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농업지도가 바뀐다] 사과 떠난 자리에 ○○가 자란다

  • 서민지,이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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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26 16:13  |  수정 2021-07-28 11:11  |  발행일 2021-07-27 제3면
체리 재배면적 꾸준히 증가
"현 추세라면 점유율 1위 가능"
연·잎들깨 명성은 '위태'

'능금 꽃 향기로운 내 고향 땅은 팔공산 바라보는 해 뜨는 거리' 

 

1971년 고 길옥윤이 작사·작곡하고, 패티 김이 부른 노래 '능금 꽃 피는 고향'의 가사다. 노래가 탄생한 50년 전까지만 해도 자타공인 '능금의 고장'이었던 대구이지만, 2021년 현재 대구에서 능금 꽃향기를 맡기란 쉽지 않다. 기온 상승 때문이다. 

 

사과는 연평균기온이 8~11℃, 생육기 평균기온이 15~18℃의 비교적 서늘한 기후에서 재배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1991~2020년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12.8℃로 이전 평년값(1981~2010년)보다 0.3℃ 올랐다. 대구 역시 같은 기간(1991~2020년) 연평균 기온은 14.5℃였는데, 이전 평균값(1981~2010년)과 비교해 0.3~0.4℃ 높았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대구를 떠난 사과는 최근 강원 산간지역에까지 올라갔다. 능금이 대구를 떠나면서 새로운 작물이 존재감을 나타내며 대구의 '신(新) 농업지도'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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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 반야월 연꽃단지 내 연밭에 모가 함께 재배되고 있다.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
◆ 대구 '연' '잎들깨' 수확량 감소
대구 동구 반야월 연꽃단지 일대는 1950년대부터 '전국 최대 연 생산지'로 자리매김해왔다. 대구시에 따르면 동구 반야월 연근의 생산 점유율은 34%로 전국 1위다. 지난해 10월 기준 대구의 연근 생산량은 4천182t 규모로 추산된다. 농림부에 따르면, 대구의 연근 재배면적(175.82㏊)도 단연 1위다. 반야월 일대에는 연꽃테마파크, 연 생태관 등 연을 활용한 관광지도 있고, 대규모 연꽃 축제가 열리기도 하는 등 그 상징성이 크다.


하지만 정작 연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전국 1위 타이틀'이 위태롭다며 걱정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연의 경우 6~8월 본격적으로 줄기가 자라기 시작한다. 잘 자라는 온도는 25~30℃이며, 39℃까지 괜찮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기온이 높아지면서 대구 뿐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연을 재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대구지방기상청에 따르면, 대구의 지난 20일 낮 최고기온은 33.9℃로 연이 잘 자랄 수 있는 온도였지만, 같은 날 경북 안동과 상주도 낮 최고기온 각각 32.2℃, 31.8℃를 기록했다. 변우기 반야월연사랑협동조합 대표는 "기온이 높아지면서 경북 상주, 문경, 고령, 심지어 경기도까지 연 생산 분포도가 넓어졌다"고 했다.
 

대구의 연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지난 19일 찾은 반야월 연근재배단지엔 '연'대신 '벼'를 심은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통상 연 재배는 벼 농사보다 최대 6배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작 혼합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많았다. 

 

2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모(56)씨는 "몇 년 전부터 연잎이 말라 비틀어지고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어 벼를 대신 심고 있다"고 했다. 30년동안 연 농사를 지었다는 박모(58)씨는 "언젠가부터 연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땅이 생기고 있다. 쌀도 직접 지어 먹을 겸 어차피 논에 물이 있으니 벼를 대체 작물로 심고 있다"고 했다.
 

농부들은 연 생산량 감소 원인을 '화학비료 찌꺼기'로 추정했다. 변우기 대표는 "연은 땅의 영양분을 많이 필요로 해서 화학비료를 쓴다"며 "연이 흡수하고 남은 화학비료 찌꺼기가 땅에 축적돼 산성화되는 것"이라고 했다. 더욱이 연은 '일모작'이라, 이모작 방식과 달리 비료가 토양에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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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 성동교 인근 잎들깨 재배 시설의 모습.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
농부들에 따르면 대구의 '잎들깨' 농부들도 대구의 농업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구에서 잎들깨를 재배한 지는 약 30년 됐다. 현재 대구의 잎들깨는 충남 금산과 경남 밀양에 이어 전국 3번째로 생산량이 많고, 시장점유율은 10%에 달한다. 

 

대구 잎들깨는 향기롭고 짙은 깻잎 향으로 수요가 많은 편이다. 또 대구 농부들이 깻잎을 8~12장씩 묶는 '대구단' 방식, 깻잎을 단으로 묶지 않고 박스에 담는 '찹찹이' 방식 등을 개발하면서, 타 지역 재배지에 전파되기도 했다. '앞서가는 농법'은 대구 농부들의 자랑거리다.
 

문제는 높아지는 대구의 기온이다. 높은 기온은 깻잎이 타고 얇아지는 '온열 증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현재 잎들깨 재배지는 대구보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경북 영천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깻잎이 자란 3~4월 대구의 최고기온은 8.8~29.5℃였지만, 영천의 최고기온은 5.1~27.7℃였다.
 

정재웅 대구잎들깨연구회장은 "이대로라면 15~20년 뒤엔 대구지역 잎들깨 재배지 자체가 사라지고 주산지는 경산 하양이나 영천으로 이동할 것이다. 대구의 잎들깨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선 하우스 등에 대한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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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일 대구상동영농조합 대표가 체리나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
 ◆ '상동체리' 급부상

능금 등이 떠난 자리에 새로운 농작물을 대체하면서 웃고 있는 농부들도 있다. '상동체리'를 키우는 농부들이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대구 동구 상동마을에서 일본인이 처음 체리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체리 재배가 이어지고 있다. 

 

상동체리는 2012년 농산물 지리적 표시제가 실시된 이후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농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대구의 체리 생산 점유율은 경주에 이어 2위(30%)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30일 기준 대구의 체리 생산량은 37t에 달한다.
 

지난 19일 만난 마을 농부들은 "원래는 복숭아와 능금을 주로 키웠지만, 점점 체리로 전환하는 추세"라고 했다. 대구의 기온이 점차 높아지면서 1990년대 이후 줄어드는 사과 수확량을 대신해 체리의 수확량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체리는 일교차가 최소 5℃ 이상인 날이 110~115일 이상이고 일조량이 높은 환경에서 잘 자란다. 노동력도 비교적 적게 들고, 수확량과 소득이 높다는 점도 체리 재배의 장점이다.
 

농부들은 상동 체리가 국내 점유율 1위로 등극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전망했다. 대구의 평균기온이 경주보다 높은 덕분에 수확이 경주보다 '1주일' 빠르기 때문이다. 상동마을 30여 가구는 5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체리를 수확하고 있는데, 지난 5월 4주차 경주의 평균기온은 17.7℃, 대구의 평균기온은 18.5℃로 대구가 0.8℃ 정도 높았다.
 

송자일 대구상동영농조합 대표는 "일주일 차이가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체리 수확이 1개월 남짓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빠른 수확 기간은 상동체리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동마을의 환경도 체리를 키우기에 좋다. 전경호 대구체리작목반 감사는 "체리나무는 자라면 뿌리가 드러나는 품종이라 평지에 물이 차면 나무가 고사한다"며 "상동마을은 15~20%가 경사면이라서 배수가 잘 돼 체리가 잘 자란다. 토양도 체리 재배에 적합하다"고 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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