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인생은 아름다워' 류승룡, 국내 첫 주크박스 뮤지컬무비 도전…1년간 보컬 트레이닝 받으며 춤까지 연습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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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30   |  발행일 2022-09-30 제39면   |  수정 2022-09-30 08:49
어설프고 빈틈있는 모습의 캐릭터 공감대
신중현 '미인' 부를 때 실제 대학동기 참여
그때 그 시절 생생한 추억의 현장으로 소환
힘든 시기 웃음 주는 코미디 연기 지향
관객과 호흡·소통하는 마당극 같은 무대
한국 뮤지컬 영화 활성화에도 기여하길

류승룡3

"이름하고 나이만 가지고 어디서 누굴 어떻게 찾아!" 남편 진봉은 투덜대면서도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아내 세연(염정아)의 황당한 요구를 못 이기는 척 받아준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그녀의 마지막 생일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괜찮냐, 아프진 않냐"는 걱정 어린 말 대신 묵묵히 여행길에 따라나선 진봉. 30년 만에 첫사랑을 만날 생각에 들뜬 세연과 달리 그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대중음악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에 절묘하게 녹여낸 국내 최초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다. 특유의 친근함으로 자칫 미워 보일 수 있는 진봉 캐릭터를 얄밉지 않게 그려낸 류승룡은 또 한 번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대체불가 배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부부로 처음 호흡을 맞춘 배우 염정아와의 퍼포먼스엔 뮤지컬 영화다운 흥겨움도 가득하다. "한 번쯤 내 인생을 돌아보고, 소중한 가족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라며 "촬영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는 그는 "첫사랑의 설렘과 아픔, 학창 시절 친구와의 우정부터 따뜻한 가족애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라고 자신 있게 영화를 소개했다. 인생을 관통하는 세대공감 대중음악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한 그들의 여정에 잠시 귀를 기울여봤다.

▶팬데믹을 통과해 2년 만에 극장을 찾았다. 기다림의 시간이 꽤 길었던 편이다.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우리가 늘 선물처럼 생각하고 있는 소중한 일상과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에 대한 이야기인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그런 공감대가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소개된 곡들도 유행을 타지 않는 명곡들이라서 사실 언제 개봉하더라도 무리는 없었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 전달과 함께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모두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첫 느낌은 어땠나.

"솔직히 클래식 뮤지컬이었다면 출연을 고민했을 텐데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가요를 대사처럼 하고, 극중 배역도 가수가 아니어서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작품 안에서 '50%의 행복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보자'를 모토로 잡았을 만큼 다들 아름다운 인생의 한 정점으로 남기려는 의지들이 강했다. 그래선지 촬영하는 동안 다들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신중현의 '미인'을 부를 때는 실제 대학 동기들이 함께했는데 그 시대의 추억을 담아내고 소환한다는 의미가 있어서 더 좋았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누구나 알고 즐기는 대중음악 레퍼토리가 이야기에 제대로 녹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래 선곡은 어떤 과정을 거쳤나.

"제작자와 감독, 작가가 둘러앉아 무수히 많은 곡을 후보에 올렸고 그중 15곡을 선택했다. 뮤지컬은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펼쳐지는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를 만나기도 하고, 상상의 세계를 담기도 한다. 거기에 맞춰 록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이 영화에 삽입됐는데 어떤 이야기와도 잘 어울릴 수 있는 곡들이 많았다. 각각의 콘셉트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된 곡들이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애창하는 곡이 있었나.

"학창시절에 기타 치면서 자주 불렀던 곡이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알 수 없는 인생' 등인데, 이문세의 '애수'는 이번에 특히 좋아하게 됐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이지만 너무 좋아서 자꾸 듣게 되더라."

▶배우들의 호흡도 좋았다.

"나 역시 감탄하면서 봤다. 진지할수록 웃음이 나오는 연기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옹성우(정우 역) 배우가 딱 그랬다. 작품에 임하는 태도와 캐릭터에 대한 끝없는 고민까지 이미 완성형 배우였다. 박세완(어린 세연 역) 배우는 큰 눈을 장점으로 잘 활용하더라. 대사가 없어도 그의 눈을 보면 수줍음, 설렘, 허망함 등 다양한 감정과 진심이 느껴졌다. 또 연기를 능청스럽게 잘해서 예쁜 심달기(현정 역) 배우는 말할 것 없고, 내 아들로 나온 하현상 배우의 연기도 감탄하면서 봤다. 아이돌 출신인데 그 친구가 본격적으로 연기 트레이닝을 받았다면 저런 연기가 나왔을까 싶더라. 날 것 그대로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

▶'난타'의 원년 멤버이고 탈춤, 사물놀이에도 일가견이 있지만 뮤지컬과는 장르적으로 접근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나.

