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대구예술행동과 대구416연대 회원 등 30여명, 팽목항 찾아 세월호 희생자 넋 위로

  • 이준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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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03 17:34  |  수정 2022-01-04 08:47  |  발행일 2022-01-05 제12면
지난 크리스마스에 퍼포머, 화가, 거리의 춤꾼, 대금연주가, 사진작가, 동요가수, 시인 등 30여명 자발적 참가
팽목
대구예술행동과 대구416연대 회원 등이 크리스마스인 지난해 12월25일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아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공연을 펼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북 성주 소성리 미사일 반환 문제 등 지역 현안들 앞에서 예술이 가진 힘으로 주민들과 연대하고 있는 비 상시적 모임인 대구예술행동은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지금 떠올려도 울음이 터져 옆사람에도 옮아가는 곳을 찾았다.

2014년 4월 16일은 어떤 이들에게는 평범해서 그저 떠나보낸 하루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타임머신만 있다면 그날 새벽때만이라도 돌리고 싶은 하루일 것이다. 친구들과 학창시절 마지막 추억을 남긴다고 떠난 수학여행 길은 선박의 적재량 초과, 재난 컨트롤 타워 부재 등과 '가만 있으라'는 주입식 교육 등이 맞물려 대형참가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한국 사회 부끄러운 민낯, 대한민국에 레드카드를 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 사태 등으로 끊긴 '기억 순례 길'을 다시 잇고자 퍼포머, 화가, 거리의 춤꾼, 대금 연주가, 사진작가, 영화 테라피 활동가, 동요 가수, 전통 연희단, 시인, 대구 4·16연대 등 30여명이 자발적으로 뭉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전남 진도로 향하는 버스 안 분위기는 무거웠다. 대구 4·16 연대가 나눠준 '세월호 참사 대구 시민위원회가 기획하고 대구 세월호 집행위원인 한유미씨가 쓴 '잊지 않고 있어요, 그날의 약속''을 읽는 이도 있었고, 이르게 별이 된 아이들을 기리는 이도 있었다.

이날 행사는 진도 앞 바다에 설치된 '0416. 팽목기억관' 옆 강당에서 진행됐다. 대구 4·16연대 시민들은 '기억 순례 길'을 다시 이으려 눈보라를 헤치고 2시간 가까이 걸어 기억관으로 왔으나 지친 내색 하나 없이 막 도착한 광주 시민 상주모임 회원들과 뜨거운 포옹으로 인사를 나눴다.

공연의 시작은 거리의 춤꾼 박정희(대구 북구의원)씨의 꽃다운 나이에 떠난 넋들을 기리며, 남겨진 가족들을 위로하고 일반 시민들이 그들을 품는 형상의 춤을 선보였다. 팽목을 처음 찾았다는 대금 연주자 류연경씨는 목이 메고 눈물이 앞을 가려 공연을 잠시 멈추었다가 격려 박수로 힘을 내 다시금 청성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림책 활동가인 정주원씨의 '곰과 작은 새'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얼굴은 점점 환하게 변해갔다. 영화를 소개하는 청년 박길도씨는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가져와 "미국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 오스카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세월호도 만날 수 있고, 사회적 참사 당시에만 관심을 갖고, 평소 재난과 안전에 무관심한 우리들의 삶을 되짚는 기회"가 될 것이라 전했다.

영남일보 기자인 동요 가수 이춘호씨는 노래와 노래 사이에 팽목에 도착하여 즉석에서 쓴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공연 중간에 고 고우재 군의 부친이신 고영환씨의 환영 인사말이 있었다. 고영환씨는 전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보고 "분노를 넘어 만인 앞에 공평한 법이 실효한 지를 되묻고 싶다"며 "여러분과 함께 진실규명이나 추모비, 기념관을 우리 모두를 위한 것으로 건립하겠다"고 전했다.

이현순·이금란 연극배우가 준비한 짧은 연극 '태'는 공감의 눈물로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으로 3인조로 구성된 전통 연회 팀 '비나리'는 유가족과 더 많은 시민들이 늘 함께 하리라는 뜻으로 리듬을 돋우었다. 이 밖에도 그림 퍼포먼스의 최수환씨가 행사 시작 전부터 마칠 때까지 행사 공간 한켠에서 크고 둥근 보름달 속 가득한 노란 나비가 반짝이는 그림을 그려 기념관 측에 전달했다.

현장을 잊지 않으려는 듯 사진작가 이기형씨와 사윤수 시인은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니며 스케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행사 후,고 고우재 군의 부친이신 고영환씨는 취재원과의 인터뷰에서 "요새 꼬마 학생들이 이곳으로 많이 견학 온다며, 집이 경기도 안산이어도 내가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라며 "빠른 시일에 아이들을 기리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4·16 기억공간을 만들 것"이라 전했다.

이날 참석한 거리의 춤꾼 박정희(대구 북구의원)씨는 "참사 발생 후 초창기부터 온 맴버로서 아직 정확한 진상규명이 밝혀지지 않은 데에 분노하고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 죄송하고 지금 유가족이 있는 공간도 곧 철거 예정이라 하니 너무 충격적"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공동으로 행사 기획한 대구 4·16 연대의 한유미 집행위원은 "참사 초창기부터 팽목으로, 또 유가족이 있는 안산으로 뛰어 다녔는데 시간이 주는 무게가 너무 아프고 무거워서 한동안 쉬었다. 올해만 해도 3번째 방문인데 마침 크리스마스여서 너무 뜻깊다"며 "2021 크리스마스 팽목항은 기억하고 약속하고 책임지는 자리"라고 말했다.

예술인들의 선물 꾸러미가 맘에 들었는지 저녁이 되자 팽목항에는 올해 첫눈이 내렸다.

이준희 시민기자 ljoon1125@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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