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대구딴따라박물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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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21   |  발행일 2021-04-21 제26면   |  수정 2021-04-21 07:17
한국 영화산업의 산증인
6·25땐 레코드산업 1번지
한땐 유흥산업 메카 대구
그 대중문화 궤적 담아내는
'대구딴따라박물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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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주말섹션부 전문기자

'대구딴따라박물관'(가칭). 지금 대구에는 없어서 한 번 생각해 봤다. 난데없이 트로트 신드롬이니 차제에 그런 박물관도 한 번 저질러 봄직도 할 것 같아서다.

딴따라박물관, 이건 지난 한 세기 대구가 품은 '음주가무사(飮酒歌舞史)'의 완결판이어야 한다. '딴따라(한량)문화'는 일견 음습하고 불온해 보인다. 그래서 제도권 그물에는 좀처럼 걸리지 않는다. 자연 그 저습한 문화는 유행 따라 확 일어났다가 소리소문없이 증발해 버린다.

우린 지역의 영화문화조차 내팽개쳐버렸다. 한일, 대구, 만경관, 아세아, 국제, 송죽, 아카데미, 제일…. 50여 개의 숱한 영화관이 대구와 동고동락했다. 어느 날 찾아보니 약속이나 한 것처럼 유료주차장과 상업빌딩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숱한 영화스토리 역시 사장돼 버렸다. 그 많던 음악다방과 클럽, 카바레 등도 흔적없이 사라져버렸다.

요정 기생, 룸살롱 마담과 악사, 카바레 연주자와 무희, 변두리 회관의 3류가수, 바걸…. 그들의 삶이 일간지에 소개될 확률은? 제로였다. 나는 그 흐름을 거스르고 싶었다. 2002년 어름이었다. 작고한 소설가 겸 죽순문화회 회장을 역임한 윤장근을 앞세워 일제강점기부터 발원된 20세기 대구 딴따라문화의 회랑을 훑고 다녔다.

전 대구연예협회 회장 서정하, 1960년대 대구KBS 전속가수이자 개나리시스터즈 멤버로 활동했던 여가수 김차란, 대구 등록가수 1호였던 고화성, 가요평론가 남강일, 지역 유흥업계의 대부격이랄 수 있는 박모씨, 남산동 악기골목의 주인공들의 삶을 잘 알고 있는 드러머 석경관, 룸살롱 연주문화의 현주소에 정통한 가락스튜디오 이동우 대표, 부산으로 가버린 bbc FM 명 디제이 도병찬, 지역의 마지막 요정으로 불리는 가미의 윤금식 등을 만나 증언 채록작업을 해나갔다. 그 과정을 2002년부터 3년간 111회에 걸쳐 '대구추억기행'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지역 언론이 유흥문화의 숨결을 추적한 첫 시도였다.

요정 비사 추적도 흥미로웠다. 박정희 대통령의 5·16쿠데타 모의장소가 곽병원 초입 태남빌딩 자리에 있던 '청수원'이란 사실, 삼성그룹을 일군 이병철이 지역 유지들과 술잔을 기울인 요정이 서성로 '죽림헌'이란 사실도 알게 됐다. 나는 그 흐름을 '20세기 달구벌 음담패설 뒷골목 풍류사'라 명명하고 싶었다. 대구시의 요청으로 2007년 '달구벌의 맛과 멋'이란 책도 출간된다. 그 흐름이 딴따라박물관으로 정리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최근 반가운 소리를 들었다. 한국 근대가요사 전문가인 이동순 시인이 '대구가요사박물관'의 필요성을 관계요로에 알리고 있었다. 그는 6·25전쟁기 유일했다고 볼 수 있는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사장 이병주)의 가치를 강조했다. 오리엔트는 전선야곡, 굳세어라 금순아, 아내의 노래, 고향초 등 8년 동안 160~170여 곡을 제작했다. 고(故) 이병주의 아들 이재인씨가 1천여 점의 자료도 갖고 있다. 계명문화대는 이 시인이 기증한 오리엔트레코드 SP음반 15매를 소장하고 있다. '빨간구두아가씨'의 주인공인 남일해(대건고 출신) 등이 힘을 보태면 가요사를 영화·음악다방 등과 결부시켜 지난 시절 대구의 일상문화를 복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시민들로부터 관련 물품 등을 기증받는다면 신개념 대중문화박물관으로 발전할 것 같다. 누군가 총대를 메줬으면 좋겠다.
이춘호 주말섹션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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