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넷플릭스 시리즈 '글리치' 지효 역 전여빈 "누구나 마음 속 외계인 하나씩 살고 있죠…기이한 모험에 설레"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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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21 08:44  |  수정 2022-10-21 08:50  |  발행일 2022-10-21 제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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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다 못해 밋밋했던 지효의 일상은 남자친구 시국(이동휘 분)의 실종으로 완전히 뒤바뀐다. 시국의 실종이 단순 가출이 아닌 외계인에 의한 납치라는 정황을 발견하면서다. 중학교 시절 외계인을 목격했던 지효는 당시의 기억을 모두 잃었다. 이후 일상생활에서 외계인이 눈앞에 나타나는 환각에 시달린다. 10여 년간 "나는 미치지 않았다"고 스스로 되뇌며 살아왔지만 그 시간이 무색하게 기괴한 형체의 외계인이 지효 앞에 더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배우 전여빈이 넷플릭스 드라마 '글리치'의 홍지효로 돌아왔다. 매 작품 틀에 갇히지 않은 연기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한 그는 남들만큼 평범하게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지효를 통해 공감을 자극한다. SF로 시작해 미스터리, 버디, 성장물의 특성과 캐릭터들이 어우러지는 복합장르에서 전여빈은 자신이 애써 부정해 오던 것들과 당당히 마주하며 자기 확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담아낸다. "탐험하는 마음으로 지효의 여정을 따라갔다"고 말한 그는 "'글리치'를 통해 당신 안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외계인이 있어도 괜찮다" 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변주되고 변화하는 이 낯선 모험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짧은 머리에 주근깨 그려 개성있는 성격 부각
미지의 세계를 좇아 뛸 수 있도록 운동화 착용
"못나거나 이상해보여도 괜찮아" 메시지 전달


외형적 모습 이면 아이같은 성격 표현에 집중
연기 대한 끝없는 갈망이 지금 나의 원동력
챕터마다 연기과제 도전하며 스펙트럼 넓혀

▶'글리치'는 성장물이지만 소재적으로는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진 복합장르의 영화다.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꼈나.

"4부까지 받아 본 대본의 첫 느낌은 뭔가 광대한 모험이 펼쳐질 것 같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UFO를 좇는 이 구체적인 모험의 끝이 어떻게 귀결될지 그 궁금증을 향해 뛰쳐나가고 싶었는데, 무엇보다 노덕 감독님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학생 시절 오디션을 볼 때면 감독님이 연출한 '연애의 온도'의 한 장면을 독백 대사로 만들어 시연했을 만큼 팬이었다. 진한새 작가님의 '인간수업' 또한 감탄하며 본 작품 중 하나다. 작가님의 신선하고 기발한 필력이 다음 작품에서는 어떻게 승화될까 하는 기대와 궁금증이 컸고, 두 분의 조합이라면 꼭 함께하고 싶었다."

▶지효는 얼핏 평범해 보이는 삶을 살고 있지만 남모를 고민을 안고 있다. 그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지효는 시국과 헤어지기로 결심하면서 '내가 미친년이라도 데리고 살 자신 있어?'라고 말한다. 남들과 다르게 외계인을 볼 수 있었던 지효는 이를 무시하고 살아왔지만 시국이 결혼을 전제로 동거를 제안하자 그를 포함한 모든 일상이 갑자기 망가질 수 있음을 경계한다. 하지만 나는 지효를 미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외계인 하나씩은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효는 어떤 억압된 기억을 갖고 있고, 그 기억을 잊은 채 평범한 얼굴로 살고 싶어 한다. 그런 그가 시국의 실종을 계기로 더 이상 평범을 위장할 수 없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나선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매일같이 안전하고 견고한 담을 구축해 왔지만 미지의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그 담을 넘어 뛰쳐나간 것이다. 그 점에서 용기와 결단력을 지닌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마음 속에 하나의 외계인이 있다고 말했는데 외계인의 존재를 믿나.

