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따라 상주 여행 .2] 오일장·상설시장 공존하는 상주중앙시장

  • 류혜숙 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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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03 07:43  |  수정 2021-06-27 14:13  |  발행일 2021-05-03 제11면
재미있다, 정이 넘친다…100년 역사의 펄떡이는 삶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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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중앙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있던 상주 읍내장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으로, 총 16개 동이 바둑판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고 상점은 160개가 넘는다. 발길 닫는 곳마다 자부심 넘치는 외침이 팡팡 터지고 와글와글 흥정하는 소리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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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중앙시장 입구와 이어져 있는 남쪽 도로를 따라 들어선 풍물거리. 노점상 전용 공간으로 매일 오전 4시30분에는 새벽시장이 열리고, 매달 2일과 7일 장날에는 300여 개의 좌판과 노점들이 빽빽이 늘어선다.

'뭐해여, 빨리와여.' 시장통 벽에 쓰인 쩌렁쩌렁한 부름에 걸음이 빨라진다. '오늘 저녁 뭐 해먹지?' '삼박 삼박 손칼국수.' '할매 손잡고 다니던 길.' '장바구니 한 가득, 정이 듬뿍.' 노란벽, 파란벽, 빛바랜 분홍벽이 곰살갑게 말 건다. "감 먹은 한우요! 아주 그냥 맛이 끝내줘요." "돌멩이 맨치로 딴딴한 감자!" "오늘 뽑아온 싱싱한 햇양파!" 자부심 넘치는 외침이 팡팡 터지고 와글와글 흥정하는 소리가 가득하다. 난전에는 정갈하게 손질된 할매들의 이력이 오종종히 펼쳐져 있고 시장의 높은 벽에 쓰인 'since 1912'는 장터의 내력을 알려준다. 오늘도 성성한 오래된 시장, 상주중앙시장이다.

한때 부산·대구서도 상인들 찾아와
1987년 새건물 짓고 상설시장 변신
규모 총 16개 동에 상점 160개 넘어
2·7일 장날이면 300여개 노점 장관
탈춤놀이 등 다양한 공연도 볼거리
39년 된 분식점 등 시장 곳곳 맛집

#1. 명실상주 중앙시장

"우리 시장이 오래 됐지요. 100년이 넘었죠. 옛날옛날부터 있던 시장이죠."

상주시내 한가운데 상주중앙시장이 있다. 100년의 시간이라 하나 조선시대부터 열렸던 읍내장의 명맥을 잇고 있으니 실상은 더 오래 되었다. 조선시대 장터는 상주읍성 내 상주목 관아 동서쪽에 있었다. 1909년의 기록에 따르면 2일과 7일에 장이 섰고 멀리 부산과 대구·김천 등지에서도 상인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1910년대에 장터는 동헌의 문루로 쓰였던 태평루(太平樓) 앞으로 이동했다가 점차 도시가 커지면서 장도 커져 읍성의 남문 밖으로 밀려났다. 현재의 위치다. 1920년대 상주 읍내장은 180칸의 장옥을 가진 큰 규모의 시장이었다.

정기시장이 상설시장으로 변화된 것은 긴 시간을 뛰어넘은 1987년 상주중앙시장 건물을 지으면서다. 상주중앙시장은 정기시장(오일장)과 공존하며 곧바로 지역의 중심 시장으로 부상했다. 2005년부터는 수년에 걸쳐 노후화된 시장을 말끔하게 정비했다. 첨단 아케이드가 설치되었고 간판이 교체되고 건물 외벽을 새로 칠했다. 2007년부터는 줄타기나 탈춤놀이를 비롯한 무형문화재 공연과 지신밟기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해왔다. 2016년에는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돼 '낭만이 있고 정이 넘쳐나는 명실상주 중앙시장'으로 다시 한 번 도약했다. 이름과 실제가 똑같다는 '명실상부'에 '상주'를 결합한 '명실상주 중앙시장'이다. 입소문만큼이나 살거리, 볼거리, 먹거리가 많다는 의미다.

