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람과 선(線)] "겨울 별미 '붕어빵' 빵틀에서 꺼내는 타이밍이 맛 좌우"

  • 김채한 전 달성문화재단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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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18   |  발행일 2022-02-18 제38면   |  수정 2022-02-1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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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소한 대한 날씨가 매서웠다. 날이 풀리려다 정월 대보름 전후해 꽁 얼더니 곧 영등할매가 오시는 음력 2월 초순까지는 옷깃을 단도리 해야 한다. 꽃샘추위다. 이럴 때 생각나는 따뜻한 붕어빵. 도심의 골목 어귀로 휘어 돌며 부는 곡선의 꽃샘바람이 여간 찬 게 아니다. 그래도 그 바람 속에는 봄이 멀지 않다는 듯 붕어빵 같은 온기가 있다.

골목이나 시장통 어귀 한구석을 차지한 허름한 붕어빵 굽는 포장리어카. 갓 구운 붕어빵 냄새가 폴폴 난다. 탁월한 시어 감각으로 엮은 시인 김완용의 시 '붕어빵'이다. "촉수 여린 불빛 아래/ 비늘을 털며/ 단팥 사랑을 배(孕胎)고/ 세상 밖 끌려 나온/ 가슴 뜨거운 붕어 한 마리/ 아 이 놈/ 시린 손바닥에 누워 달콤하게/ 겨울을 녹이고 있다"

5마리 2천원' 부담없는 서민간식
빵 지느러미 붙은 부스러기 맛도 일품
공직 선거운동도 타이밍이 관건
상대 흠집 내다보면 중요 시기 놓쳐

붕어빵 모계는 와플·부계는 만두
中 한나라까지 통하는 퓨전 음식

佛 서적 '갈릴레이와 금붕어' 속 대화
"어항 속과 밖에서 본 붕어 차이 커"
"지구는 돈다" 증명 위해 동원된 예시


◆최고의 거리음식

붕어빵은 즉석에서 구워 파는 겨울 최고의 거리 음식이다. 우선 값이 싸다. 서민들이 즐기기에 딱 좋은 값이다. 2천원이면 5마리. 차분하고 가지런한 파란 불꽃이 무쇠로 된 둥근 붕어빵틀을 달궈 굽는 붕어빵은 낡은 알루미늄 주전자로 반죽을 부은 후 30초 정도면 한 마리씩 나온다. 붕어빵틀에는 늘 열 마리의 붕어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세상 밖으로 나올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조금만 서둘러 나와도 붕어빵은 덜 익어 생밀가루 맛이 묻어 영 아니다. 조금만 늑장을 부리면 이건 탄내 때문에 입 주위가 검게 묻는다. 꺼내는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다. 절묘한 타이밍이라야 절묘한 맛이 난다. 붕어빵에서도 타이밍은 절대적이다. 하긴 세상살이에 타이밍이 중요하지 않다면 그건 엉터리다.

선거도 붕어빵 못지않게 타이밍이다. 흠집도 내고, 선동도 하다 보면 타이밍을 놓칠 때도 있다. 놓친 타이밍을 만회하기도 쉽지 않지만 만회하려는 그 몸부림이 붕어를 연상케 할 때도 있다. 어쨌거나 대선은 바짝 다가왔다. 공식 선거운동도 시작됐으니 2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TV토론도 두어 차례 가졌다. 넘쳐나는 후보들의 이력에 비해 토론 맛은 붕어빵보다 훨 못했다는 평가다. 프랑스 속담에 '어떤 토론도 이득은 있다'고 했는데. 시청자들에게는 대체 어떤 이득이 돌아갔을까. 당장 거리유세로 소란스럽다. 당서 '육상전'에 이런 글귀가 있다. '천하본무사용인요지이(天下本無事庸人擾之耳)'. '원래는 태평 무사한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소란을 일으킨다'는 뜻이니 선거전 또한 여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어렵다.

