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스파이의 아내'(구로사와 기요시 감독·2020 ·일본) 누군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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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1   |  발행일 2022-07-01 제39면   |  수정 2022-07-01 08:28
스파이어의 아내
누군가의 아내라는 건 참 애매한 정체성이다. '스파이의 아내'는 남편이 애국자면 애국자의 아내로, 매국노면 매국노의 아내로 살고자 했던 한 여인의 슬픈 초상화다. 일본 호러영화의 대가라 불리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았다. '드라이브 마이 카'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각본을 썼다.

전운이 감도는 1940년 일본, 무역상 유사쿠는 사업차 간 만주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하고 세상에 알리려 한다. 조카를 통해 일본의 생체실험 자료를 영어로 번역, 미국에 건너가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아내 사토코는 반대하지만, 증거가 담긴 필름을 보고 나서 남편을 돕기로 한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갈수록 위세를 떨치고 둘은 함께 망명을 계획한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란 평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다. 일본 영화잡지 키네마준보가 꼽은 2020 최고의 영화로, NHK TV에 방영된 작품의 극장판이다. 격동의 시대, 내부자의 시선으로 본 독특한 전쟁 비판 영화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 나라에 과거사 비판은 아직 설 자리가 별로 없는 것이다. 투자에 참여하고 방영한 NHK가 대단하다고 하겠는데, 그것이 영화의 한계이기도 하다. '코스모폴리탄'으로서 유사쿠는 일본의 전쟁범죄를 강력하게 비판하지만, 그의 아내 사토코는 전쟁의 피해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인식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감독 또한 내한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보기엔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이 정도 이야기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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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사회와 개인은 어떻게 공존하는가, 혹은 어떻게 대립하는가"가 작가로서의 테마라고 말했다. 이 영화의 인물들 역시 시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불의한 사회와 공존하려는 자는 점점 악인이 되어가고, 대립하려는 자는 비극을 겪는다. 유순하던 타이지는 군인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할수록 잔인해지고, 대립하려던 유사쿠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공존도, 대립도 아닌, 단지 남편과 함께 하려던 사토코 역시 좌절과 고통을 겪는다.

시대적 한계이긴 하지만 "당신이 스파이라면 스파이의 아내가 될게요"라는 말 속에 이미 비극의 씨앗이 숨어있다. 우주의 중심이 남편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편과 함께 하는 것에 전부를 걸었지만, 남편은 그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내 역할만 충실히 하려 할 때 어떤 구멍이, 허망함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영화는 시대극이지만, 뛰어난 심리스릴러이기도 하다. 시종일관 히치콕의 후예다운 서스펜스가 넘친다. 명감독들이 히치콕을 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히치콕 트뤼포'(2015)에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도 등장한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스릴러의 대가다. 7월에는 그의 걸작 '큐어'(1997)가 재개봉한다. 뛰어난 스릴러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여름나기가 되겠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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