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의 문화 담론] 공군 전투기 조종사 故 유치곤...대구가 낳은 전설적 전쟁 영웅

  • 이미애 계명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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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28   |  발행일 2021-05-28 제38면   |  수정 2021-05-28 08:33
영화 '빨간마후라' 실제 주인공
유치곤 장군을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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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의 주인공인 대구시 달성군 유가읍 출신 유치곤 장군을 기리기 위해 2005년 비슬산 자락에 개관한 유치곤 장군 호국 기념관 전경. 〈영남일보 DB〉
호국보훈의 달 6월이 다가오면 70여년 전 나라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던 6·25전쟁을 악몽처럼 떠올리며 낙동강 다부동전선에서 북진의 승기를 잡았던 전쟁 영웅 고(故) 백선엽 장군을 기리게 된다. 그러나 같은 시기의 또 다른 전쟁 영웅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대구 출신 공군 전투기 조종사 고(故) 유치곤(1927~1965)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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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국에서 최초로 도입한 F-51 머스탱 전투기와 F-86 세이버 전투기 조종사로 우리나라 영공의 수호신이 된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이다. 마후라는 머플러(muffler)를 가리키는 일본식 발음이 우리말로 굳어진 명칭. 전쟁을 체험한 7090 어르신들은 1960년대 중반 개봉돼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빨간 마후라'를 관람했을 것이다. 그 영화는 1980년대까지도 KBS TV에서 6·25 특집으로 방영했다.

필자도 중3 때 TV 명화극장을 통해 그 영화를 보고 최근에 다시 봤다. 무엇보다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영화 주제곡 '빨간 마후라'가 감동적이었다. 한때 대중가요로도 유행한 노래 '빨간 마후라'는 철부지 어린이들도 즐겨 부르던 국민 애창곡이기도 했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 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 그 당시 빨간 마후라는 공군 전투기 조종사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끔찍한 전쟁의 악몽과 우리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의 통쾌한 공중전을 동시에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다. '빨간 마후라'는 시대를 초월해 아직도 노래방의 선곡에 올라 있다. 시국 사태가 빈발하던 1980년대 중반에는 대구시내 초·중·고교생들이 K-2 공군기지(제11전투비행단)에서 열리는 6·25전쟁 기념 전투기 시범비행을 단체로 참관하고 우리 공군이 개발한 KF-5A 전투기 제공호에 탑승해보기도 했다.

美 공군이 500여회 공습에도 실패
중공군 인해전술 차단 北철교 폭파
단 한번의 공격으로 기적같은 전공
韓공군 사상 최초 200회 출격 기록
동부전선 불시착 일화도 전설로

고향 비슬산 자락에 호국 기념관
동상·추모비·빨간마후라 노래비

그 당시 전투기 조종사들을 통해 대구가 낳은 전설적인 전쟁 영웅 유치곤 장군에 대한 무용담을 듣고 박수로 환호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유치곤 장군! 그는 중공군의 100만 대군이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남진하는 인해전술을 차단하기 위해 1952년 1월15일 대공포화를 뚫고 북한 상공 깊숙이 날아가 승호리 철교를 폭파한 한국 공군의 전설이었다. 평양의 대동강을 가로지르는 승호리 철교는 압록강에서 만포선과 경의선을 타고 북한으로 유입되는 중공군의 주요 보급로. 미 공군이 8개월 동안 500여 회나 공습하고도 폭파하지 못했던 난공불락의 요새였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공군 3개 편대의 단독 출격에서 유치곤 장군(당시 대위)은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 가미카제(神風)식 전술로 공습했다고 한다.

안전고도를 유지하며 기습적으로 날아가 폭탄을 투하하고 대공포화를 피해 이탈하는 미 공군의 전통적인 전술 개념과는 달리 지상 1천500피트에 불과한 저공비행으로 단 한 번의 공격에서 철교 중앙부분을 폭파하는 기적 같은 전공을 세웠다. 이후 송림제철소 폭파작전, 평양 대공습작전 등 한·미 연합공군의 주요 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한국 공군 사상 최초의 200회 출격을 기록했다.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던 미 공군 조종사들은 그와 함께 출격할 때마다 간담이 서늘할 정도의 아슬아슬한 저공비행으로 대공포화를 뚫고 공습하는 독특한 전술을 목격하고 '히어로(영웅)'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전공으로 그는 미 공군 비행훈장을 비롯해 충무무공훈장 등 12개의 훈장을 받은 진정한 전쟁 영웅이었다.