붕어빵1

◆모락모락

막 구운 붕어빵을 한입 물기 전에 모락모락 피는 내음이 '쥑인다'. 노릇한 색감에 겉은 바싹하면서 안은 몰캉한 단팥의 따끈한 조화가 그 잘난 소보로와 크림빵 못지않다. 차라리 너무나 솔직하고 서민적이어서 일품이다. 갓 구운 것은 좀 뜨겁기도 하지만 언 손으로 호호 불며 적당히 식혀 먹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붕어빵 한 마리 집어 들면 기름이 좀 묻긴 하지만 굽은 등의 선이 살아있으면서 아랫배와 알맞게 동여매듯 노릿한 곡선들이 정겹다. 심지어 무쇠 빵틀에도 빗살무늬 비늘까지 연출했으니 빵틀을 나온 붕어빵은 그럴듯한 격식까지 갖춘 셈이다. 여러 마리가 한 곳에 나란히 놓여 있으면 서로 기대 새 주인을 기다리는 하모니도 좋다. 다른 빵들에 비해 거친 듯도 하지만 그 나름 질서가 의외의 행복이다. 반죽을 붕어빵틀 속에 부을 때 살짝 빵틀 밖으로 흘러넘쳐도 그대로 굽는다. 붕어빵 지느러미 곁에 살짝 보풀처럼 붙은 부스러기 맛도 또한 일품이다. 썰고 남은 칼국수 꽁지를 구워 먹는 맛처럼.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청보리 출간/지은이 윤덕노)라는 책이 있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거리 음식의 역사와 유래를 동서양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파헤치고 있다. 찐빵과 붕어빵에서 순대, 닭발, 꽈배기, 수제비 등에 이르기까지 50여 종의 거리 음식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을 집대성해 놓았다. 저자는 머리글에서 '길거리에서 사 먹는 별 볼 일 없는 간식인 붕어빵에 무슨 역사가 숨어 있고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붕어빵도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 천 년 세월 동안 역사적·기술적·문화적 진화를 거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적었다. 결론적으로 붕어빵의 모계는 와플, 부계는 만두에서 찾을 수 있다. 족보를 좇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서양은 고대 그리스, 동양은 중국 한나라까지 연결되는 동서양 퓨전 간식이라는 결론에 닿는다.

왜 하필 붕어빵일까? 예전에 서울 사람들이 바다 생선보다는 민물고기가 더 익숙했는데 그중 가장 많이 먹었던 생선이 붕어였고 그만큼 친숙했기에 붕어빵으로 탄생했다는 것.

붕어빵2

◆갈릴레이와 금붕어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물리학교사 출신인 장 자크 그리프가 쓴 '갈릴레이와 금붕어'라는 책도 꽤 유명하다. 천재과학자 갈릴레이와 그의 딸 비르지니아(훗날 수녀가 된다)의 가상대화가 주류를 이룬다. 여기서도 붕어가 제목에 등장한다. 금붕어도 붕어다. 어항 속의 금붕어나 붕어는 어항 바깥에서 보는 것과 어항 속에 직접 들어가 보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크다.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동원된 금붕어 이야기는 동원된 예시에 불과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증거와 추론, 종교와 과학이 얽혔어도 붕어의 위치가 저렇게 담담하게 언급된 것이 마냥 흥미롭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이 편찬한 백과사전류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오는 붕어 이야기도 재미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 좋고 비린내 안 나는 붕어는 제천의 의림지산 붕어, 그다음은 전주 삼례의 덕진산 붕어, 세 번째가 평양 대동강산 붕어라는 것. 이어 붕어떡 요리로 이름난 의주 압록강 붕어가 네 번째, 씨알이 제일 큰 붕어는 두만강에 위치한 번포산 붕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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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고루 살고 있다. 7년 안팎이면 월척(30㎝ 내외)으로 자란다. 이런 붕어의 모양으로 만든 붕어빵은 맛의 차이나 크기는 어느 지역이나 다를 게 별반 없다. 평범하고 수더분하다. 뜨거워 먹다가 떨어뜨려도 그렇게 아까울 게 없다. 그렇다고 너무 등한시할 붕어빵은 아니다.

지난해 광주의 한 일간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제목에도 붕어가 등장한다. 조효복 시인의 '붕어빵 안에는 배고픈 고래가 산다'이다. 진솔하게 삶에 맞서는 작품이라는 심사평을 받았다. 제법 긴 시라서 다음 기회로 인용을 미루는 게 다소 아쉽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소시민과 동행 중인 붕어빵, 시어로도 승화된 그가 우리들의 팍팍한 겨울을 더없이 달콤하고 고소하게 위로해주는 것 같다.
글=김채한 전 달성문화재단대표
사진=배원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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