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따라 상주 여행 .6] 석문사와 보굴암 - '금지된 사랑' 좇아 도피행각 벌인 세조 딸과 김종서 손자

  • 류혜숙 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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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28 07:37  |  수정 2021-06-29 14:51  |  발행일 2021-06-28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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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가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보굴암. 암벽의 바위틈에 작은 문(점선 부분)이 보이고, 거대한 바위들이 층을 이룬 암벽의 그늘 아래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기묘한 바위들이 하얗게 빛나 백악(白岳)이다. 흰 봉우리가 백 개나 돼 백악(百岳)이라고도 한다. 백두대간의 능선에서 갈라져 나와 속리산 문장대에서 화양구곡으로 뻗은 능선에 솟아 있는 백악산이다. 산의 북동쪽 자락인 상주 화북의 입석리 옥양골에 들어서면 계곡물 구르는 소리, 숲을 휘젓는 산새소리, 솔가지 흔드는 바람소리만 가득하다. 그러다 사방이 기암과 솔숲으로 둘러싸여 하늘만 보이는 평평한 땅이 나타난다. 그곳에 부처님의 현몽으로 창건된 사찰 석문사(釋門寺)와 오래된 설화가 깃든 보굴암(寶堀岩)이 자리하고 있다.

세조에 항거한 공주 숨어 살던 곳
서유영의 야담집 '금계필담' 기록
암벽 바위틈 문 달아 미륵불 모셔
스님이 꿈에 본 장소 석문사 창건
절 아래 20m 옥량폭포 자태 절묘


#1. 석문사와 보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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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화북면 입석리에 자리한 석문사. 석문은 '부처님을 맞이하러 나아가는 문'이란 뜻이다.
샘처럼 말간 대지에 석문사 극락보전이 서 있다. 팔작지붕이 활짝 팔을 펼친 듯 날렵해 웅장하면서도 상쾌하다. 극락보전은 중요무형문화재 74호인 성재(誠齋) 신응수(申鷹秀) 대목장이 지었다고 한다. 그는 숭례문 해체와 보수작업을 했고 광화문 복원을 총지휘한 장인이다. 오른쪽 뒤편에는 자그마한 산신각이 조용하다. 석문사는 극락세계의 주인인 아미타불을 모신 기도 도량으로 1990년 이굉용(李宏龍) 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경내의 큰 바위에 석문사를 창건하게 된 내력이 새겨져 있다.

어느 날 스님의 꿈에 가사를 곱게 입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났다고 한다. 스님은 부처님과 함께 황금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길을 달리고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다가 비탈길을 내려가 어느 들판에 섰다. 부처님이 손수 땅을 파헤치자 땅속에서 청룡과 황룡이 불을 내뿜으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때 부처님이 손가락으로 흰 바위로 뒤덮인 산을 가리켰는데 그곳에 거북 모양의 큰 바위산이 보였다. 바위산으로 향하자 온통 바위투성이인 산에서 길이 열렸다. 부처님이 어느 바위 굴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 팔베개를 한 채 모로 누우니 총과 칼로 무장한 수많은 군인들이 나타나 부처님을 호위했다. 굴 아래에는 작은 초가 한 채가 있었는데 노인 내외가 키질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기 위해 쌀을 손질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눈처럼 흰쌀을 수레에 싣고 굴로 향하는 그들을 보며 스님은 꿈에서 깨어났다.

이후 스님은 꿈에서 본 들판과 바위산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입석리 들판이었고, 바위투성이 백악산과 보굴암이었다.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스님은 이곳에 절을 짓고 석문사라 했다. 석문(釋門)은 '부처님을 맞이하러 나아가는 문'이란 뜻이다.

극락보전의 오른편 계곡 다리를 건너 소나무 숲길을 잠시 걸어가면 거대한 바위들이 층을 이룬 암벽의 그늘 아래 약사여래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암벽의 바위 틈에 작은 문이 보인다. 보굴이다. 굴 깊은 곳에 미륵불상이 있다고 한다. 그 뒤는 가파른 층벽으로 나무를 휘어잡고 올라가면 왼쪽으로 깜깜하고 좁은 통로가 나 있다. 30m쯤 들어가면 뒷굴이 나오는데 방 하나와 부엌 하나가 될 만한 크기라 한다. 다시 위로 오르면 밖으로 나와서 산등으로 오르게 된다. 현재 스님의 거처로 보이는 이곳에 세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가 숨어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세조에게는 공주 하나가 있었다. 어질고 덕이 많아서 단종이 물러나고 김종서와 육신(六臣)이 죽자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먹지 않았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능이 파헤쳐져 옮겨지는 일이 발생하자 공주는 울며 옳지 못한 처사라고 끊임없이 말했다. 세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분노했다. 이에 정희대비가 유모를 불러 보석을 주면서 공주를 데리고 도망가도록 했다. 충북 보은에 도착한 공주와 유모는 한 청년을 만나 함께 살게 된다. 그렇게 1년 정도 사는 동안 청년과 공주는 사랑하게 되었다. 둘은 혼인을 하면서 서로의 신분을 밝히게 된다. 공주는 세조의 딸, 청년은 김종서의 손자였다. 이는 고종 때 서유영(徐有英)이 저술한 야담집(野談集) 금계필담(錦溪筆談)에 나오는 이야기다.

