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팔색조 매력의 맛 '된장 이야기' (2) 고운 보리쌀 겨로 만드는 경북 별미 '등겨장'…이른봄 담가 비빔·쌈·찌개 즐겨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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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15   |  발행일 2022-04-15 제34면   |  수정 2022-04-15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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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그슬린 백말순표 등겨장 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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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방송국 제작진에게 등겨장 레시피를 설명 중인 백말순.


집장과 즙장
여러 재료로 만든 '집장' 단기간 발효 '즙장'
두개 醬 모두 여름에 담가…메줏가루 사용


'집장(集醬)'은 여러 재료를 모아서(集) 만든 장(醬)이다. '즙장(汁醬)'은 간장, 된장, 고추장 등과 같은 기본장과는 달리 일부 지역에서 단기간에 별미로 담가 먹었던 장으로 액체가 많은 장이다.

또 즙장은 장기간 발효시키는 된장과 달리 담가서 단기간 발효 시켜 먹는 속성장으로 독특한 풍미가 있고, 지방마다 원료의 종류, 발효 및 숙성 조건 등이 달라 그 형태 및 품질이 매우 다양하다. 또 보릿가루가 주원료여서 단맛이 강하고 그대로 밑반찬으로 이용되는 특징이 있다.

즙장이란 말은 '규합총서(閨閤叢書)' '시의전서(是議全書)' '부인필지(婦人必知)' 등 많은 문헌에 나타나 있으며, 고문헌에서는 '콩과 밀기울과 메주를 만들고 야채류를 넣어 말똥 속에서 숙성시킨 것'이라고 했다.

즙장은 밀기울과 콩을 물에 불려 시루에 쪄서 절구에 찧은 뒤에 밤톨만큼씩 덩어리를 만들어 메주처럼 띄운 후 건조하여 가루를 만들어 누룩 가루와 물을 섞고 소금을 넣어 밀봉하여 두었다가 십여일 후 설탕을 타서 먹는 음식이다. 막장과 비슷하게 담되 수분이 줄줄 흐를 정도로 많고, 무나 고추, 배춧잎을 넣고 숙성시킨다. 산미도 약간 있다. 밀과 콩으로 쑨 메주를 띄워 초가을 채소를 많이 넣어 담근 것이다. 경상도·충청도 지방에서 많이 담그는 장으로 두엄 속에서 삭히도록 되어 있다.

경북 성주 한개마을 이원조가의 즙장 담는 법은 이렇다. 누룩과 채소(박, 가지, 고추, 부추 등)를 준비하고, 찰밥을 해서 뜨거운 상태로 준비한 누룩과 채소를 섞으면서 국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쌀엿이나 조청을 추가해 만든다. 채소 중에는 박을 가장 많이 넣는다. 왕겨를 많이 쌓아두고, 항아리에 채소하고 재료를 버무려 담아 뚜껑을 덮은 후 왕겨 불로 중탕을 한다. 다만 부추는 중탕할 때 넣기도 한다.

즙장과 집장은 모두 여름에 제조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메줏가루를 사용하거나 두엄 속에서 삭히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집장을 경북에서는 '거름장', 경남에서는 '보리겨장'이라고 한다. 거름장이란 명칭은 이렇게 '퇴비 속에 파묻어 익힌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우선 경북의 거름장은 콩을 삶다가 보리를 섞어 익힌 뒤 메주를 만들어 뽕나무나 닥나무 잎을 덮어 띄운다. 이것을 말려 가루로 만든 다음 오이, 가지 등을 섞어 퇴비 속에 묻어 익힌다.

경북 예천 춘우재 권진 종가는 집장으로 유명하다. 메줏가루에 쪄서 삭힌 찹쌀을 버무린 후 가마솥에 다시마, 찐 오징어, 호박오가리, 가지, 대파, 버섯, 고춧잎, 무, 마늘 등 아홉 가지 재료와 함께 넣고 오랫동안 타지 않게 정성 들여 불을 때 끓인다. 다 끓인 집장을 하루에서 하루 반 정도 숙성시킨 다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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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는 된장과 간장의 원천이 된다. 메주 한 덩이. 그건 '한식의 맛'이란 건축물을 만드는 '벽돌'과 같다.


청국장(靑麴醬)
병자호란 당시 국내 유래한 설은 근거 희박
청나라 장이 아닌 '푸른 곰팡이'란 뜻의 장


청국장은 삼국시대부터 이미 존재한 음식으로 408년 백제 영토였던 전남 나주 흥덕리 고분에서 발굴된 묵서명(墨書銘)에 '염시(鹽시)'가 나오는데 '시'는 메주를 뜻하는 한자로 염시는 된장이나 청국장일 가능성도 매우 높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전국장(戰國醬)'이 네 번 등장한다. 청국장은 전시장, 전국장, 청국장(靑局醬), 청국장(靑麴醬) 등으로 쓰다가 청국장(淸麴醬)으로 통일됐다.

