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팔색조 매력의 맛 '된장 이야기' (1) 메주 빠갠 가루로 담근 속성장 '막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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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15   |  발행일 2022-04-15 제33면   |  수정 2022-04-15 07:51
지역별 빰장·빠개장·가루장 명칭 달라
재래식 된장보다 맛 좋고 영양가 높아
단맛도 강해 쌈장·양념으로 많이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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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와 물, 그리고 소금이 만나면 간장과 된장이 탄생한다. 한식의 출발선이랄 수 있다. 간장, 된장, 고추장, 그리고 젓갈, 식혜, 장아찌…. 최소한 이 스펙트럼을 알아야 한식의 연대기를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장류 문화는 서양발 소스문화에 지배된 듯하다. 마치 서양음악이 국악을 호령하는 모양새랄까.

지난 회에서는 '간장 인문학'에 대해 알아봤는데 이번 회에서는 오묘하고 변화무쌍한 팔색조 된장의 연대기에 대해 알아본다.

콩(豆)을 가르(支)면 메주란 의미의 '시(시)'가 된다. 시란 용어는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도 등장한다. 신문왕 3년에 왕이 김흠운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할 때 납채(納采) 품목으로 장(醬)과 시가 포함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된장 중 특별한 스펙트럼을 가진 '별미장'이 있다. 바로 '속성장(速成醬)'이다. 지역별로 만드는 방법이나 명칭 등이 약간씩 다르다.

크게 나누어 보면 청국장, 막장, 담북장, 빰장, 빠개장, 가루장, 보리장(등겨·시금장) 등으로 나뉜다. '막장'은 날 메주를 가루로 빻아 소금물에 말아 숙성시킨 것, '담북장'은 메줏가루에 고춧가루를 섞고 물에 풀어서 하룻밤 재웠다가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 된장이다. '빰장'은 굵게 빻은 메주에 소금물을 부어 담근 것, '빠개장'으로도 불리는 '빠금장'은 메줏가루를 콩 삶은 물로 버무리고 고춧가루와 소금을 섞어 담근다. 또 '가루장'은 보리쌀을 빻아서 찐 것에 메줏가루를 버무려 소금물로 간을 맞춘 것, '보리장'은 보리쌀을 삶아 띄운 다음 가루로 빻아서 메줏가루와 반반씩 섞어 소금물로 버무려서 만든 걸 말한다.

메주에서 된장으로 변주되는 과정의 첫 관문은 뭘까? '막된장(막장)'이다.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숙성시킨 후 간장을 빼고 난 부산물이다. 그다음 주자는 '토장(土醬)'이다. 막장에 메줏가루와 소금물을 섞거나, 막장을 넣지 않고 메줏가루에 소금물만을 넣고 담가 2~3개월 숙성시킨 된장이다. 일반적으로 간장을 뜨지 않은 된장을 '토장'이라 한다.

막장은 장을 담근 지 15일 정도 지나면 먹을 수 있는 속성장으로 메주를 빠개어 가루로 만들어 담갔다고 하여 지역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진다. 강원도를 비롯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주로 보리 생산이 많은 남부지역에서 먹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빰장', 충청도 지역에서는 '빠개장'이라 하였다. 메줏덩이로 간장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므로 '가루장'이라고도 부른다.

1766년(영조 42)에 유중림(柳重臨)이 엮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별미장인 '담수장(淡水醬)'이 소개된다.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만든 메주를 초봄에 부숴서 햇볕에 6~7일 숙성시켰다가 햇채소와 함께 먹으면 맛이 새롭다'라는 대목이다. 막장의 원형으로 보인다.

막장은 봄·가을철에 만든다. 재료는 메줏가루 5홉·찹쌀 2홉·물 6홉·소금 1홉.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찹쌀 4공기에 메줏가루를 섞어서 덮어 1일 동안 지낸 후 물에다가 소금이나 간장을 섞어서 반죽한 것에 섞어서 잘 덮어 주면 한 10여 일 후부터 익기 시작한다. 조선 시대에 된장 대용으로 사용한 속성장이다. 막장은 처음부터 메줏가루로 된장을 만들기 때문에 간장을 빼고 남은 건더기로 만든 재래식 된장보다 맛이 좋고 영양가도 높은 편으로 주로 쌈장이나 양념으로 쓰인다. 막장은 일반 메줏가루로 만들기도 하지만 콩, 밀, 멥쌀, 보리 등의 전분을 섞어 막장용 메주를 만들어 장을 담그기 때문에 콩으로만 메주를 쑨 재래식 된장과 달리 소금을 조금 넣고 오래 숙성시키지 않아도 된다. 이는 메주에 전분이 들어가면서 당분이 분해되어 발효가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장은 다른 된장에 비해 단맛이 강하다.

막장용 메주는 멥쌀가루로 찐 떡이나 삶은 보리쌀을 전분질 재료로 하고 콩은 무르게 삶아 사용한다. 이들 재료를 절구에 찧어 주먹만 하게 메주를 빚은 뒤 속이 노랗게 되도록 잘 띄운다. 요즘에는 옛날과 달리 보릿가루와 엿기름을 섞어 죽을 쑨 다음 여기에 고춧가루(또는 고추씨 가루), 메줏가루, 소금 등을 섞어 따뜻한 곳에서 한 달 정도 숙성시켜 먹기도 한다. 쌈장, 수육이나 편육을 찍어 먹는 양념장, 생선회로 물회를 만들 때의 양념, 국이나 찌개를 끓이는 데 사용한다.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팔색조 매력의 맛 '된장 이야기' (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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