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초가을의 색과 만나는 여행지 Top4…보랏빛 아스타·새하얀 메밀꽃·붉디붉은 꽃무릇…4색 가을동화 속으로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22-09-23   |  발행일 2022-09-23 제16면   |  수정 2022-09-23 07:48

여름은 아니고 가을이라 하기에도 살짝 갸웃한 날씨다. 무심히 달력을 보다 소리를 지른다. "벌써 추분이라고!" 가을걷이하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기 시작하면 조금씩 조급증이 난다. 이슬 내리고 서리 내리면 올해도 끝이겠다. 추분에서 한로 사이가 어쩌면 올해의 마지막 꽃 시절. 서둘러 발걸음해도 좋을 은하수 같은 꽃밭들을 소개한다.

감악산 정상 5만㎡ 평원 아스타국화로 뒤덮여
◆하늘과 맞닿은 보랏빛 평원, 경남 거창 감악산


1-1
감악산 정상의 평원에 청보라, 진보라, 분홍보라, 온갖 보랏빛의 아스타 국화가 가득 피어 있다. 거창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사방팔방이 확 트여 가슴이 후련하다.

감악산(紺岳山) 산정이 보랏빛이다. 청보라, 진보라, 분홍보라, 온갖 보랏빛의 아스타 국화로 뒤덮여 있다. 또 하얀 구절초가 무리 지어 흔들리고 노란 감국이 초록 이파리들 사이로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샤스타데이지가, 가을에는 보랏빛 아스타와 구절초,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감악산은 거창의 진산이다. 검은빛을 띤 푸른 큰 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거룩한 산, 신령스러운 산 또는 큰 산을 의미하며 여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해발 952m의 높이는 지나치다 싶게 가파른 임도를 품고 있지만 정상부는 5만㎡ 넓이의 평원이다. 텔레비전 중계탑이 솟아 있고, 해맞이 전망대가 숲에 가려져 있고, 한국천문연구원 인공위성 레이저 관측소가 멋지게 반짝이고, 산등성이를 따라 7기의 풍력발전기가 당당히 늘어서 있다. 그리고 꽃밭이 펼쳐져 있다. 감악평원은 지금 축제 중이다. 낮에는 꽃을 보고, 밤에는 별을 보는 '감악산 꽃과 별 여행'이 한창이다. 거창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방팔방이 확 트여 동남쪽으로는 합천댐과 견악산과 황매산이, 북쪽으로는 가야산에서부터 덕유산까지, 서쪽으로는 멀리 지리산까지 조망된다.

☞여행정보

12번 88고속도로 거창IC에서 내려 로터리 8시 방향으로 좌회전, 국농소삼거리에서 우회전, 월평사거리에서 우회전해 가다 1084번 도로를 타고 남상면 방향으로 간다. 남상면사무소 지나 고갯마루의 연수사 이정표 따라 들어가 임도 끝까지 가면 된다. '감악산 꽃&별 축제'가 9월23일부터 10월3일까지 열린다.

함안 악양생태공원 춤추는 핑크뮬리 황홀
◆핑크빛 호수 같은 대지, 경남 함안 악양생태공원


2-2
악양생태공원. 옴폭한 호수 같은 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핑크뮬리다. 여름 동안 푸른색이었던 핑크뮬리는 가을이 되면 분홍빛에서 자줏빛의 꽃차례를 이룬다.

함안의 대산면 서촌리(西村里) 남강 변에 악양생태공원이 있다. 서촌리는 동쪽, 남쪽, 서쪽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으로는 낮은 침식분지가 비교적 넓고 둥글게 형성되어 있는데 바로 그 분지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계절, 옴폭한 호수 같은 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핑크뮬리다. 여름 동안 푸른색이었던 핑크뮬리는 가을이 되면 분홍빛에서 자줏빛의 꽃차례를 이룬다. 꽃은 한 꽃에 암술과 수술이 모두 들어 있어 외롭지 않다. 가까운 핑크뮬리는 안개처럼 어렴풋하지만 원경으로 멀어지면 붉은 지평선을 그린다.

곁에는 고운 모래빛의 골드뮬리도 넓게 펼쳐져 있다. 둑길에는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주변으로는 연못과 수로, 잔디광장, 놀이터, 정자, 카페 등도 조성되어 있다. 남강 변 벼랑에 놓인 데크길을 따라가면 벼랑에 걸터앉은 악양루를 만날 수 있다. 함안천과 남강이 만나는 합수머리, 바로 그 앞 절벽이다. 멀리 자굴산, 한우산, 여항산,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한눈에 보이고 가까이로는 천변의 둑방과 너른 들판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일몰 무렵이면 더욱 좋다.