청국장(淸國醬)이 병자호란 때 청나라 병사들이 말안장에 삶은 콩을 싣고 다니다 발효시켜 먹은 데서 유래됐다고 하고 있으며 중국 청나라 장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병자호란은 1636년부터 1년간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범했던 전쟁이다. 그러나 이런 설은 근거가 희박하다. 병자호란보다 100여 년 앞서 발간된 1527년 최세진의 '훈몽자회'를 보면 '시'를 '쳔국'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조선 후기의 문신 김간이 1766년에 쓴 시문집 '후재집(厚齋集)'에서 '전국장(戰國醬)은 칠웅전쟁(七雄戰爭) 때 만들었다고 하는데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는 알지 못한다'라고 적었다. 청국장이 전쟁용 음식이란 속설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이다. 조선 숙종 때 김창업이 펴낸 '연행일기(燕行日記)' 계사년(1713·숙종 39) 1월26일을 보면 '북경에 사는 박득인의 집 주안상에 청국장도 맛이 역시 좋은데 대개 우리나라의 방법으로 만든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때가 청나라 때인데 북경에서 먹은 청국장이 우리나라 방법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더라도 병자호란 때 청나라 병사에 의해 전해졌다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그야말로 설에 불과하다.

조선 초와 중기에는 '시'를 주로 며주·메조·며조·메주라고 했고 조선 후기 무렵에는 전국장·쳔국장·청국장이라고 했다. 즉 '시'에서 메주와 청국장이 분화돼 현재까지 발달해 온 것으로 보인다. '훈몽자회'의 '쳔국'과 '사류박해'에 나오는 '청국장', '전국장' 등의 연관 관계이면 청국장이 '靑麴醬' 이어야 하지 '淸國醬'은 아니다. 즉 청국장은 청나라(淸國) 장(醬)이 아니라 '푸른곰팡이'란 뜻의 청국장(靑麴醬)이다.

빠금장
동지~봄에 먹어… '빠개장'이라 부르기도
부뚜막서 띄워 먹는 된장, 세월따라 사라져


장(醬)도 제철에 맞게 담가 먹어야 맛이 있다. '가을 청국장, 겨울 빠금장'이라 했다. 청국장은 가을 콩을 발효시켜 동지 전까지, 동지 이후부터 봄까지는 빠금장을 만들어 먹는다. 이 빠금장을 '빠개장'이라고도 부른다.

'빠금장'은 동지 전에 메주를 쑤고서 몇 개 정도를 장 담그기 전에 여분으로 남겨두었다가 만들어 먹는다. 부엌 개량화로 인해 발효시킬 부뚜막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토속음식인 빠금장도 함께 사라진 게 아쉽다. 빠금장은 부뚜막에서 띄워 먹는 된장으로 된장이 떨어질 무렵인 봄에 된장을 만들기 위해 소금물에 담고 남은 메주를 절구에 거칠게 빻아서 동치미 국물에 걸쭉하게 개어 항아리에 담아 부뚜막에 올려 따뜻하게 둔다. 2~3일 후 항아리 위로 떠올라 오면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고 간을 한 속성장이다. 예전에는 화롯불에 뚝배기를 올려놓고 바글바글 끓는 채로 먹기도 하고 나물 무치는 데도 쓰고 봄 채소 쌈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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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말순 등겨장의 주재료가 한자리에 모였다. 보리메줏가루, 콩, 보리, 콩물, 고춧가루, 천일염 등 9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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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 역사의 백말순 등겨장 상품들.


경상도 대표주자 등겨장
보리 찧은 당가루에 조금 거친 겨와 섞어
서늘한 온도에 삭혀야 제맛, 한여름은 피해

가장 경상도스러운 장이 있다. 바로 '등겨장'이다. 고운 보리쌀 겨로 만드는 경북 지역의 별미다. 두산백과사전에는 '시금장'이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다. 그러나 우리 지역에선 '딩기장'이라 하면 훨씬 쉽게 알아듣는다. '딩기'는 '등겨'의 지역 토속어이다.

등겨도 종류가 여럿이다. 벼를 찧을 때 현미기를 거쳐 나온 등겨는 '왕겨'인데 이는 주로 땔감이나 거름으로 쓰인다. 껍질이 벗겨진 현미가 정미기를 여러 차례(이 횟수에 따라 7분도, 8분도 하는 식으로 '분도'가 정해진다) 돌아 나오면 쌀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나오는 등겨는 '쌀겨'라고 한다. 처음은 거칠고 누런 겨지만, 나중에는 '싸라기'라 하여 쌀알 부스러기까지 나온다.

보리를 찧을 때 나오는 등겨는 벼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벼는 껍질을 벗기는 게 가능하지만 보리는 아니다. 낟알의 가장자리를 갈아내 보리쌀을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처음에는 거칠고 누런 겨가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겨는 점점 부드러워진다. 보리쌀 모양이 갖추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오는 겨를 토박이 업자들은 '당가루'라고 한다. 이 당가루에 직전의 조금 거친 겨와 섞어서 등겨장을 담근다.

정리·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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