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스토리텔링의 힘

  •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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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2 07:20  |  수정 2022-08-22 07:25  |  발행일 2022-08-22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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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셰에라자드는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작곡한 관현악 모음곡이다. 이 곡은 이국적이면서도 관능적인 오리엔트 정취와 단순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선율로 클래식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셰에라자드 하면 피겨 스케이트를 예술로 승화시킨 은반의 여왕 김연아가 떠오른다는 사람이 많다. 2009년 세계피겨선수권 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18세의 김연아는 셰에라자드에 맞춰 연기했다. 역대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200점을 돌파했다. 해설자들은 음악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연기는 새로운 여왕의 등극을 알리는 대관식이었다고 평가했다. 피겨스케이트는 역설의 스포츠라고 한다. 차가운 얼음판 위의 뜨거운 몸짓, 수평과 수직의 팽팽한 견제, 중력과 관성의 극복과 활용이 필요한 스포츠기 때문이다. 셰에라자드는 김연아와 함께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셰에라자드는 최고의 이야기꾼(storyteller)이다. 그녀가 이야기를 펼치는 무대는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이다. '천일야화'의 배경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이다. 8세기에 아랍어로 번역되면서 바그다드, 카이로 등지에서 이야기가 추가되고 다듬어지면서 오늘의 '천일야화'가 만들어졌다. 샤흐리야르 왕은 왕비가 흑인 노예와 부정한 짓을 저지르는 장면을 목격했다. 왕은 여성 증오심 때문에 매일 밤 새로운 처녀와 동침하고는 다음 날 아침 잔인하게 죽이는 일을 되풀이했다. 어느 날 재상의 아름다운 딸 셰에라자드가 나타났다. 그녀는 1천1일 동안 밤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왕을 유혹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감탄한 왕은 그녀를 살려주기로 했다. 그녀는 왕의 아이를 낳으며 왕비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스토리텔링 재주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처녀들의 목숨도 구한 것이다.

셰에라자드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천 일 동안 이어진 이야기의 소재는 실로 다양하다. 그녀는 폭넓은 독서가였고 자료 수집과 정리에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역사와 문화사, 신화와 전설, 민담과 우화, 철학, 과학, 예술 등 모든 분야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박학다식한 백과사전적 지식이 이야기를 생산하는 원천이었다. 많이 안다고 좋은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은 아니다. 단 하루라도 이야기가 지루했다면 목숨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시를 좋아했고 수많은 시를 암기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시적 표현은 상징과 함축을 중시한다. 좋은 이야기는 짧고 간결해야 한다. 어느 대목에서는 듣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어야 하며,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 그녀는 탁월한 스토리텔러의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표현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은 어떤 일에 종사하든 강력한 생존 수단이자 경쟁력이 될 것이다. 좋은 스토리텔러가 되기 위해서는 젊은 날 많이 읽고 써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 왔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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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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