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스타트업 위기] 신생기업에 지원금 집중돼 '고성장기업' 출현 부재 초래

  • 오주석
  • |
  • 입력 2021-06-28 19:33  |  수정 2021-06-30 09:57  |  발행일 2021-06-29

2015년 설립된 대구 소재 스타트업 <주>딘에어코리아는 업계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수 많은 시행착오 끝에 2019년 출시한 벽걸이형 UV-C LED 공기청정기가 입소문을 얻기 전까지 수입이 사실상 전무 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대기업에 완제품 납품 계약을 체결하고 영국 BBC방송에 소개될 정도로 상품성을 인정 받았지만 과거만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다. 이형수 딘에어코리아 대표는 "원래는 직수형 가습기를 창업 아이템으로 시작해 3년간 매진했으나 시장 경쟁에서 밀려 사업을 그만 둘 생각까지 했다"며 "사업의 유동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아이템만 고집했다면 지금의 딘에어코리아는 없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대구스타트업
대구경북 지역 스타트업 10곳 중 7곳이 5년 내 사업장을 철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 기업들은 자금 확보(73.1%)와 경제활동 문제(47.7%)에 많은 여러움을 겪었다.

◆'데스벨리' 구간 통과 스타트업 30% 불과
대구경북 창업 초기 스타트업의 5년 내 생존율은 30% 전후다. 연구개발(R&D)에 성공한 후에도 자금 부족 등으로 인해 사업화에 실패하는 '데스벨리(Death Valley)' 구간을 무사히 통과하는 스타트업이 10곳 중 3곳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스타트업의 1년 생존율은 2019년 기준 대구가 65.8%, 경북은 61.9%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보이나 4년 뒤 생존율은 33.3%, 30.9%으로 절반 정도로 떨어진다. 전체 소멸률은 대구 81.15%(신생 3만7천788개 사 중 3만 665개 사 소멸), 경북 83.31%(신생 3만9천962개 사 중 3만3천296개 사 소멸)로 심각성을 더 하고 있다.

창업 초기 스타트업은 창업자금 확보부터 제품 상품화 단계까지의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구시가 최근 발표한 '2020 대구시 창업기업 실태조사'에서 따르면 창업 시 장애요인으로 자금 확보가 73.1%로 가장 높았고 창업에 성공까지 경제활동 문제(47.7%), 창업 아이디어 부재 및 실현 가능성(21.7%)이 뒤를 이었다. 업력 별로 구분하면 창업 초기 기업일수록 경제활동 문제(1년차 50.3%·2년차 54.7%)가 심각했으며, 5년 이내 스타트업 중 3년 차에서 자금문제(79.2%)를 가장 어렵게 생각했다.

실제 2019년 창업한 대구 스타트업 <주>아임시스템은 주력 아이템인 '혈관 중재 시술용 정밀 마이크로'의 경제활동 문제가 상용화에 걸림돌이 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4년 출시를 목표로 지난해 대형 동물 실험에 성공하는 등 눈에 띄는 실적을 달성했지만 앞으로 임상실험까지 많은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구 인력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이중고에 처해있다. 김진영 아임시스템 대표는 "임상 이후 인허가를 획득해야 수익이 발생하는 의료기기의 특성상 오랜 기간 외부 투자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상용화에 성공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목표 시간이 다가올수록 조급함과 책임감이 커진다"고 말했다.

◆초기 창업 집중지원 구조 개선 시급
더 큰 문제는 유니콘 기업의 전 단계로 볼 수 있는 '가젤 기업'의 출현 부재다. 가젤 기업은 사업자등록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기업 가운데 최근 3년간 매출액과 상용근로자 수가 연평균 20% 이상 성장한 기업을 일컫는다. 지난해 대구시는 올해를 유니콘 기업(한화 약 1조1천억원) 육성 원년의 해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총 63개 혁신 창업 사업에 총 550억원을 투입, 대구의 창업 생태계 활성화에 적극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구시는 유니콘 기업 육성은 물론, 가젤 기업 창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젤기업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대구의 활동 기업(29만6천26개) 대비 10% 고성장 가젤 기업(89개) 비율은 전체의 0.03%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경북의 10% 가젤 기업 역시 101개로, 전체의 0.032%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 (0.063%), 경기(0.049%) 지역 가젤 기업 비율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 같은 문제는 초기 창업 기업에만 지원금이 집중된 것이 원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3월 '역동적 창업생태계 조성' 보고서를 통해 국내 창업생태계가 양적으로는 성장세에 있지만 질적 성장은 미흡하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2016년부터 5년간 국내 벤처투자 금액은 2조1천503억원에서 4조3천45억원으로 100.2% 증가했고, 투자 건수는 2천361건에서 4천231건으로 79.2% 늘어나는 등 양적으로 대폭 증가했다. 반면, 창업기업의 5년 이내 생존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수) 국가에 비해 평균적으로 15%포인트 정도 낮았다.

이에 대한상의는 국내 스타트업의 창업 생태계 문제점으로 △과도한 창업규제 환경 △모험자본 역할 미흡 △초기자금 부족 △회수시장 경직을 지적하며 법·제도 혁신과 민간자본 참여 활성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역 스타트업으로 IPO(기업공개) 단계까지 성장한 아스트로젠의 황수경 대표는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기술·경영·자본이 트라이앵글로 흐트러짐 없이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향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높은 만큼, 균형을 잡아줄 제도 및 의사결정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방의 홈런보다 연속 출루가 중요"
이에 대구시와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는 고도성장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Pre-IPO(기업공개)를 지원, 내년부터는 창업 지원 최초로 상장기업을 배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라고 28일 밝혔다. 이를 위해 벤처케피탈(VC), 엑셀러레이터(AC), 엔젤클럽 등 민간투자자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1천 734억원 규모의 공공창업펀드도 운영해 자금 투자 유치가 어려운 지역 기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재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지역 스타트업이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대형 VC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싶게끔 하는 좋은 스타트업을 지역에서 꾸준히 발굴하는 것"이라며 "한 방의 홈런보다 연속 출루가 중요한 만큼 하나의 훌륭한 기업을 배출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연속적인 혁신 창업기업 배출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오주석기자 farbrother@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오주석 기자

영남일보 오주석 기자입니다. 경북경찰청과 경북도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제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