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 시민기자 세상보기] 노동자로서 바라보는 대구 10월항쟁

  • 이준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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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7 16:41  |  수정 2022-09-28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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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문학제 행사 사진. <이철산 시인 제공>

고교 문예부에 들어가면서 처음 글을 썼다는 이철산(57·경산) 시인은 대구 근교의 자동차 부품 하청공장에서 노동자였다.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금껏 쓰고 있다. 2019년 시집 '강철의 기억'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대구를 벗어나 본 적 없는 그에게 1946년 대구 10월항쟁은 외면할 수 없는 아픈 역사다.

어렴풋하게 알던 10월항쟁을 제대로 알게 된 건 2011년 대구지역 시민단체와 지역 예술가들이 모여 '10월항쟁 바로보기' 행사에 함께 하면서부터였다. 10월항쟁에 대한 강연을 듣 국가폭력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의 유가족을 만났다. 10월항쟁이 일어났던 거리를 따라 걸었고 숨겨진 학살터를 더듬어 찾아냈다.

'10월항쟁 바로보기'를 함께 했던 예술가 시인, 화가, 춤꾼, 연기자 가수들이 모여서 '10월문학회'를 만들었다. 이후, 더 큰 공동체를 위한 첫걸음이었다.

10월항쟁은 무엇일까? 이 시인은 "1945년 해방이 우리 민족이 아닌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이뤄졌다"며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우리 민족의 해방공동체를 바로 세우지 못함"을 뼈아파했다.

현대사의 시작점인 10월항쟁을 왜 몰랐을까? 미군정은 친일 관료와 친일 경찰을 다시 불러들여 자주적 해방공동체를 탄압했다. 지금까지 친일 세력과 잔재들이 사회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이 시인은 말한다.

10월항쟁을 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남로당 박헌영의 지시로 일어난 노동자 총파업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또 해방 이후 미군정 식량정책의 실패와 친일경찰과 친일관료들의 폭력과 횡포에 굶주린 민중들의 항쟁이라는 시선이다.

일제강점기를 겪고 해방 이후의 노동 현장은 어땟을까? 이 시인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오늘날 노동 현장에서 외치는 임금인상과 처우개선 그리고 고용보장은 10월항쟁 당시 노동자들의 요구조건과 다르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10월항쟁 당시 노동자들의 파업과 요구가 더 진보적이라고 말한다.

10월항쟁을 왜 알아야 하고 우리에게 그 의미는 무엇일까? 뿌리가 중요하다. 10월항쟁을 바르게 아는 것은 해방 후 우리 현대사의 뿌리를 바로 아는 일이다. 대구에서 10월항쟁이 처음 일어나 그 불길이 전국으로 번졌으며. 동학 농민항쟁과 3.1만세운동과 더불어 10월항쟁은 우리 현대사의 3대 민중항쟁이다. 젊은이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 다양하고 더 폭넓게 10월항쟁을 우리 삶 속에 복원해야 한다.

10월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가족들의 바람은 하나다. 국가가 먼저 국가폭력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을 발굴하고, 유가족에게 배상과 보상을 해야 한다. 위령탑을 세워 국가폭력을 기록하고 학살의 역사를 가르치는 올바른 역사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최근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대구시에서 어렵사리 조례를 만들어 매년 빠짐없이 10월항쟁 추모제와 관련 행사에 대한 예산을 지원했는데 올해는 지원금이 막혀 버렸다. 보수를 내세우는 새로운 시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이라 한다. 10월항쟁 유족들과 민예총을 비롯한 예술가와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추모제와 10월문학제 및 10월항쟁 계승 시민대회를 열 계획이다.

노동자 이철산 시인의 바람도, 10월항쟁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다르지 않으리, 일하고 싶을 때 일하는 세상, 일 쉬고 싶을 때 일 멈추는 세상을.

이준희 시민기자 ljoonhll25@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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