1953년 7월 휴전 막바지에는 동부전선 고지전에서 역시 저공비행으로 근접지원에 나섰다가 적의 대공포화를 맞고 강릉 전진기지에 불시착한 일화도 빨간 마후라의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애기(愛機)의 뒷날개에 검붉은 화염을 내뿜으며 활주로에 미끄러지자 소방차량과 구조대가 긴급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는 애기가 폭발할지 모르는 위기의 순간에도 탈출하지 않고 조종석의 캐노피를 들어 올리며 태연하게 얼굴을 내밀고 "나, 유치곤이야!" 하고 외쳤다고 한다. 이후 그에게 붙은 별명이 죽지 않는 새라는 뜻이 담긴 불사조(不死鳥)! 하지만 그 불사조가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1965년 1월 공군 대령으로 107기지단장을 지내다 과로로 순직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그의 공적을 기려 장군(준장) 승진을 추서했다.

빨간마후라
영화 '빨간 마후라' 포스터
그의 고향인 대구시 달성군 유가읍 비슬산 자락에는 '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2005년 6월 개관한 우주선 형태의 기념관에는 그의 동상과 추모비, 빨간 마후라 노래비 등이 세워져 있고 기념관 앞 광장엔 생전의 애기였던 F-86 전투기와 T-37 훈련기가 전시돼 빨간 마후라에 묻힌 기억을 되새기게 한다. 기념관 아래 '유치곤 길'은 대구시민들의 호국순례 코스가 되고 있다.

대구 상공은 6·25 때부터 군용기의 비행구역으로 군사항로가 개설돼 K-2 기지에서 발진하는 전폭기 편대에 하늘길을 열어주고 있다. K-2 기지에서 초음속 전폭기 편대가 발진할 때마다 요란한 폭음을 울리게 마련이었다. 활주로에서 이륙한 전폭기가 영천과 경산 상공을 돌아 편대를 이루며 대구 상공을 지날 때엔 비행 폭음이 굉음으로 바뀌어 시가지 주택가 창문이 흔들릴 정도였다.

이 때문에 견디다 못한 K-2 인근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음공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고 배상금까지 받아냈다. 이를 계기로 최근엔 대구국제공항과 K-2 기지 이전이 국책사업으로 확정되었으나 한동안 통합신공항 장소 선정 문제를 두고 군위군과 의성군 사이에 지역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반세기 동안 하늘길을 열어주고 비행소음에 시달려온 대구시민들은 우리 영공을 지킨 유치곤 장군의 호국정신을 위안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지금 대구 상공에는 민항기만 정기적으로 오갈 뿐 쉴 새 없이 뜨고 내리던 공군 전폭기 편대비행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평화 프로세스를 내걸고 스스로 무장해제하면서 공군의 비행훈련과 공중정찰까지 금지한 남북군사합의서 때문이다. 이 군사합의서는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구실로 폐기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해 흙먼지로 사리지게 했으나 정부는 아무 대책도 없이 평화 프로세스만 고집하고 있다.

이 때문에 K-2 기지에서 발진하던 전폭기들이 영공수호는커녕 격납고에 들어가 있고 전투기 조종사들은 겨우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게임하듯 비행훈련 흉내만 내고 있다고 한다. 최근 미국에서 도입한 최첨단 F-35A 전폭기도 북한의 눈치가 보여 시험비행마저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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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애 계명대학교 외래교수·미술학 박사
1950년 북한 김일성의 6·25 남침 때는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내줬으나 지금은 김정은의 탄도미사일 한 발만 날아와도 하루아침에 불바다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이 안보전문가들의 견해다. 북한공산집단이 입만 열면 '서울 불바다'를 염불 외듯 하지만 괜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인내하며 끝까지 평화의 길로 가겠다"고 평화 타령만 하고 있다.

이미애 계명대학교 외래교수·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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