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스토리-이춘호기자의 카페로드] 902번 지방도 따라 카페투어...산바람 쐬며 커피 한 잔, 붙잡고 싶다 이 가을…

  • 이춘호
  • |
  • 입력 2021-10-29   |  발행일 2021-10-29 제33면   |  수정 2021-11-01 16:45

2021102901000736900029941
경북 청도군 각북면 관광농원 군불로가 새롭게 마련한 '로카커피'. 한때 군불로는 찜질방·세미나실 등을 갖춰 탈도심 가든형 관광농원으로 단체 손님한테 큰 인기를 얻는다. 2010년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해 영업이 부진했는데 로카커피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픈한 공간이다. 커피 한 잔을 품고 쾌적한 야외 테이블에 앉으면 벽천형 폭포와 앙상블을 이루는 메밀밭과 백일홍이 깊어가는 가을날의 정취를 돋워준다.

가창댐에서 헐티재로 향한다. 초행인 사람들은 최정산과 앞산 사이에 형성된 가창댐의 물빛, 그리고 상당한 높이를 자랑하는 산세, 깊이가 느껴지는 싱그러운 바람, 댐을 품으며 가설된 둘레길을 걷는 도보족, 물찬 제비처럼 날렵하게 라이딩하는 바이크·사이클족의 활기찬 종아리 근육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연신 '굿, 모든 게 좋군!'을 연발하게 된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 가창댐 삼거리에서 우회전. 갑자기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감이 빠른 사람들은 왠지 모를 섬뜩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6·25전쟁 때 이 언저리에서 끔찍한 학살이 자행된다. 보도연맹에 연루된 상당한 수의 인사들이 총살당한다. 당시 '학살장으로 끌려간다'란 말을 세인들은 '골로 간다'로 풍자했다. 뒤늦게 시월문학회가 생겨 나 유족을 위로하고 매년 죽은 영령을 위해 진혼제와 병행해 문학제를 연다.

달성군 가창면과 경북 청도군 각북면의 경계에 우뚝 선 헐티재. 팔조령과는 물성이 다르다. 헐티재가 더 고즈넉하다. 그 재가 두 팔을 좍 벌린다. 가창댐 삼거리~가창댐 상류~정대숲~루소의 숲~각북면~풍각면으로 이어지는 17㎞ 남짓한 902번 지방도. 그 좌우 계곡에 혈맥처럼 들어 앉은 이런저런 반짝거리는 아트 포인트를 다 체험하려면 족히 한 달은 소요될 것이다.

좌우로 전개되는 풍광에선 으스스 할 정도의 '야성(野性)'이 느껴진다. 봄철에는 '벚꽃길', 가을에는 '단풍길'로 사랑받는다. 한겨울에는 잎 하나 허락지 않는다. 너무나 앙상한 활엽수 군락이 하절기엔 숨겨놓았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멀리서 보면 동면 중인 거대한 짐승 같다. 2000년을 넘어서면서부터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입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가창댐 삼거리~정대숲~각북면~풍각면 17㎞ 구간
봄에는 벚꽃, 가을엔 단풍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갤러리·카페·문화촌…곳곳에 화가·문인들 아지트
건축가 남편의 흔적 담긴 게스트하우스도 입소문



5

대구 시민의 식수원이기도 한 가창댐 상수도보호구역과 맞물려 그린벨트로 보호받고 있다. 그래서 환경이 덜 망가졌고 다른 곳보다 더 좋은 풍광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구간은 비포장길이었다. 화전민 근기라야 제대로 살 것 같은 오지라서 세인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져 있었다. 각 계곡의 막다른 지점에는 영험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다. 산신각, 상여집, 무당집, 말기암 환자 등이 의지할 만한 공간이었다.

1980년을 거쳐 90년대로 접어들면서 탈도심 전원파로부터 제2의 인생 거점 공간으로 인기를 끈다. 덩달아 감이 빠른 기획부동산 업자들이 발 빠르게 곳곳에 포진된 허름한 시골집을 사들였다. 평당 가격은 날로 치솟고…. 형편이 괜찮은 이들은 서둘러 거기에 새로운 전원주택을 짓기 시작한다. 소설가 김원일도 잠시 정대숲 맞은 편 야산의 까무룩한 풍광이 좋아 거기에 집필실을 마련하기도 했다. 바로 옆에는 지역 서각계의 리더 중 한 명인 이주강의 집도 있었다. 덩달아 화가와 시인의 집, 갤러리, 카페, 문화촌, 식물원, 조경원, 별장 등이 가세했다.

1990년대 후반쯤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중턱에 깃을 튼 복합문화공간은 '비슬문화촌'이었다. 정인표 촌장과 김영자 소장(도예가) 부부는 2000년부터 10년 이상 신개념 게릴라 콘서트를 펼쳐갔다. 한때 '바람의 뜰'이란 카페도 운영했다. 도예가 이복규, 일본인 아키야마 준도 각북면에 들어와 산다. 마지막 행렬에 가세한 예인은 건축가 이용민이다. 그는 오래 암 투병을 했다. 그러다가 여기다 싶은 곳을 발견한다. 여생을 재밌게 보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버전의 '송내헌(松內軒)'을 짓는다. 유달리 소나무가 수북한 청도군 각북면 금천리 마을회관 언저리에 있다. 올해 고인이 된 그는 공간을 아내에게 남기고 훌쩍 세상을 떠난다. 덕분에 아내는 핫플 하우스테이 '유유자적〈작은 사진〉'의 주인이 된다. 그 공간은 심플하면서도 상당히 유니크하다. 건축 관련 책, 솔 향기 머문 수다, 거기에 커피 향이 매칭된 신개념 공간. 그 하우스테이가 20대들로부터 입소문이 난 모양이다. 밤 10시가 넘으면 주위 어르신의 잠자리를 생각해 달빛 정도로 대화 농도를 조절해야 되는 게 이 공간의 불문율이다. 심야의 '달빛커피' 한 잔이 어울리려나.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