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개념 학습과 존재 학습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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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6   |  발행일 2020-10-26 제13면   |  수정 2020-10-26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물질세계는 진짜 세계의 그림자다. 진짜 세계인 영(靈)의 세계는 우리가 만들어 낸 베일 뒤에 숨어 있다. 실로 우리를 얽매는 것은 공간, 시간, 물질, 인과 등이 아니라 진실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베일이다. 그 베일 중 하나가 바로 개념이다.

    물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념이 필요하다. 우리가 저것이 산인 줄 아는 것은 그것이 산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물인 줄 아는 것은 사람들이 물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진리 역시 하나의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삶도 개념이고 죽음도 개념이다. 행복도 개념이고, 평화도 개념이다. 그러나 베일 뒤에 있는 저 바람과 나무, 참새와 어린아이, 태양은 존재다. 태양이라는 개념에는 따뜻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이라는 개념은 실제의 태양보다 훨씬 차갑다.

    개념의 틀로 소리 높여 요구하는 마음, 찾아 헤매는 가슴은 태양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태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자의 편이기 때문이다. 고요한 대지와 우뚝 솟은 굴참나무는 태양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대지와 굴참나무는 아무런 노력 없이 태양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존재는 개념이 아니며 결코 개념화될 수 없다. 존재는 개념을 초월한다. 개념은 그것과 그것 아닌 것의 경계선을 갖지만 존재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물론 가장자리도 없다. 우리는 존재인 사람이 아니라 사람인 존재다. 그렇다면 어떻게 존재를 배울 수 있을까? 침묵 속에서 머릿속 잡념을 비우고 나의 몸과 마음을 영혼의 고요한 평화에 담금으로 배울 수 있다. 몸과 마음으로 온전한 침묵을 경험할 때, 그때 내가 하는 생각들이 내가 아니고, 그것을 생각하는 존재가 나임을 깨닫게 된다. 긍정적인 마음이나 부정적인 마음은 모두 인간의 변덕스러운 마음이고 언제든지 이쪽에서 저쪽으로 쉽게 옮겨갈 수 있다. 우리는 긍정적인 마음과 부정적인 마음을 넘어 침묵하는 마음, 판단하지 않고 분석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는 마음으로 건너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개념 속에서 살아갈 때 나는 거미가 줄에 걸린 파리를 칭칭 동여매듯이 나의 생각으로 나를 꽁꽁 묶어 놓고 있다. 그때 나는 거미이면서 동시에 파리다. 내가 만든 줄로 나를 묶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침묵 속에서 말없이 깨어서 지켜보면 나는 거미줄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현존할 수 있다. 이처럼 침묵 속에서 깨어 있음이 심오한 지혜요, 진정한 평화다. 개념의 거미줄에서 벗어나 자유로 가는 길의 열쇠는 지금 자기 내면을 밝게 의식하면서 사는데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이 지금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힘을 쓸 수 있는 곳은 바로 지금이다. 지금은 결코 끝나지 않는 순간이다.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면 어제의 지금에 일어난 것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내일의 지금에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은 끝이 없는 유일한 순간이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아서 그 길이를 잴 수 없는 것이 지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었고, 그 안에 모든 것이 있고,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을 무한의식이다. 이 순간에 승복하여 이 순간이 요구하는 바를 행할 때 우리는 '존재'에 굳게 서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존재 학습이며 세상 안에 있으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 비결이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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