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진주냉면 재현기... 해산물·육전 푸짐한 고명 '1999 진주냉면' 되살리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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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17   |  발행일 2022-06-17 제35면   |  수정 2022-06-1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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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년간 명맥이 끊어졌던 진주냉면을 찾아 다닌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 그가 식당 관계자 증언, 자료 조사 등을 통해 재현한 '1999진주냉면'.

진주냉면을 찾아서
기생 많은 진주 옥봉동 냉면집 성행
배달 많아 남자 하인 3~4명 두기도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 그는 진주냉면의 연대기를 현지 조사를 통해 치밀하게 엮어나갔다. 1999년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조사한 바로는 1800년 말에 진주목의 숙수(熟手) 한 분이 관영(官營)에서 나와 옥봉동 개울가에서 진주냉면을 뽑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진주 시내에는 미색과 재색이 뛰어난 관아 소속 진주 기생이 적잖았다. 그들과 맞물려 돌아갔던 숙수(요리사)들은 조선이 망하면서 권번과 요정으로 나와 그들만의 기생문화를 발달시킨다. 이들은 돈 많은 왜인이나 지주 등 한량들과 함께 기생놀이를 하고 야심한 밤에 냉면집을 찾아 냉면을 밤참으로 먹었다고 한다.

특히 요정이 많고 기생이 많이 살던 진주시 옥봉동과 가까운 냉면집들이 장사가 잘됐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기생문화와 냉면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당시 기생뿐만 아니라 일반 부유한 가정집에서도 냉면을 배달시켜 먹어 냉면집에는 배달을 주로 하는 남자 하인들이 서너 명씩 있었다고 한다.

1939년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병주의 장편소설 '지리산'에는 진주냉면을 좋아하는 일본인 교사 구사마에 대한 대목이 나온다. '한 줌밖에 안 되는 메밀국수에 볶은 고기를 가늘게 썰어 넣어 배와 생강으로 맛을 여민 육수로 된 이른바 진주냉면이 구사마의 호물(好物)이었다. "이 냉면 기가 막혀!" 구사마는 냉면 두 그릇을 먹곤 "진주를 떠나면 영영 이 맛있는 냉면을 못 먹게 될 텐데…"하고 숙연히 한숨을 지었다'는 구절이다.

김 원장이 북한에서 발행한 '조선의 민속전통'을 읽고 진주냉면을 찾아 나선 것은 1999년이다. 이 책에 '냉면 중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다'란 기록 때문이다.

'조선의 민속전통'은 해방 이전의 자료를 바탕으로 북한 평양에서 1994년에 발행한 책이다. 한양대 고 이성우 교수가 쓴 '한국의 조리문화사'에는 '옛날부터 찡하다는 표현의 평양냉면이 유명하였지만 이 평양냉면에 견줄 만한 진주냉면은 남국적인 맛으로 유명했다'는 구절이 있다.

옥봉동 냉면촌
60년대 중반까지 7~8개 업소 성업
큰 화재로 점포 소실, 점차 사라져


60년대 중반까지 옥봉동을 중심으로 수정식당, 평화식당, 은하식당 등 7~8개 업소가 성업 중이었다. 옛날에는 이러한 식당들이 하인을 두고 직접 배달을 했다고 한다.

1961년 1월3일자 경향신문 기사에 '두 군인이 옥신각신타 살인'이라는 기사가 눈에 띈다. 이 기사에 진주시 장백동 '은하 냉면옥'이 등장한다. 이 식당 장남 배두선 일병이 살해된 내용이다. 60년대 초까지 진주에서 진주냉면 장사를 했다는 근거다.

그러나 1884년 진주상무사로 개설된 이래 1966년 2월6일 밤 9시쯤 진주 시내 중앙공설시장 4구 일광상회와 대동지업사 부근에서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하여 순식간에 수백 점포가 맹렬한 불길 속에 휩싸여 버렸다. 약 3시간에 걸쳐 때마침 불어오는 강한 서북풍과 동북풍으로 47동 447개의 점포가 전소된다. 그 이후 진주냉면은 1960년대 중반 진주지역에서 사라졌다.

진주냉면 자료를 보고 진주냉면의 흔적을 찾아 김 원장은 진주, 사천, 의령 등 냉면집을 다니며 하루에 5~6그릇을 먹어 봤으나 '진주냉면'이라고 특정할 만한 집은 한 집도 없었다.

그러던 중 중앙시장 나무전거리 '평화식당(당시 냉면집)'에서 마지막으로 일했던 김점순(당시 61세)을 만난다. 사라진 진주냉면을 찾는다는 소문이 나면서 1928년부터 자기의 어머니가 진주냉면 집을 했다는 상봉동 거주 김양훈(당시 81세) 할머니, 수정식당 주방에서 일했던 정태호(당시 71세)씨 등을 만나게 된다. 강수영(1909년 출생)씨는 1900년도 초 어머니인 순흥 안씨인 안장금 할머니가 수영이네 집으로 불리는 진주냉면집을 운영하다 '수영식당'으로 상호를 변경해 운영해 왔다고 진주시 상봉동 거주 강대백(당시 83세)씨가 증언했다.

