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달구벌문예대전 대학·일반부 최우수상 이은경씨-'면회금지'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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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25 10:33  |  수정 2020-11-25 10:43

■대학·일반부 최우수상 이은경씨-'면회금지'

"어르신, 아드님한테 뭐라고 말씀 좀 해 보세요."


직원이 노트북 모니터 화면을 어르신 쪽으로 들고서 대답을 재촉한다.


"어머니! 큰아들 ㅇㅇ에요. 제 이름 한 번 불러보세요." 모니터 속 중년 남자가 애타게 어머니를 부르지만 어르신은 묵묵히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신다.


"어머니! 저예요. 대답 한 번만 해 보세요."


그래도 모니터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르신 눈에 눈물이 맺힌다.
급기야 모니터 속 아들은 매직으로 도화지에 커다랗게 글을 쓴다.


'어머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건강히 지내세요' 라고 쓴 도화지를 화면에 비추지만 여전히 어르신은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다시 모니터 속 아들이 도화지에 또박또박 쓴 글자를 보여준다.


'어머니 저희는 다 잘 있어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영화 '러브액츄얼리'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면회가 금지된 요양병원 병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가족이 환자를 직접 볼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영상통화를 하게 한다. 스마트폰은 화면이 작아 담당 직원이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어르신과 자식 간 영상통화를 시도하지만, 대부분 어르신들은 노트북 모니터에 나온 자식 모습이 낯선지 좀체 입을 떼지 않는다. 그저 화면 속의 자식 모습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가를 적실 뿐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나까지 울컥 목이 멘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고? 몽요일 맞나?" 504호에 아흔을 넘긴 어르신은 종종 내게 요일을 물으셨다. 목요일을 '몽요일'이라고 하시는 어르신 얼굴에 화색이 돈다. 토요일이면 면회를 오는 막내딸을 기다리는 설렘이 어르신 얼굴에 고스란히 쓰여 있다. 그러나 이제 어르신은 요일을 묻지 않으신다. 대신 역정이 잦아지셨다. 아침 식사도 하지 않고 운동도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신다. 낡고 쪼그라든 육신만 남아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은 코로나 19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딸이 더 이상 당신을 보러 올 수 없다는 사실만은 정확히 아신다.


"나 이제 침 안 맞아."
"왜요? 어르신"
"아픈 데 없어"
"아드님이 어르신 치료 잘 받으시는지 저한테 물으시던데요."
"우리 아들 언제 봤어?"


어르신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내가 정말 당신 아들을 봤는지 물었다. 그 목소리에 그리움이 잔뜩 배어 있다. 얼마 전 나는 병원 현관에서 물건을 전달하러 온 어르신의 아드님을 만나 어르신 안부에 대해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어머니와 똑같은 은발을 가진 초로의 아들은 코로나19 전에는 매일 아침 문안을 왔다. 아들은 노모를 부축해서 병실 복도를 오가며 걷기 연습을 시켰다. 그러나 이제 효자 아들은 노모의 팔을 잡아드릴 수 없다. 노모가 보고 싶으면 면회 신청을 해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모자가 서로 바라보는 일이 다다. 손을 맞잡거나 맛난 음식을 노모의 입에 넣어드릴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유리창을 사이에 둔 상봉도 코로나 단계가 격상되면서 당분간은 불가능해졌다.


병원 입구에는 보호자들이 맡겨둔 음식과 물품들이 즐비하다. 쇼핑백 안에는 감주, 도토리묵, 밑반찬, 과일 등 어르신들 좋아하는 음식들이 가득하다. 쇼핑백 위에 붙은 쪽지에는 환자의 이름과 함께 같은 병실 안의 다른 환자들과 나눠 먹을 음식, 데워야 할 것 등등 설명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직원은 해당 병실로 보호자들이 맡겨 둔 물품들을 부지런히 들고 나른다. 한 번은 중년의 세 자매가 입원한 아버지에 드린다며 음식과 물건을 한 보따리 들고 왔다. 마침 그때 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고 로비 가까이에 계셨다. 보호자들은 현관 입구에서 물건만 전달하고 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보이자 딸들이 "아버지 저기 계시네!" 하며 반가운 마음에 말릴 겨를도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놀란 직원들이 "들어오면 안 된다"고 저지하고 딸들은 "잠시 보는 것도 안 되냐"며 실랑이를 벌였다. 딸들은 병원의 인정머리 없는 처사에 항의해 보지만 지척에서 아버지 얼굴 한 번 보고 그대로 돌아가야 했다. 병원 입장으로는 천륜을 가르는 것 같은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다. 하나 둘 봐주다가는 방역이 순식간에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병원에 입원 중이지만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가서 파마와 염색을 하는 어르신들도 꽤 계신다. 주말에는 딸이 면회를 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미용실에 간다.


