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의 텃밭 인문학] 텃밭농사의 제1원칙 - 기계로 땅을 갈아엎지 않는다

  • 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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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20   |  발행일 2022-05-20 제38면   |  수정 2022-05-20 09:15
미생물 지키고 토양 살리는 자연농법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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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농사의 제1원칙은 기계로 땅을 갈아엎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 호미, 괭이, 삽 등의 농기구로 필요 최소한도로 땅을 파고 일구며 김매기로 작물을 가꾼다. 인류는 오랜 세월 곡식을 심기 위하여 땅을 갈고 김을 매는 경기(耕起)와 경운(耕耘)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이 방식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텃밭의 흙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보호하여 결과적으로 토양을 더욱 기름지게 만들 수 있다.

농기계나 농기구 어느 것을 이용하든 경기와 경운은 자연에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일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이 가진 조화와 균형은 깨지고, 본래의 생명력을 잃고 만다. 사람의 손으로 직접 땅을 일구면 자연에 대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기계를 이용하여 밭을 갈거나 뒤엎어 버리면, 생명 파괴와 토양생태계 교란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이유로 자연농법을 지향하는 텃밭에서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이 도구로 직접 땅을 갈고 김을 매면서 농사를 짓는다.

과학기술문명이 발달하면서 농기계도 획기적으로 개량되었다. 경운기나 관리기가 나오더니, 이내 트랙터와 굴삭기까지 개발되어 농지관리에 이용되고 있다. 이런 기계문명에 힘입어 농부의 노동력은 절감되었고, 농업생산성도 크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영농이 기계화되면서 그에 따른 폐해도 적지 않다. 농지를 지나치게 또 자주 갈아엎다 보니 토양이 파괴되고 유실되어 농촌의 땅은 날로 척박해지고 있다. 거칠고 메마른 땅에 경작하려니 다시 기계로 땅을 갈아엎어야 하는 구조적 모순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면 농부가 능숙하게 소를 다루며 쟁기로 논과 밭을 가는 장면이 나온다. 쟁기질은 땅 위에 퇴적되어 있는 작물의 찌꺼기와 풀 등을 흙과 뒤섞어 토양에 영양을 공급하는 과정이다. 또 공기에 노출된 토양은 미생물을 활성화시켜 땅을 더욱 거름지게 만든다. 농부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이 방법을 사용하여 땅을 일구고 농사를 지어왔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다고 하더라도 농사는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일이다. 자연의 침해를 최소화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면서 농사를 지을 수는 없을까. 쟁기질은 그 고민의 결과물인 셈이다.


현대 영농기계화로 생태 교란 유발
농지 자주 갈아엎다보니 토양 파괴
메마른 땅 되살려야하는 악순환 반복
지혜롭고 자연친화적 농법 '쟁기질'
자연과 인간 조화로운 공생관계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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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형복 교수 텃밭의 토마토.
쟁기질은 소를 다루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랴 이랴 워~워~" 외침으로 농부는 소를 앞으로 가게도 하고 멈추어 서게도 한다. 거친 땅을 가는 쟁기질은 아무리 힘센 일소에게도 벅찬 일이다. 소는 거친 숨을 뿜으며 더러 약은꾀를 부리지만, 노련한 농부에게 통할 리 없다. 농부는 소를 어르고 달래고 꾸짖고 격려하면서 밭갈이를 마친다. 어릴 적 산등성이에 앉아 농부들이 능숙하게 소를 다루며 쟁기질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름의 깨우침을 얻었다.

"아무런 배움이 없는 농부가 어찌 저리도 능숙하게 소를 잘 다룰까? 지식과 지혜는 다르구나. 지식이 많다고 하여 반드시 지혜롭다고 할 수는 없구나."

초봄부터 보리가 익어 수확하는 오뉴월이 될 때까지의 기간이 춘궁기다. 이 시기를 견디는 일은 무척 고통스럽다. 설익은 보리를 베어 밥을 해 먹기도 하고, 나물을 뜯어 멀건 국을 끓이거나 죽을 쑤어 먹었다. 그래도 허기를 달래기는 역부족이라 늘 배가 고팠다. 가난한 농부들은 부유한 이웃이나 친척에게 보리나 쌀을 꾸었다. 갚을 때는 빌린 양의 두 배 내지는 세 배로 갚아야 했으니, 빈곤의 늪에서 헤어날 길이 없었다. 암담한 현실을 알길 없던 어린 시절의 시골은 내게 추억과 낭만의 시공간이다. 그러나 자식을 먹이고 키우기 위해 힘겨운 삶을 살아온 부모님에게 시골이란 배고프고 곤고한 과거이자 잊고 싶은 기억에 지나지 않았다.

그즈음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일은 힘들고 고달팠다. 모든 농사일은 삽이나 괭이로 논밭을 일구면서 사람이 직접 해야 했다. 그 거칠고 넓은 들판을 농기구만으로 일구고 작물을 심었으니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어디 그뿐이랴. 잡풀은 뽑고 뽑아도 기세 좋게 땅을 차고 올라오니, 농부들에게 밭매기와 김매기는 성가시고 괴로운 일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농촌에도 기계화 바람이 불었다. 경운기가 등장하더니 농부와 소가 하던 일을 기계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일소가 아무리 힘이 세고, 또 농부가 열심히 일한들 기계를 당할 수는 없다. 작업능률은 향상되었고, 소출은 증대되었다. 더 이상 소가 끄는 쟁기질을 할 필요가 없으니 농촌에서 일소와 쟁기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농촌도 시대의 변화를 피할 수 없다. 젊은이가 사라지고 노인만 남은 농촌에서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과거처럼 농사를 지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어쩌면 기계문명은 신이 농부에게 내린 선물인지도 모른다. 기계문명은 농부들에게 삶의 여유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생계를 위하여 농사를 짓는 전업농이나 상업농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까지 기계로 땅을 갈아엎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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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형복 교수 텃밭의 상추.
내가 가꾸는 텃밭의 면적은 대략 60~70평쯤 된다. 텃밭치고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크기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분양하는 10평 내외의 텃밭에 비하면 아주 넓지만, 수백 평 이상의 넓은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볼 때는 소꿉놀이에 불과하다. 이제는 이력이 붙었기에 이 정도 넓이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초보라면 누구나 경험하지만, 처음에는 이 정도의 텃밭도 여간한 노동이 아니다. 집을 짓기 전 몇 해 동안 주말 텃밭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밭에 오면 허리 펴고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도 없이 땅을 파고 작물을 가꾸어야 했다.

농기계를 이용하면 텃밭농사가 한결 쉽고 편하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왜 굳이 호미와 괭이로 텃밭을 가꾸려 하는가. 그 이유는 되도록 땅에 피해를 주지 않고, 흙 속 벌레와 미생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관리기를 사용하면 편하지만, 땅에 서식하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농부는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가꾸고 살리는 사람이다. 땅에 의지하여 전원에 살면서 기계의 힘을 빌려 자연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비록 작은 텃밭을 가꾸는 농부에 지나지 않지만, 자연에 묻혀 평온한 마음으로 생명을 가꾸고 살리는 농사를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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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도시는 시멘트로 뒤덮인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그 도시가 날로 팽창하면서 무서운 기세로 자연을 잠식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농촌이라고 하여 다르지 않다. 도시화와 물질문명으로 농촌의 생태환경은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오염되었다. 도시와 농촌이 서로 돕고 유기적으로 연대하면서 공생할 수는 없을까. 작은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며 나만의 무모한 실험을 하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순수한 이 마음을 텃밭의 지렁이는 알고 있겠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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