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따라 상주 여행 .3] 조선 말기 음식백과 '시의전서'

  • 류혜숙 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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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17 07:42  |  수정 2021-06-27 14:13  |  발행일 2021-05-17 제11면
19세기 말 요리책…70여가지 메뉴 재현 상주서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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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관'의 시의전서 복원 메뉴인 비빔밥 정식과 육전. 비빔밥 정식 반찬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조기구이로, 20㎝ 정도 되는 가장 맛있는 조기를 쓴다.식사 후에는 향긋한 꽃차가 나온다.

꽃이다. 꽃밭이다. 아니 잘 가꾼 정원이 맞겠다. 비빔밥은 정성으로 가꾼 정원이다. 하나하나 다듬고 조리한 각종 나물에 온갖 고명을 올렸으니 그저 꽃이라면 섭섭하다. 밥은 가장 좋은 상주 쌀로 지어 고슬고슬 뽀얗다. 푹 끓여낸 황태 미역국에 감칠맛이 난다. 파김치는 돌돌돌 말려 예쁘게 앉았다. 얇은 소고기에 달걀 물을 입히고 붉은 실고추와 파란 파를 얹어 구운 육전은 솔솔 맛있는 훈기를 뿜는다. 그릇은 차분한 금빛의 유기그릇이다. 정갈하게 담긴 색색의 윤기 나는 음식들이 나무 쟁반에 얌전하게 정렬되어 내 앞에 놓였다. 깔끔하게 차려진 1인 반상. 멋있어라, 귀하게 대접받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상주군수 심환진이 필사해 전해
주식류·부식류 등 422가지 소개
비빔밥 용어 문헌상으로 첫 등장
전통 상차림 형태도 자세히 기록

상주농업기술센터 음식복원 나서
전수교육 거쳐 식당 7곳에 보급
뭉치구이·비빔밥·육전 등 별미

#1. 바로잡아 기록한 책 '시의전서'

비빔밥은 원래 골동반(骨董飯) 혹은 화반(花飯)이라 불렸다. '골동'은 '어지럽게 섞는다'는 의미다. '화반'은 꽃 같은 밥이다. 골동반은 조선시대 초기의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어 이미 오래전부터 비빔밥을 먹어왔음을 알 수 있다. 비빔밥이라는 이름은 1800년대 말의 요리책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처음 등장한다. '부밥'이라는 제목 아래 조리법이 적혀 있다.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은 부쳐 썬다. 각색 남새를 볶아 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 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 짝만큼 씩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 상세하다.

시의전서는 19세기 말엽의 요리책이다. 지은이는 알 수 없다. 시의전서는 1919년 상주 군수로 부임한 심환진(沈晥鎭)이 반가에 소장되어 있던 요리책을 빌려 필사해 둔 것을 그의 며느리 홍정(洪貞)에게 전한 것이다. 책에 적혀 있는 요리법은 상주의 반가음식부터 궁중 음식까지 무려 422가지나 된다. 상하 2편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식류 27종, 부식류 189종, 기호식품 107종, 주류 19종, 장류와 조미료류 7종 등이 구체적 정리되어 있다. 또한 식기, 조리기구, 계량법, 맛 표현, 상차림 등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시의전서에는 비빔밥 외에도 '배추통김치' 조리법이 문헌상 처음 표기되어 있다. 특히 반상도식은 매우 귀한 것으로 구첩반상, 칠첩반상, 오첩반상, 곁상, 술상, 신선로상, 입맷상 등의 원형을 찾을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반상차림 같은 전통적인 상차림의 원칙이 언제부터 성립되었는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이런 상차림의 형태와 구성이 문자화된 것은 시의전서가 최초다.