세조는 말년에 사찰을 다니며 참회했는데, 하루는 공주가 사는 마을을 지나다 자신을 몹시 닮은 아이를 만났다고 한다. 그 아이를 따라가 공주를 만난 임금이 크게 기뻐하면서 가마를 보낼 테니 서울로 오라고 했다. 다음날 승지를 보냈지만 공주는 이미 가족과 함께 도망치고 없었다.

야사에 의하면 세조는 자신의 딸이 숨어 살고 있음을 알았지만 모른 척하고 족보에서 이름을 지웠다고 한다. 더 이상 천륜을 저버리지 않고 딸의 행복을 바라는 아비의 마음이었을까. 그들이 숨어 살던 굴은 결국 원수를 사랑으로 승화시킨 굴이라 하여 '보배로운 굴'인 '보굴'이라 불리게 되었다. 세조가 죽은 뒤 그들은 보굴암을 떠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보굴암은 소원을 성취하는 기도처로 이름이 났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는 김만성 스님이 보굴암 아래 초암(草庵)을 짓고 암울하고 흉흉하던 시절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기도처로 삼았다. 초암은 1970년경에 미등록 사찰이라 하여 철거됐다. 보굴 앞에 서면 세상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솔숲 너머로 입석리의 들판과 집들이 애틋하게 평화롭고 첩첩으로 굴곡진 속리산의 능선들이 후련하다.

#2. 옥량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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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사 아래쪽에 위치한 옥량폭포. 천연 돌다리의 자태가 마치 옥(玉)으로 다듬은 대들보(樑) 같다 하여 옥량폭포라 부른다.
보굴암 아래쪽에 석문사 깊은 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폭포가 돼 떨어진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돌다리 아래로 숨어든 옥류가 암벽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절묘한 모습이다. 이 천연 돌다리의 자태가 마치 옥(玉)으로 다듬은 대들보(樑) 같다 하여 옥량폭포라 부른다. 옥량은 길이 약 20m, 너비가 약 2m 되는 평평하고 기다란 바위다. 층층의 암반 위에 받침돌이 양쪽으로 놓였고 그 위에 옥량이 걸쳐져 폭포의 수구는 마치 작은 하늘 문 하나를 열어 놓은 듯 환하다. 위에서 오는 물은 큰 바위를 늘여 세워 가리고, 밑으로 흐르는 물은 단애로 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바위들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강건하지만 물의 흐름 따라 비탈져 다리를 건너려면 매우 조심해야 한다.

계곡물은 옥량 위 바위 밑에 청담(淸潭)을 만들어 한숨 쉬다가 넓은 암반에 잔잔한 비늘을 그리면서 넓게 퍼진다. 그리고는 살며시 옥량 밑으로 모여들어 그대로 떨어진다. 억겁을 떨어지고 또 떨어져 바위는 닳고, 골이 지고, 뚫어져 구멍이 나고, 다시 청담을 이루고 또 흘러간다. 너른 반석과 굵은 바위들이 넘너른하다.

바위 위에는 소나무들이 저마다의 풍취로 섰고, 바위틈에는 산 꽃이 피어난다. 조그마한 모래밭에는 갈대와 땅버들이 흔들린다. 층을 지어 대가 되고, 높이 솟아 누각이 되고, 넓게 펼쳐져 누마루가 되었다. 이 모두가 하늘의 조화다.

폭포 옆에 작은 굴이 있다. 겨우 한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는 규모다. 내부에는 기괴한 형상의 바위들이 엉켜 있고 한층 위에 외부로 통하는 날목이 있다고 한다. 이 굴이 보굴의 시작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야사'는 '민간에서 사사로이 기록한 역사', '야담'은 '야사를 바탕으로 흥미롭게 꾸민 이야기'다. 증거는 없지만 심장을 울리는 이야기, 마음에 무언가가 쿵 부딪는 이야기다. 욕망, 증오, 분노, 용서, 사랑으로 속이 뜨겁다. 숲을 휘젓는 산새 소리에 눈이 맑아지고 솔가지 흔드는 바람에 이마가 상쾌해진다. 계곡물 구르는 소리에 창자가 씻기는 듯 시원하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참고=상주시 누리집. 상주문화원 누리집. 한국지명유래집. 한국콘텐츠진흥원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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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 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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