"할리우드에서 태동 된 뮤지컬은 쉽게 말해 오페라의 대중적인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우리가 표방하고 있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친근한 대중가요를 이야기에 녹여 낸다는 점에서 기존 뮤지컬과 성격적으로 큰 차이점이 있다. 접근 방식도 다르다. 가이드 녹음, 현장 녹음, 후반 녹음 등을 거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리테이크 했고, 그 과정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뽑아냈다. 약 1년간 춤과 노래를 치열하게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친숙한 대중가요이긴 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도 대사처럼 감정을 잘 전달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일까를 늘 고민했고, 따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김광진의 '편지'는 유일하게 무반주 라이브로 부른 곡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다."

▶안무와 율동의 콘셉트도 궁금하다.

"세월감이다. 사실 과거의 모습은 젊은 배우가 하는 게 적절할 수 있지만 이 영화의 톤과 성격은 그렇지 않다. 별다른 기교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황 언어를 지향점으로 삼았다. 빼어난 춤과 노래는 언제든 쉽게 접할 수 있다. 엄마와 아빠, 이웃의 아줌마·아저씨가 즐겨 부르던 추억이 담긴 명곡들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생 이야기를 한 편의 뮤지컬 영화로 보여주는 게 목표였다. 갈등 요소나 빌런이 없는 영화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런 기능들을 진봉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해줘야 했고, 이를 상쇄시킬 수 있는 어딘가 어설프고 부족하고 빈틈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런 포인트가 안무에서 잘 드러났다고 본다."

▶진봉은 보편적인 공감을 요구하는 만큼 신파에도 가닿기 쉬운 캐릭터인데 그를 어떤 인물로 생각하고 접근했나.

"괴팍하고 까칠한 성격의 진봉이 세연의 암 선고를 듣고 나서 부른 노래가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언제쯤 사랑을 다 알까요,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시간을 되돌릴 순 없나요, 조금만 늦춰줄 순 없나요'라는 가사에 진봉의 심리적인 상태가 잘 드러나 있다. 암 선고를 받으면 당사자와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단계들이 있다고 한다. 강하게 부정하다가 분노하고, 나중에는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진봉도 겉으로는 무덤덤한 척했지만 그 역시 엄청난 충격이라 무서웠다고 고백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잘못 발현됐을 뿐 그도 아내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다만 세연의 측은함과 억울함이 더 극명하게 드러나야 하기 때문에 진봉을 극 중반까지 모두가 대동단결해서 욕해줘야 할 인물로 배치했다."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다면.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면서 나름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것, 중요한 것, 미루지 말아야 할 것 등을 분리 수거하듯 나눠서 순위를 정하는 편인데 그렇게 해놓지 않으면 전체를 소홀히 하거나 망각하게 된다. 대신 정해진 일을 끝내면 나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무뚝뚝한 남편 진봉과 무심한 아들딸을 위해 평생 헌신하며 살아온 아내 세연을 보면서 측은한 감정이 많이 들었던 이유다. 사실 요즘 세상에 그런 남편하고 살아줄 여자가 어디 있겠나. 이를 객관화시켜 보면 '나는 저 정도는 아냐, 에이 나쁜 놈' 하다가도 어떤 지점에선 나도 저런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자기 반성을 하게 된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건 뭔가.

"일단 물리적인 것들이 다른 작품을 할 때보다 3배 정도 힘들었고, 춤과 노래를 통해 어떻게 공감을 얻어낼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됐다. 마당극을 떠올렸다. 마당극은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추임새를 넣으며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무대로 자리 잡았다. 우리 영화도 그랬으면 했다. 내 아들이 십 대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곡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부모 세대가 좋아했던 노래들이지만 요즘 세대들도 별 거부감없이 트렌디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솔직히 놀랐다. 옛것이 무조건 진부하거나 잘못된 건 아님을 새삼 느꼈다."

▶코미디와 정극 캐릭터를 괴리감 없이 넘나드는 넓은 스펙트럼을 지녔다. 이번에도 코미디적 요소를 더해 진봉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인물로 만들어냈는데.

"개인적으로 코미디 연기를 지향하는 편이다. 특히 요즘처럼 웃음이 없어지는 시대일수록 약간의 사명감 같은 것도 자꾸 생긴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코미디 연기다. 과하지 않게 밸런스를 맞춰야 하고 적절한 타이밍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그런 부분을 요구하는 작품을 만나면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많은 분이 '극한직업'의 배우 류승룡을 사랑해주셨듯, 건강한 웃음, 공감되는 웃음을 계속 전하고 싶다. 그리고 자기 복제 없이 공감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게 내 연기의 모토다."

▶이 영화를 "선물 같은 영화"라고 표현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잘 산다는 건 무엇일까'를 많이 생각했다. 아내가 떠올라 많이 울기도 했다. 남자들은 종종 '와이프가 제일 무섭다'고 하는데 나는 아내가 없다고 생각하니 그게 더 무서웠다. 이전보다 더 가정에 충실하게 되고, 잘하려고 노력하게 되더라. 관객들도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 같아 '선물 같은 영화'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이 마중물 역할을 해서 한국 뮤지컬 영화가 활성화되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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