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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이가 '디오디오 쉬림프' 에기로 잡은 주꾸미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새벽 4시. 어젯밤 맞춰 놓은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뜬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낚시란 게 그런 건가 보다. 소풍만큼이나 설레고 들뜨는 어떤 것. 태인이는 이미 옷까지 다 챙겨 입고, 아빠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주꾸미 금어기가 풀리기 전인 지난 8월 말 즈음 미리 출조 예약을 했었다. 그리고 금어기가 풀린 첫날인 9월1일, 인천 영종도로 달려갔다. 우리가 예약한 배는 라이즈호. 시즌이면 거의 매일 만석으로 출항하는 낚싯배가 주꾸미 낚싯배다.
오전 6시 선착장 1시간 거리 포인트
바닷속 에기·봉돌 툭 떨어지는 느낌
들었다 놨다 하다 묵직해 지는게 입질
마릿수 채워질 때마다 재미도 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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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이가 낚은 주꾸미는 이날 가족들의 저녁 식탁에 올랐다. |
◆소풍만큼 설레는 '낚시 가는 날'
평소에 아빠 따라 낚시 가고 싶다고 하던 태인이. 나는 아직 한 번도 태인이를 데리고 낚싯배를 탄 적이 없었다. 어린 애를 데리고 낚싯배를 탄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던 거다.
태인이는 지금 초등 5학년, 한국 나이로 12살. 이제는 웬만한 제 앞가림은 할 나이가 됐다.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결석 사유는 '현장 체험 학습'. 오전 4시 반. 경기도 고양시 일산 집을 나선 우리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달려 1시간 만에 영종도 거잠포선착장에 도착했다.
오전 6시. 라이즈호는 아직 채 어둠이 걷히지 않은 선착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오늘 라이즈호에는 우리 두 사람 외에 세 명의 단골손님이 타고 있다. 키를 잡고 있는 박 선장까지 모두 6명을 태운 배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남쪽으로 내려간다.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첫 포인트는 영흥대교 부근. 드디어 태인이의 첫 낚시가 시작된다. 나는 낚싯대를 태인이에게 내밀었다.
"이 새우처럼 생긴 게 에기라는 거고, 동그랗고 묵직한 요게 봉돌이야. 주꾸미 낚시는 이 에기와 봉돌이 바닥에 닿는 것부터 시작이야. 한번 해봐."
태인이의 채비가 바닷속으로 내려간다.
"바닥을 느껴야 해. 채비가 바닥에 닿는 게 느껴져?"
"그걸 어떻게 알아?"
"낚싯대를 살짝 들었다 놔봐. 에기랑 봉돌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느낌이 날 거야."
"아, 바닥에 닿았어, 닿았어."
"그렇게 살짝살짝 들었다 놓다 보면 갑자기 묵직해질 거야. 그게 입질이야. 그때 확 챔질하고, 천천히 릴을 감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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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답게 주꾸미의 활성도는 훌륭했다. 영흥도 주꾸미는 자신들의 눈앞에 떨어지는 에기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수심 5~6m, 깊어 봐야 10m가 채 되지 않는 영흥도 바닥은 태인이의 고사리손으로 읽어내기에 충분했다.
첫 손맛을 본 태인이는 빠르게 낚시 감각을 익혀갔다. 언더 캐스팅으로 멀리 던진 채비를 바닥에서 살살 끌어오며 입질을 받기도 한다. 마릿수가 채워질 때마다 재미도 쑥쑥 커진다.
주꾸미 낚시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오후 2시 반. 아쉬운 철수 시간이다.
"어때, 재미있었어?"
"응, 너무 좋았어. 오늘은 영어학원에 안 가도 되네. 벌써 학원 갈 시간이 지났어."
'응…, 이건 뭐지? 낚시가 좋고 재미있다는 거야, 아니면 영어학원 건너뛴 게 좋았다는 거야?'
나는 태인이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둘 다 좋았다는 거겠지.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오후 4시.
"엄마, 내가 아빠보다 주꾸미 더 많이 잡았어."
태인이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제 엄마에게 소프라노 톤으로 승전보를 전한다. 그리고 이날 태인이가 낚은 주꾸미는 숙회가 되어 저녁 식탁에 올랐다.
"역시 주꾸미는 맛있어. 아빠, 다음에 또 가자."
<월간낚시21 기자 penandpow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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