음식명은 한자와 한글을 병기했고 부수적인 설명도 기록되어 있다. 경상도 사투리가 두드러진 것으로 보아 당시 경상도 지역 유력한 양반집의 요리법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여인일 게다. 그녀는 긴긴 시간을 고심하고 옳다 여기는 것을 취합해 차곡차곡 써내려 갔을 것이다. 음식을 하다가도, 수를 놓다가도, 문득 천둥 같은 깨달음이 오면 조리법 곁에 첨언해 두기를 거듭했을 것이다. 시의전서는 '바로잡아 기록한 책'이라는 뜻이다. 이는 안동 수운잡방(需雲雜方), 영양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과 함께 우리나라 현대 한정식의 근간이 되는 3대 조리서 중 하나다.

시의전서_조리법
시의전서에 적혀 있는 요리법은 상주의 반가음식부터 궁중 음식까지 무려 422가지나 된다. 식기, 조리기구, 계량법, 맛 표현, 상차림 등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상주시 제공〉

#2. 상 위에 재현된 '시의전서'

상주시농업기술센터는 2018년부터 시의전서에 나오는 음식을 재현하는 사업을 추진해 70여 종의 메뉴를 개발했다. 2019년에는 상표를 등록하고 시의전서 전통음식연구회와 상표 사용을 계약했다. 그리고 2020년 복원된 음식을 일반식당에 보급했다. 심의를 거쳐 사업대상자를 선정하고 일정 기간 동안의 전수교육과 요리경연대회도 거쳤다. 선정된 업소에는 시의전서 현판이 걸려 있다.

현재 상주에서 시의전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은 백강정, 혜원식당, 안압정, 상산관, 삼백한우뜰, 수라간, 주왕산삼계탕 등 7곳이다. 백강정은 제1회 '시의전서 창업식당'으로 시의전서의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다른 음식점들은 오랫동안 상주 맛집으로 사랑받던 곳으로 각각의 특성에 맞는 음식들을 내고 있다. 모든 메뉴는 1인용 독상이다. 밥은 삼백의 고장 상주의 최고급 쌀로 지어진다. 모든 음식은 유기그릇에 정갈하게 담겨 사각의 나무 쟁반에 단정하게 올려져 나온다.

'백강정'은 낙동강 회상나루에 위치한 한옥 레스토랑이다. 낙동강 저편에는 경천대와 도남서원, 낙동강생물자원관이 있고, 백강정 곁으로는 회상나루 객주촌과 드라마 '상도' 촬영지가 있다. 백강정의 대표메뉴는 뭉치구이 정식이다. 잘 다진 쇠고기를 수제청으로 뭉쳐 둥글둥글 빚어 구워내고 상주 곶감으로 만든 장아찌를 곁들인다. 뭉치구이는 촉촉하고 부드럽고 장아찌는 쫀득하고 매콤하다. 뭉치구이 정식 외에도 통깨를 곱게 갈아 깻국물을 내 국수를 말아먹는 '깻국국수정식', 상주 곶감으로 만든 곶감약고추장을 곁들여 먹는 '상주 부빔밥(비빔밥) 정식' 등이 있다. 또한 각종 찜, 구이, 전, 조림, 전 종류와 궁중떡볶이, 문어숙회 등의 일품요리가 있고 시의전서 도시락도 판매하고 있다.

'상산관'의 시의전서 복원 메뉴는 비빔밥과 육전 그리고 천어잔생선조림이다. 천어는 민물고기를 지칭한다. 즉 피라미나 빙어와 같은 잔 생선으로 조림을 한 것으로 도리뱅뱅이와 같은 음식이다. 시의전서에는 진간장을 기반으로 한 조림과 고추장 기반의 조림 두 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상산관은 고추장 조림이다. 통째 꼭꼭 씹어 먹으면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상산관의 비빔밥 정식 반찬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조기구이다. 20㎝ 정도 되는 가장 맛있는 조기를 쓴다. 식사 후에는 향긋한 꽃차가 나온다.

