삼거리~입암면사무소~신구2리 마을~선바위

길의 시작은 청송의 고현지다. 저수지를 지나고 사과밭을 지나고 고추밭을 지난다. 곧 햇빛 쟁쟁한 진시골을 지나면 지경리재 입구에 닿는다. 지경이란 땅의 경계, 그러니 이 재를 넘어서면 영양 땅이다. 하늘이 열린다. 골짜기가 마치 소의 구유처럼 생겼다고 해서 구싯골이라 불리는 지경리.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과수원에서 노랫소리 들리고 뜨거운 단풍들이 푸른 배추밭을 내려다본다.

언덕 몇 개를 넘어 화매천을 건너면 두들마을이다. 마을 입구의 낙기대 쉼터를 서성인다. 아침저녁으로 이곳을 거닐던 선비는 굶주림도 즐겁다고 읊었다. 그는 석계 이시명. 바위에 새긴 이는 그의 넷째아들 항재 이숭일이다. 작가 이문열의 광산문학연구소가 있고 고택들이 즐비한 이 마을을 여유롭게 돌아보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길이 이끄는 곳은 장계향의 '음식디미방'이다. 석계의 부인이자 여중군자라 칭송받는 장계향이 400여 년 전에 쓴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을 바탕으로 전시·교육·체험 등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녀의 이름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에 헌정되었다.

두들마을을 지나 옥계마을의 드넓은 콩밭과 배추밭을 벗하며 긴 길을 걷는다. 옥계지를 지나면 산길이다. 폭신하게 쌓인 낙엽 밟는 소리만이 적막을 깬다. 길은 이내 임도삼거리에 닿으며 환해진다. 왼쪽은 입암면소재지로 향하는 외씨버선길, 오른쪽은 양향약수로 가는 길이다. 옛날 땀띠가 나거나 몸이 아플 때 옥계 사람과 입암면 사람들이 이 길을 넘어 다녔다. 이어지는 임도는,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마음 저려오는 길이다. 그러다 길은 미끄러져 내려가며 저 아래 반변천 물길이 너른 들을 부드럽게 헤엄치는 전경을 펼쳐 놓는다. 입암면이다. 신구리의 150년 된 회화나무와 기암정을 지나고 신라시대의 것이라는 신구리 3층 석탑을 스치면 저 멀리 들판 너머로 우뚝 서 있는 선바위가 보인다. 종점이다.


전체 거리 51.8㎞ 끊어질 듯 이어져
두들마을선 '음식디미방' 체험 가능
선바위관광지·연꽃테마단지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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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버선길 제5길 오일도시인의길은 11.5㎞ 구간으로 4~5시간 걸린다. 영양 출신의 항일저항 시인 오일도의 이름을 따 조성한 구간이다.


#2. 제5길 오일도시인의길(11.5㎞, 4~5시간)
☞선바위관광지~석문교~영양 산촌생활박물관~학초정~침벽공원 측백나무수림~오일도 시공원~감천1교~세월교~진막골~영양객주
☞석문교에서 왼쪽으로 나 있는 남이포 산책로를 따라 애기선바위까지 다녀와도 좋겠다. 나무데크 산책로와 아주 좁은 벼루길이 이어지는 길로 레이스 같은 빛 그늘에 싸인 단풍터널이다. 애기선바위는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이란다.

출발은 선바위관광지다. 영양의 자연8경 중 한 곳인 선바위는 남이 장군의 전설 중 역모를 꾀하던 용의 아들들을 토벌하고 훗날을 위해 산맥을 잘라 물길을 돌려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산책로를 따라 물길을 향해 안쪽으로 들어가 석문교를 건넌다. 층층 절벽 아래 오솔길이다. 폭신폭신한 황금빛 솔잎을 지르밟고 나아간다. 영양 산촌생활박물관 정문에서 31번 국도를 건너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길은 땀 흘려 키운 농작물들의 중간 기착지. 낮잠과 같은 평온을 살금살금 지나면 콸콸 감천수로가 시작된다. 감천수로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농사용 물길로 약 1.2㎞ 구간은 마을 주민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수로를 지나 반변천을 가로지르는 감천교를 건너면 효종 때의 정자 학초정을 마주한다. 고아한 솟을대문과 정갈한 토석담 너머로 솟구쳐 오른 노송을 마음에 담고 마을 뒷길을 통과해 감천보를 건넌다. 오른쪽에는 절벽에 뿌리내린 측백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곧 천변에서 벗어나 감천마을로 들어간다. 400여 년 전에 터를 잡은 낙안 오씨 집성촌이자 오일도(吳一島) 시인의 생가와 시공원이 있는 마을. 오일도의 본명은 희병(熙秉)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민족적 양심을 저버리지 않은 지사이자 항일시인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잡지인 '시원(詩苑)'을 창간하고 숱한 문인들을 지원했던 인물이었다. 마을에는 흙돌담길이 부드럽게 일렁이고 삼천지 제방에는 아름다운 소나무가 굼실댄다.

