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대구식 헛제삿밥 같이 드실래요? (1)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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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04   |  발행일 2022-03-04 제33면   |  수정 2022-03-04 08:36
퇴계 이황·남명 조식의 영남 사림파 기제사 문화
안동·대구·진주 경상권에서 탄생한 '헛제삿밥'
현재 상업화된 곳은 안동과 경남 진주 두곳 뿐
간고등어·나물손질 등 지역별 재료·조리법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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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제삿밥은 안동·진주 등 경상도에만 몰려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영남 성리학(사림파)의 양대 산맥이랄 수 있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을 태두로 한 영남 사림파의 기제사 문화 때문에 태어난다. 재현된 대구 헛제삿밥.

헛제삿밥(虛祭飯)? 이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제삿밥은 알겠는데, '헛'이라니! 헛제삿밥은 한식 중 아주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제사 때 먹는 음복용 음식이 시중 음식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상업화된 곳은 안동과 진주 두 곳뿐이다. 인프라로 본다면 안동이 단연 리더 격이다. 현재 까치구멍집, 맛 50년 헛제삿밥, 예미정(종가비빔밥), 하회식당, 이화식당, 청기와식당 등 7~8집이 있다. 가장 성공적인 곳은 까치구멍집이다. 대구의 경우 20여 년 전 팔공산 자락과 10여 년 전 대구수목원 근처 '제비원'이란 두 곳에서 헛제삿밥을 팔았지만 모두 문을 닫았다. 현재 옛 대구MBC 근처에 있는 한식당 대연정에서 파는 헛제삿밥은 원형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다. 50여 년 역사의 개정식당도 언뜻 전주비빔밥과 헛제삿밥을 조금 융복합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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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국.

 

진주는 광복 이후 서너 곳이 영업을 했는데 60년대에 자취를 감춘다. 현재 금산면 갈전리 '진주헛제삿밥'이 유일하다. 초대 여사장 이명덕(75)씨는 합천 출신인 친정 어머니(이달순)가 음식을 팔 때 잠시 헛제삿밥(1982년 '강나루 헛제사밥' 오픈)을 취급했지만 찾는 이가 별로 없어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2000년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소장의 권유로 헛제삿밥 전문점 시대를 연다. 이 무렵 안동시는 안동 헛제삿밥을 진주비빔밥처럼, 그리고 진주시청은 헛제삿밥과 냉면을 특화한다. 김 소장은 당시 부산방송(PBS)을 통해 진주 헛제삿밥을 재현해 반향을 일으킨다. 이명덕은 이후 <사>대한명인협회로부터 '진주 헛제삿밥 명인'으로 선정된다. 현재 이명덕은 아들 내외(김창우·양은영)와 함께 일한다.

진주 헛제삿밥은 안동 헛제삿밥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일단 비늘이 없는 돔배기와 간고등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여긴 조기, 민어, 돔 등이 메인 생선이다. 안동에서 즐겨 보이는 배추전과 명태전도 여기선 보이지 않는다. 안동권에서는 나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내지만 진주 헛제삿밥에선 나물에 칼질하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보통 비빔밥은 젓가락을 사용해 비비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진주 헛제삿밥은 숟가락으로 비빌 것을 주문한다. 진주 헛제삿밥은 6가지 모둠전(육전, 어전, 버섯전, 부추전, 산적 등), 그리고 마지막엔 생선찌개 같은 일명 '진주식 거지탕'이 특식으로 나온다. 조기 등 말려 놓은 갖은 생선을 넣고 신선로처럼 푹 끓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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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헛제삿밥 재료로 비벼진 대구 골동반. 이번에는 특이하게 소고기를 대구 보푸라기처럼 가늘게 갈아 풍미 재료로 올려놓았다.


헛제삿밥은 경상도 안동과 대구 그리고 경남 진주에만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영남 성리학(사림파)의 양대 산맥이랄 수 있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을 태두로 한 영남 사림파의 기제사 문화 때문에 태어난다.

경상도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산악이 많고 평지가 적어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중심이다. 지주 계급이 적었지만 걸출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됐다. 조선 후기인 1751년(영조 27) 실학자 청담(淸潭) 이중환(1690~1756)이 쓴 조선 역사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는 '조정의 인재 반이 영남인'이라고 적을 정도다. 영남 사림파는 16세기 이후 중앙 정계에 본격 진출했다. 이들이 관직에서 떠나 낙향 후 서원을 짓고 후학들을 길러냈다. 이 과정에서 탄생된 음식이 바로 헛제삿밥이다.

양반들이 춘궁기에 드러내놓고 쌀밥을 먹기가 미안스러워 제사 음식을 차려 놓고 가짜로 제사를 지낸 후 제사 음식을 먹은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천민들이 한이 맺혀 제사도 지내지 않고 제삿밥을 만들어 먹은 데서 시작됐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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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 나물(무, 시금치, 고사리).

제사 지낼 때 차려내는 음식을 '제수' 또는 '제찬'이라고도 한다. 기본 제수는 메(기제사 때는 밥,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 삼탕(소, 어, 육), 삼적(소, 어, 육), 숙채(시금치, 고사리, 도라지의 삼색 나물), 침채(동치미), 청장(간장), 포(북어, 건대구, 육포 등), 갱(국), 유과(약과, 흰색 산자, 검은깨 강정), 과실(대추, 밤, 감, 배), 제주(청주), 경수(숭늉) 등이다. 지체가 높거나 살림이 넉넉한 집안에서는 삼탕·삼적·삼채를 더해 오탕·오적·오채를 올리기도 하고 지방·학파·가문에 따라 제수가 달라지기도 한다.

헛제삿밥도 위 제수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차려내는데, 주재료는 나물·탕국·생선 자반 중심이다. 제사를 지낼 때 향불을 피워 향이 나물에 배어들게 해 제사 음식의 분위기를 더욱 돋운다. 그래서 낮에는 절대로 음식을 만들지 않았다. 낮에 무친 나물은 손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소장·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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