"어르신 파마하셨네요. 더 예뻐지셨어요." 내가 아는 체를 하면 어르신은 싱긋 웃으며 딸이랑 나가서 파마했다고 자랑하신다. 이렇게 한 번 나갔다가 오시면 어르신은 십 년은 더 젊어 보이고 기분도 좋아지신다. 하지만 보호자 면회뿐 아니라 환자의 외출도 금지되어 있어 코로나19 이후 어르신들은 바깥 미용실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코로나19 전에는 병원으로 미용 자원봉사자들이 오거나 이발사가 출장 와서 어르신들 머리를 손질하곤 했다. 지금은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어 병원 직원 중에 이발 기술이 있는 직원이 이발 가위로 어수선해진 어르신들 머리를 손질해 준다. 이제 어르신들의 염색한 파마머리는 다 잘려 나가고 백발만 쓸쓸히 남았다.


요양병원은 특성상 일 년 이상 장기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부모를 병원에 모셔두고 자식들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특히 명절 전후 병원 로비는 시장바닥처럼 왁자하다. 어르신들은 멀리서 찾아온 자식과 손주들에 둘러싸여 가져온 음식 앞에서 오랜만에 정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올 추석은 적막만이 흘렀다. 긴 연휴를 마치고 병실에 회진 온 나에게 "추석 잘 쇠었냐"고 어르신들이 덕담하신다. 그러나 잘 쇠었다고 하면 나만 즐거운 추석을 보낸 것 같아 송구스러워 대답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추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는 어르신들은 평생 해 온 인사치레를 잊지 않고 내게 건넨다.


나는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한의사다. 코로나19 때문에 나 또한 직장과 집만 무한 반복 중이다. 지난 2월 이후 모임도 나가지 않고 저녁마다 하던 수영도 그만두었다. 여행은 두말할 것도 없다. '주말마다 외출을 자제하고 종교시설, 다중 이용시설 가지 말라'는 문자가 직장에서 날아온다. 이 문자에는 코로나에 특히 취약한 요양병원 근무자들의 두려움과 경계심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자식들 병문안조차 금지하는 상황에서 병원 근무자들은 주말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올해 초 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알려진 후 우리 병원은 신속히 면회금지를 실시했다. 몇 년 전 이미 메르스를 겪은 터라 코로나19 대응에 만전을 기했다. 철저한 방역 덕분에 환자와 병원 근무자 중 지금까지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이렇게 오래 끌게 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요양병원에서는 독감이 유행하면 한시적으로 면회 금지를 한다. 이럴 때는 길어야 두어 달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시간이 지나도 숙지기는커녕 가을로 접어들면서 2차 팬데믹이 예고되는 상황이라 면회금지는 올해를 넘길 것 같다. 기약 없는 코로나19에 어르신들은 병마와 더불어 외로움과 우울과도 싸워야 한다. 어르신들은 행여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홀로 그리움을 삼키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어찌 모를까?


506호에 뇌졸중으로 편마비가 온 60대 초반의 남자는 어눌한 말로 내게 묻는다.


"코로나 언제 끝나겠능교?" 시원하게 대답해 주고 싶지만 나 또한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집에 못 가본지 일 년이 넘었다며 한숨을 내쉰다. 집에 가는 것은 고사하고 가족 면회조차 불가능하니 여기서 젊은 축에 끼는 그는 더 답답해한다.


너나없이 힘든 시절을 건너가고 있다. 새벽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둡고 춥듯이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닌가 싶다. 희망이 죽어버린 것이 아니라 다시 '짠' 하고 나타날 때까지 인내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따름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잘 해왔듯 코로나19라는 어둠의 터널을 모두 함께 무사히 통과하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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