시장의 캐릭터는 호랑이 커플인 '삼백이'와 '명실이'다. 풍요로운 삶의 수호자인 백호를 모티브로 했다. 시장통에서는 배낭을 멘 젊은이들이나 시장 투어를 하는 단체 관광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케이드가 아주 높다. 빛이 환해서 광장처럼 시원하다. 시장은 총 16개 동이 바둑판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고 상점은 160개가 넘는다. 옛날에는 고추전, 어물전, 잡화전, 채소전, 곡물전, 그릇전, 곶감전 등 품목별로 나뉘어 있었지만 이제 구획은 없다. 젓갈집 옆에 이용소가 있고, 고깃집 옆에 옷가게가 있고, 신발가게 옆에 통닭집이 있고, 철물점 옆에 과일가게가 있다. 단위 상가들 배면으로도 골목 시장이 넓게 형성돼 있다. 알록달록한 우산들이 겹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매일 나오는 노점 상인들도 많다.

거리에는 근대의 건축물부터 현대의 것까지 켜켜이 쌓인 시간이 흘러간다. 현대기물, 호박양품, 영광상회, 고려분식, 무양포목과 같은 옛 간판들이 친근하다. 한눈에 들어오는 제일약국 건물은 50여 년간 약국으로 성업하다 이제 꽃집과 과일가게가 되었다.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와 긴 머리 소녀가 팔짱을 끼고 지나간다. 중년의 아줌마가 등 굽은 할머니와 손을 잡고 걷는다. "엄마, 옷 하나 사주까?" "옷은 무슨. 다 늙어가. 내한테 맞는 옷도 있을란가?" "입어봐야 알지 눈으로 입어보면 아나!" 만물가게 앞에 망연히 선 아주머니는 고심 끝에 중간 크기의 냄비 하나를 고른다. 양손이 무거워지면 고객 쉼터인 '꼭감카페'로 가면 된다. 1만원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 아메리카노 한 잔이 제공된다.

'상주곶감'이라는 간판은 시장 곳곳에서 보인다. 상주는 15세기 이전부터 최고의 곶감 산지였고 전국에서 처음으로 왕실에 진상된 곶감이었다. 지금은 전국 곶감 생산량의 60%가 상주에서 생산되며 2019년에는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상주중앙시장의 곶감골목에는 1990년 이전까지만 해도 도가(都家)가 들어서 곶감장이 형성되었고 도가마다 10~30명의 도매상인들이 소속돼 곶감을 사고팔았다. 현재는 곶감도가의 역할이 농협공판장으로 이전되었지만 설 명절 즈음에는 상주중앙시장에 곶감전이 펼쳐진다.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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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월떡집'은 감말랭이를 썰어 넣은 곶감꿀떡이 인기품목이다. 보는 맛과 씹는 맛이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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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통닭'은 한 마리를 주문해도 프라이드·양념·간장 세 가지 맛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특징이다.


#2. 풍물거리

상주중앙시장 입구와 이어져 있는 남쪽 도로는 '풍물거리'다. 옛날에는 개천이 흘렀다. 상주중앙시장이 등장하면서 장터를 잃은 노점상들은 천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1990년 시장의 활성화와 교통의 편리를 위해 개천을 복개하고 노점상들을 유치했다. 그곳이 바로 풍물거리다.

매일 오전 4시30분 풍물거리에는 새벽시장이 열린다. 인근 면의 주민들이 경운기나 트럭·리어카를 끌고 나타난다. 왁실덕실한 활기는 오전 7시가 되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번개시장이라고도 부른다. 매달 2일과 7일 장날에는 풍물거리 전체가 장터가 된다. 장은 대로변에서부터 덜퍽지게 바라져 있다. 알록달록한 대형 우산과 차양막이 드리워지고 300여 개의 좌판과 노점들이 빽빽이 늘어선다. 들이 있고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갯벌이 있고 온갖 먹거리 볼거리가 있는 장터, 경북 북부지역에서 가장 큰 오일장이다.

무르익은 봄날의 난전에는 파릇한 모종들이 가득하다. 조롱박, 새싹보리, 잎들깨, 복수박, 가지, 양배추, 땅두릅, 당귀 등 키워먹는 것에서부터 눈이 즐거워지는 형형색색의 꽃모종까지 봄, 봄을 외친다.