'삼백한우뜰'에서는 메밀묵밥육전정식, 육전, 뭉치구이(떡갈비)를 대표 시의전서 복원음식으로 내고 있다. 원래 한우암소와 한돈을 주로 하는 식당이어서 시의전서 복원 음식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보통 메밀묵밥육전정식에 단품을 더하는 식으로 주문한다. 메밀묵은 봉평 메밀을 공수했단다. 곱게 채썬 오이와 김, 쫑쫑 썬 김치, 볶은 소고기, 곱게 부친 황백의 지단을 고명으로 듬뿍 얹었다. 맛과 색과 식감과 영양까지 고려한 조합이다. 후식은 오미자차다. 붉은 오미자청에 하트모양 얼음을 동동 띄운 차가 입안을 시원하고 깔끔하게 해준다.

시의전서_표지
시의전서 표지.

한정식 맛집인 '안압정'의 시의전서 메뉴로는 비빔밥 정식, 메밀묵밥육전정식, 육전이 있다. 안압정에서는 메밀묵을 직접 만든다. 비빔밥에는 고사리, 다래순, 도라지, 호박, 숙주, 표고버섯 등 각종 나물과 뭉치 구이 완자가 들어간다. 나물은 직접 키우거나 갈무리한 것이어서 철마다 조금씩 바뀐다. 반찬은 정식의 종류에 따라 조금 다른데 미역국, 얇게 채 썬 감자볶음, 생선구이, 매콤한 양념의 더덕구이, 강황가루 입혀서 튀긴 우엉 등이 있다.

'주왕산삼계탕'도 시의전서 복원 식당이다. 시의전서 복원 메뉴는 닭을 이용한 닭곰탕 정식, 닭구이 정식, 닭구이 등 3가지다. 겉절이와 상추·배추 등의 채소는 공통차림이다. 닭구이는 손질된 닭에 청주와 생강즙을 뿌려 밑간해 두었다가 양념장에 재워둔 뒤 팬이나 석쇠에 빨리 뒤집어 가며 타지 않게 굽는다. 마늘, 고추, 대파, 버섯이 딸려 나오고 견과류를 넣은 쌈장이 더해진다. 상추는 직접 재배하고 된장은 어머니가 담는다고 한다. 닭곰탕은 영계를 푹 고아 살만 발라낸 뒤 표고, 느타리, 부추, 감자, 당면 등을 넣어 갈비찜 하듯 끓여낸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부드럽고 풍부한 맛이다.

'혜원식당'은 상주에서 오랫동안 콩국수로 유명한 집이다. 국숫집이다 보니 시의전서 복원 음식으로 낭화(장국수) 한상과 깻국국수 한상을 낸다. 낭화는 멸치육수에, 깻국국수는 멸치육수와 양지육수에 들깨가루를 넣었다. 낭화는 낯선 이름이다. 물결 낭(浪)에 꽃 화(花). 면발이 물결치듯 하고 꽃이 핀듯하다는 뜻이다. 혜원식당의 면발은 홍두깨로 밀어 낭화의 모양이 물결치는 꽃 모양 바로 그 모습이다. 메인인 국수에 5가지 반찬과 밥 한 공기가 제공된다.

'수라간'은 상주의 한정식 맛집으로 근대 한옥집이다. 서까래와 마루가 반들반들하고 화단에는 각종 꽃나무가 소복하다. '수라간'에서는 비빔밥정식을 점심특선으로 낸다. 쌀밥과 미역국에 나물은 숙주, 도라지, 고사리 등 6~8가지 정도 되고 지단과 창포묵, 고기완자 등이 더해진다. 장은 깨를 듬뿍 넣은 간장과 초고추장 2가지, 반찬으로는 소불고기와 잡채·전·김치 등이 나온다. 후식은 달고 시원한 식혜다. 한낮의 호사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상주시 누리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복려 외, 음식고전, 2016. 한복진 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1, 초판 1998, 10쇄 2011.

Tip  '시의전서' 전통음식 맛볼 수 있는 곳

▶백강정= 상주시 중동면 갱다불길 145. 
▶혜원식당= 상주시 금도랑길 21. 
▶안압정= 상주시 동문1길 8. 
▶상산관= 상주시 경상대로 3032. 
▶삼백한우뜰= 상주시 북상주로 80. 
▶수라간= 상주시 상서문 3길 119. 
▶주왕산삼계탕= 상주시 북상주로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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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 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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