이제 감천1교를 건너 반변천 적벽과 나란히 간다. 세월교를 넘고 진막골을 지나 오르막 산길을 내려오면 영양 읍내다. 영양 전통시장 앞에 종점인 '영양객주'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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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버선길 제6길 조지훈문학길은 아름답고 청량감 넘치는 산과 들, 나무가 곳곳에서 이어진다. 총 13.7㎞ 구간으로 여유있게 걸으면 5~6시간 걸린다.


#3. 제6길 조지훈문학길(13.7㎞, 5~6시간)
☞영양전통시장~삼지연꽃테마단지~상원3리 징검다리~영양향교~지훈문학관~척금대~주실마을
☞제6길 이곡교에서 외씨버선길을 도보로 완주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조성된 6-1 영양 연결구간 18㎞가 시작된다. 이정표와 리본표시 등 기본적인 시설만 설치되어 있지만 다른 구간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걷기 좋은 길이다.

영양시장 앞 영양객주에서 출발한다. 1918년부터 이어져 온 영양시장은 지금도 매월 4일과 9일에 열리는 5일장이다. 찻길 따라 영양중앙초등과 영양교육청을 지나면 삼지연꽃테마단지가 펼쳐진다. 공원을 반 바퀴쯤 돌아 길을 이어간다. 삼지리 마을 입구에 늘어서 있는 나무들을 우러르며 연꽃의 화양연화를 떠올린다.

삼지2리를 지나면 산길에 들고, 노루목재를 넘으면 상원리 논두들마을이다. 징검다리로 반변천을 건널까 아니면 조금 우회해 갈까. 하늘이 하라는 대로 혹은 마음이 동하는 대로 어디로든 좋다. 곡강팔경의 으뜸인 척금대를 왼쪽 멀리에 두고 길은 금촌 산길로 뚜벅뚜벅 나아가다 곡강교를 건너 일월면행정복지센터로 간다.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면 조선 숙종 때 건립된 향교를 만나고 918번 지방도를 따라 북향하면 종점인 주실마을 지훈문학관이다. 아름다운 산과 들의 극치 끝에 시인의 집이 있다.

#4. 제7길 치유의길(8.3㎞, 3~4시간)
☞일월산자생화공원~햇님달님버스정류장~대티골~아름다운숲길~영양옛이정표~칠밭목삼거리~영양봉화경계 옛 이정표~우련전

치유의길 시작은 일월산 자생화공원이다. 일제강점기 광물 수탈을 위한 선광시설이 있던 이곳은 이제 일월산의 고운 풀꽃들로 뒤덮여 있다. 31번 도로를 따라 오르면 추수를 끝낸 고추밭 사이에 용화사지 3층 석탑이 서 있다. 다가선 산들은 가을로 불타고 있다. 곧 햇님달님 버스정류장이 용화리 대티골을 알린다. 고요한 대티골로 스며들어 청량감 넘치는 계곡을 따라 걷는다.

다시 31번 국도를 잠시 만났다가 옛 31번 국도로 들어선다. 일제강점기 선광장에서 제련한 광물들이 이 길을 달려 운반되었다. 지금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낙엽송림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느린 우체통을 지나고, 쉼터도 지나고, '영양 28㎞'라 쓰인 낡고 녹슨 이정표를 지나 칠밭목 삼거리에 닿는다. 왼쪽은 대티골 숲길로 향하고 외씨버선길은 오른쪽이다. 그리고 영양군과 봉화군의 경계를 알리는 옛 이정표를 마주한다. 이제 종점이 멀지 않다. 옛길에서 벗어나 콘크리트길가에 모여 앉은 낙엽을 밟으며 간다. 끝은 우련전이다. 조선 말 신유박해를 피해 들어와 살던 천주교 신자들이 함께 집단생활을 했던 성지다. 영양터널을 사이에 두고 31번 국도가 봉화로 간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영양군 누리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누리집, 한국지명유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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