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6주년 기획] 광복의 환희 담긴 창간, '4·19' 민주정신 담긴 복간..."사람과 지역의 가치 드높이는 영남일보가 되겠습니다"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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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09 21:30  |  수정 2021-10-11 08:40  |  발행일 2021-10-12 제6면

광복 직후 대구·경북은 제대로된 우리 신문이 없었다. 당시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일본인에 의한 일본어 신문인 '대구일일신문'이 전부였다. 신문 발행에 필요한 우리말 활자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45년 9월 조선상공신문 경북지사장이던 한응렬은 '우리' 신문 창간에 나섰다. 마침내 그해 10월11일 13명의 동인은 아트지에 인쇄된 타블로이드판 2면짜리 창간호 300부를 발행했다. 우리말로 된 우리 신문, 바로 '영남일보'였다. '신문다운 신문을 발행하겠다'는 간절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영남일보는 광복의 결실이었다. 광복을 기다리는 뜨거운 목마름은 영남일보를 탄생시킨 배경이었다. 서구 열강의 개입과 좌·우 이념의 대립이 극심하던 시절, '우리 힘으로 만든 우리 고장 신문'이었다. 한응렬을 비롯한 13명의 동인이 뜻을 모아 창간한 '광복 이후 지역 최초의 순수 민간지'였다.


창간 이래 영남일보는 환희와 질곡의 역사를 거치며 독자와 함께했다. 신군부에 의한 강제폐간과 가슴 떨리는 복간을 순간을 거치기도 했다. 영욕의 76년, 그 숱한 세월 동안 독자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올곧게 지켜온 '영남일보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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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창간호

◆ 창간사에 깃든 영남일보 정신
'일본제국주의 압정하에 충식(蟲息)의 생명을 계속하려고(중략) 익찬총독정치 (翼贊總督政治)에 주구적(走狗的) 행동과 함께 필첨(筆尖)으로서 동포대중을 위만(僞瞞)하며...'

 

1945년 10월11자 영남일보 창간사는 '통렬한 고백과 반성'이었다. 기실 영남일보 창간 주역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친 언론인이었다. 그들에게 광복은 '우리 말로 된 우리신문'을 만들 수 있다는 간절한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일제 치하의 기자'였던 과거 행적은 치욕스럽고 죄스러웠다. 서슬 퍼런 검열 앞에 총독정치의 입이 되어 동포를 거짓으로 속인 것이 한스러웠다. 고백해야 했다. 과거의 잘못을 스스로 드러내 속죄해야 했다.


영남일보 창간사는 그렇게 통렬한 고백으로 시작됐다. 창간 주역들은 '아름다운 우리 동포의 민족성을 해독(害毒)으로서, 전파(傳播)식힌, 미균제조자(微菌製造者)의 일역(一役)을 감히 행한' 그들의 잘못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일제강점기의 과거 행적을 고백하며 창간한 신문은 당시 영남일보가 거의 유일했다. 대다수가 과거의 행적을 숨기고 변명하며 더러는 미화하기에 급급했다. 민족지를 표방하며 창간한 여타 신문들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영남일보 창간사는 독자 앞에 속죄하며 바로 서겠다는 '양심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통렬한 고백 이후에는 '눈물의 반성'으로 이어졌다.
'우리 과거 신문인(新聞人)의 죄상(罪狀)은 양심적으로 삼천만동포 앞에 업대여 엇뜨한 규탄(糾彈)과, 질책(叱責)을 바들 용의가 잇슴을 여기에서 참홰의 눈물을 머금고 새삼스럽게 맹서하야 두는 바임이다.'

그러면서 '진실한 보도전사'로 거듭 날 것을 독자 앞에 다짐했다.
'당파와 알력을 초월하고, 삼천만동포에게 진실한 보도전사(報道戰士)가, 되려고 하는 바임이다.'


창간사를 가득 채운 '고백과 반성'. 그것은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영남일보의 영원한 정신이다. 76년 역사를 이어 온 영남일보의 근간이기도 하다. 6·25전쟁 중 전국에서 유일하게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을 발행한 원동력이었고, 1976년 1월13일 지방지 최초로 지령 1만 호를 발행하며 한국 언론사에 새로운 역사를 남길 수 있었던 힘이었다. 지방시대를 열어가는 영남일보의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과오와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에 극히 인색한 이 시대의 대한민국 언론에 던지는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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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복간호

◆ 복간사에 담은 영남일보 정신
창간 이래 영남일보는 광복의 희열과 전쟁의 참상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촛불혁명까지, 환희와 질곡의 역사를 담담히 기록하며 독자와 함께했다. 하지만 그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혹한 시대와 맞서야 했고, 독재와 폭거의 시대를 헤쳐나와야 했다. 무엇보다 절필의 순간을 감내해야 했다. 영남일보는 1980년 11월25일 신군부의 폭거에 의해 강제폐간되고 말았다. 하지만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복간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마침내 1989년 4월19일, 영남일보는 복간호를 내며 독자 곁으로 돌아왔다. 


복간일을 '4월19일'로 정한 이유는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드높인 '4·19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였다.


복간사에서 영남일보는 '우리시대사의 민족적 민주적 자각과 부활의 한 출발점이었던 4·19를 기해 재탄생한다'고 천명하며 '민주화의 완전 실현'을 거듭 다짐했다. 창간 이래 지역과 민족, 그리고 민주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영남일보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의미였다.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권력에 대해서는 추상같은 회초리를 들겠다는 영남일보의 선언이기도 했다.


특히 복간사에서 '순수하고 올바른 향토신문으로서 향토공동체와 민주·통일·지방화를 위한 공기로서 당당하고 친근하며, 그래서 위대하고 순정한 영남일보를 만들어 갈 것'을 독자들에게 엄숙하게 밝혔다.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드높인 '4·19정신'은 '영남일보의 복간 정신'이면서, 76년간 여전히 쉬지 않고 달려온 영남일보의 지향점이다.


◆ 다시한번 고백과 반성을 하며…
영남일보는 창간 76주년을 맞으며 다시 한번 '고백하고 반성'한다. 뜨거웠던 가슴은 식고, 초심이 바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독자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오만함이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인식과 사고에 이끼가 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잘못도 시인한다. 언론 환경이 급변하면서 신문의 정체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책임도 무겁게 받아들인다. 영남일보가 조금 더 잘하고 열심히 했다면 지방시대가 더 빨리 우리 곁에 왔을 것인데, 그렇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


창간 76주년을 맞은 오늘, 영남일보는 다시 한번 창간과 복간사에 새긴 정신을 되새긴다. 무디어진 펜을 날카롭게 벼리고, 사람과 지역의 가치를 드높이는 영남일보가 될 것을 독자께 약속드린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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