진주냉면 재현
동치미 국물 대신 멸치장국으로 육수
쇠고기 편육 무친 후 삶아 국물 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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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냉면은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쳤다. 몇 년 전 닭 앞가슴살 가루를 섞어 만든 '닭살냉면'을 대구에서 론칭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김 원장은 그때 연구한 면발을 계승한 더 진화된 형태의 1999 진주냉면을 재현하기에 이른다.

당시 부산방송(현 KNN)과 함께 평화식당의 김점순 아주머니·강수영 할머니·정태호 할아버지를 모시고 각자가 아는 '진주냉면'을 만들어 보라고 부탁한 후 공통점을 정리해 사라진 '진주냉면'을 재현해 냈다.

평양냉면이 동치미국물을 사용했다면 진주냉면은 동치미국물 대신 거제, 남해, 사천 등지에서 잡히는 죽방멸치를 이용한 '멸치장국'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멸치장국을 끓일 때, 멸치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동이나 무쇠를 불에 벌겋게 달궜다가 끓는 장국에 넣었다. 순간적으로 높은 온도로 가열하여 멸치의 잡내를 없애는 '순간가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멸치장국을 기본으로 하여 각 집마다 첨가하는 재료와 육수의 맛이 조금씩 달랐다.

예를 들어 평화식당 계열의 김점순은 멸치장국을 만들 때 멸치, 개발(바지락), 건홍합, 마른명태, 표고버섯 등을 넣고, 재래식 간장으로 간을 맞추며 만들었다. 수영식당 계열인 정태호는 멸치와 재래식 간장을, 1928년부터 자기의 어머니가 진주냉면을 했다는 상봉동 거주 김양훈은 멸치와 양파를 넣고 재래식 간장으로 간을 했다. 한편 이 사람들 모두 쇠고기의 사태살 또는 정강이 살을 푹 고아 기름을 건져 내며 육수를 내 멸치장국으로 빛깔과 맛을 맞추었다.

그런데 여기서 김점순·정태호는 쇠고기 덩어리 살을 넣어 삶는데, 김양훈은 쇠고기를 잘게 편육으로 하여 마늘을 빻아 재래식 간장으로 양념한 후 쇠고기 편육을 무쳐 두었다가 이것을 삶아 육수를 만들었다. 김점순은 꾸미로 김장배추김치를 그대로 잘게 썰어 얹고 배·오이를 채 썰어 얹고, 계란 황백 지단과 깨소금을 얹어 내놓았다.

진주냉면의 특징
순 메밀·고구마 전분 물에 개어 반죽
꾸미에 김장김치·전복·해삼·석이버섯


김 원장은 이 과정에 진주냉면의 공통된 특징을 알게 되었다.

첫째 순 메밀에 고구마 전분을 물에 개어 이 전분 물로 메밀 반죽을 하여 면발을 뽑는다는 것이다. 둘째 쇠고기 육수에 멸치장국으로 육수의 빛깔과 맛을 낸다는 것이다.

셋째 김장배추김치를 채 썰어 꾸미로 얹는다는 것이다. 넷째 진주지방의 제사음식으로 만들어 먹던 쇠고기 육전이 꾸미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복·해삼·석이버섯을 데쳐 채를 썰어 냉면 꾸미로 올렸다고도 한다.

이러한 다섯 가지의 특징이 진주냉면의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형이 훼손된 냉면은 진주냉면이라 할 수가 없으며, 이 원형을 중심으로 맛이나 모양을 내기 위해 추가되어 조리된 냉면은 모두 진주냉면이라 할 수가 있다.

그는 이 내용을 가지고 2000년 6월쯤 신안동에 있는 '갑을가든'에서 진주냉면을 재현했고 그 사실이 KBS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뒤이어 '하연옥 진주냉면'이 등장한다. 하연옥의 친정 아버지(고 하거홍)는 고아로 자라 진주 중앙시장의 식당 종업원으로 전전하다 1945년 하거홍(당시 24세)과 황덕이(당시 17세)는 '부산식육식당'을 창업 하여 소국밥, 비빔밥, 돼지수육 등의 음식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2000년 김 원장이 진주냉면을 찾아다닐 때는 현 하연옥은 진주 서부시장에서 부산식육식당이라는 상호로 국밥, 수육, 평양냉면을 팔고 있었다.

2005년 서부시장의 부산식육식당을 '진주냉면'으로 상호 변경을 하라는 권고와 함께 그가 재현한 레시피를 주고 함께 메뉴 개발을 한 것이 지금의 하연옥 진주냉면이다. 그 외 오빠나 언니들이 하는 진주냉면은 하연옥으로부터 전수한 것이다.

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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