☞여행정보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 방향으로 가다 남지IC에서 내려 좌회전해 간다. 남지대교를 건너 이룡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 공단사거리에서 우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된다. 핑크뮬리는 9월 하순부터 11월까지 절정이다.

고창 선동리 광활한 메밀꽃밭 눈이 내린 듯
◆하얀 꽃들의 구릉, 전북 고창 메밀밭


3-2
고창 학원농장의 구릉진 땅에 하얀 메밀꽃들이 가득하다. 경관과 수확을 고려해 3회에 나누어 파종하며 10월까지 꽃을 볼 수 있지만 꽃의 나날이 그리 긴 것은 아니다.

봄날, 부드럽게 휘어진 지평선을 넉넉히 흔들던 청보리의 땅. 지금 그곳엔 하얀 메밀꽃들로 가득하다.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의 학원 농장과 주변의 농장들의 합작품이다. 한쪽에는 짙은 황화 코스모스가 눈이 아프도록 번쩍거리고 꽃들 사이 황톳길에선 고소한 흙내가 난다. 냄새가 난다.

학원농장은 진의종 전 국무총리와 그의 부인 이학 여사가 1960년대 초 야산을 개간해 농장으로 일구었고 이제는 국내 경관 농업의 대표가 되었다. 예부터 두루미가 많이 날아들어 황새골이라 불렸다는데 '학원'이라는 이름도 학이 많다는 뜻이다. 광활한 메밀 꽃밭의 몇몇 구획은 비어 있다. 꽃을 오래 보기 위해 시차를 두고 메밀을 심기 때문이라 한다. 학원농장은 경관 측면과 수확 측면을 고려해 10일 간격으로 3회에 나누어 파종하는데 그러면 8월 말부터 10월까지 꽃을 볼 수 있다지만 꽃의 나날이 그리 긴 것은 아니다.

☞여행정보

88고속도로 남원 방향으로 가다 남원 분기점에서 253번 고창담양 고속도로 고창 방향으로 가서 남고창IC로 나간다. 23번국도 함평 영광 방향으로 가다 공음 방면 796지방도로 빠져나가 직진하면 된다. 고창 학원농장 메밀꽃 잔치가 9월9일부터 10월10일까지 열린다.

국내 최대 선운사 꽃무릇 군락지 다음주 절정
◆절집을 둘러싼 붉은 그늘, 전북 고창 선운사


4-1
우리나라 최대의 꽃무릇 군락지라는 고창 선운사. 꽃은 지나치게 피어 있다. 물가에도, 바위 곁에도, 비탈에도, 나무들의 둥치 곁에도, 온통 붉은 꽃이다.

꽃은 지나치게 피어 있다. 고창 선운사, 우리나라 최대의 꽃무릇 군락지라는 명성을 눈으로 확인한다. 물가에도, 바위 곁에도, 비탈에도, 나무들의 둥치 곁에도, 온통 붉은 꽃이다. 마치 침묵의 시위자들처럼 일제히 몰려와 숲 그늘을 점령한 꽃, 꽃들. 그 붉은 그늘의 기운에 익사할 것만 같다. 꽃들은 긴 꽃대 끝에서 산형 꽃차례로 피어난다. 꽃줄기는 길고 가냘프지만 투명한 연두의 강함으로 꽃을 치켜세우고 있다. 뿌리는 독성을 지녔다. 그래서 죽음의 꽃, 지옥꽃이라고도 불린다. 꽃무릇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지금의 계절에 수많은 무리가 단숨에 꽃을 피우고 한순간 모두 함께 진다. 그러고 나면, 너무 늦게 온 연인처럼 짙은 녹색의 잎이 나오고, 잎은 이듬해 오월 사라진다. 꽃과 잎은 결코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꽃무릇은 상사화라 불리기도 한다. 동 시간대를 살지 못하는 슬픈 연애소설 같은 꽃이다. 선운사 꽃무릇은 9월 마지막 주가 절정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행정보

88고속도로를 남원, 광주 방면으로 간다. 담양분기점에서 253번 고창담양 고속도로를 타고 고창 방면으로 가다 고창분기점에서 15번 서해안고속도로 고창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선운산IC가 나온다. 선운사 입장료는 어른 4천원, 청소년 3천원, 어린이 1천원이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