좌판에는 할머니들이 가꾸고 갈무리해 온 싱싱한 봄나물들이 많다. 봄동, 깻순, 방풍나물, 두릅, 시금치, 냉이, 달래, 햇양파, 돈나물, 더덕 그리고 신혼초와 같이 이름도 모르는 귀한 것들이 지천이다. 깐 도라지 한 소쿠리, 깐 호두 네 봉지, 청국장 몇 봉지, 검정콩 두어 봉지, 말린 대추 두 봉지, 말간 빛깔의 쪽파 두 소쿠리, 마늘 서너 봉지, 먹기 좋고 보기 좋게 손치레 해 놓은 채소들이 옹기종기 펼쳐져 있다. 산처럼 쌓인 꽃무늬 밭일의자, 햇빛을 가려줄 챙이 넓은 모자들, 소의 해 행운을 주는 워낭과 코뚜레를 파는 좌판도 있다. 김이 솔솔 나는 햇번데기의 고소한 냄새와 어묵과 도넛의 자글자글한 기름내가 진동한다. 허리 굽은 할머니의 손두부 앞에서 젊은 부부가 발길을 멈춘다. "4천원. 손두부가 맛있어." "할머니, 발두부는 없나요?" 남편의 실없는 개그에 웃음바다가 된다.

#3. 상주중앙시장의 맛집들

상주중앙시장에는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며 맛집으로 이름난 식당들이 있다. 39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려분식'은 상주의 대표 맛집, 군만두와 땡초김밥, 쫄면이 유명하다. 착한 가격 모범업소, 백년가게, 생활의 달인 등 명성에 걸맞은 명패도 가득 붙어 있다. 배달 오토바이가 연신 들락날락하고 포장 주문을 기다리는 이들도 자꾸자꾸 늘어난다. 한결같은 맛으로 재료를 아끼지 않는 것이 39년의 비결이란다.

바로 옆의 '뉴 세느 빵집'도 엇비슷한 역사의 맛집이다. 특히 찹쌀떡은 타 지방에서 택배 주문을 하는 정도다. '서만통닭'과 '청리통닭'은 거의 주방을 맞대고 나란히 자리한다. 두 곳 모두 상주중앙시장 핵점포 육성사업에 선정된 가게들이다. 주문과 동시에 생닭을 작두로 자르고, 양념된 튀김옷을 입친 다음 열이 오른 커다란 가마솥에 넣어 튀겨낸다. 튀김옷은 바삭하고 고기의 육즙은 그대로 유지돼 부드럽다. '동신통닭'은 한 마리를 주문해도 프라이드·양념·간장 세 가지 맛으로 만들어주고, 소스에 상주곶감을 사용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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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중앙시장의 '시장통 옛날국수'의 별미는 잔치국수다. 깊고 진한 국물이 일품이다.


'시장통 옛날국수' 역시 핵점포 육성사업에 선정된 상주중앙시장의 이름난 맛집이다. 모자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잔치국수가 별미다. 깊고 진한 국물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푸짐한 양은 시장의 인심을 느낄 수 있다. 고기와 곶감 고명을 올린 얼큰곶감칼국수가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찾는 이가 많지 않아 내놓지 않는다고 한다. '대월떡집'의 이색품목은 감말랭이를 썰어 넣은 곶감꿀떡이다. 맛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보는 맛과 씹는 맛이 남다르다.

대로변에 있는 '남천식당'은 3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80년 전통의 해장국집이다. 메뉴는 날계란을 얹은 시래기 된장국밥 2천500원, 곱빼기 3천원, 잔 막걸리 1천원이 전부다. 이 외에도 '대구식당'은 얼큰한 육개장과 푸짐한 코다리찜으로 이름나 있고 '서울곰탕'의 돼지고기 보쌈에 상이 넘칠 만큼 푸짐한 반찬은 감동이다.

"이래 나와야 사람 구경하지요." "사람 구경하고 국수 한 그릇 먹고 가는 재미가 있어." 오래된 시장은 오늘도 성성하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참고=상주시 누리집.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김상호, 상주 근대 전통시장의 변천, 2017. 주영하 외, 사라져가는 우리의 오일장을 찾아서,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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