"가끔 이런 생각은 한다. 이 광활한 우주에 과연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할까. 다큐멘터리를 보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한 번도 듣거나 보지 못한 생명체들의 존재를 새롭게 알게 된다. 그렇다면 우주 어딘가에도 또 다른 생명체들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의 외계인이 있다고 말한 건 그게 뭔지는 명확히 모르겠지만 내 속에 아주 많은 생각이 있고, 만약 내 생각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외계인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잘 살아 보고 싶은 마음이라는 의미다. 이상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글리치'가 좋다. '너에게 외계인이 있어도 괜찮아,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여도, 또 못나 보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지효의 경우는 남들이 봤을 때 그의 모험이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겠지만 스스로 변했고,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다. 그가 이뤄낸 모든 모험의 여정을 응원해 주고 싶다."

▶극 중 지효의 캐릭터나 외형은 어떻게 완성했나. 단발에 안경, 맨얼굴에 가까운 분장으로 때 묻지 않은 소녀의 모습을 구현해 당찬 지효만의 개성이 묻어난다.

"외형에 별 신경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지효는 '너드미'(괴짜 같은 매력을 지닌 사람)가 강조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의상, 분장, 헤어 각 분야 전문가가 긴 논의를 거치고 수많은 테스트를 통해 디자인됐다. 홍조나 주근깨를 드러내 민낯처럼 보이되 너무 거칠지 않게 하기로 했고, 얼굴에 어두운 분위기를 더해 어딘가 골몰해 있는 인상을 만들려 했다. 특히 짧은 머리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 길이를 계속 유지해야 했는데 그런 세세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고 개성 있는 홍지효 스타일이 완성됐다. 그리고 언제나 발 뻗어 달려 나갈 수 있도록 늘 운동화를 신었다."

▶많은 일을 당차게 해내는 지효를 보면서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를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지효의 모험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챕터마다 내가 도전해야 할 과제들이 생기면서 배우로서 내 역량도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나 그런 것을 바라고 있고, 특히 배우라는 직업을 택한 건 다양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나를 표현할 기회를 찾고 싶은 것일 텐데 '글리치'를 찍으면서 그 부분을 가장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어떤 장면에선 현실이 자각되며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현타가 올 때도 많았다. 우스꽝스러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요상한 모자를 뒤집어쓴 채 연기를 한 10부 추도식 장면을 찍을 때는 전율까지 느꼈다. 당시 상황이 정말 무섭고 두려웠다. 집단 자살을 위해 많은 사람이 모여 있고, 결과적으로 내가 그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니 극 중 상황임에도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게 두려웠다. 감독님도 모니터링을 하면서 공포와 두려움을 내가 온전히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전해졌다고 하셨다."

▶여성 버디물의 모범 답안처럼 보일 정도로 함께 주연을 맡은 나나(보라 역) 배우와의 호흡이 좋았다.

"처음 대본을 보고 보라 역할을 하는 배우는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겠다고 생각했는데 나나라는 말을 듣고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완벽히 보라로 와줬고 연기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 연기는 주고받는 호흡이라 상대 배우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 점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연기적으로도 그렇고, 동료로서도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줬다. 서로를 향해 엄청 애를 쓰지 않아도 유기적으로 잘 맞았고, 서로를 믿어줬다. 그래선지 저희 둘을 좋아하는 한 팬이 '아랍두부가 진리다'라는 말을 해주셨다. 나는 두부상의 얼굴이고 나나는 서구적으로 생겨서 아랍상이라는 말인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케미라고 평가를 해준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나가 '글리치'의 꽃을 확 펼쳐줬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 작품뿐 아니라, '빈센조' 송중기, '낙원의 밤' 엄태구, '멜로가 체질' 천우희·손석구 등 만나는 배우마다 좋은 호흡을 보여줬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모 선배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작품을 하면서 상대 배우들에게 느낀 어떤 순간들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있다. '죄 많은 소녀'는 이랬고 '멜로가 체질'은 저랬고 '빈센조' '낙원의 밤' '글리치'는 이랬다면서 신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선배가 '너는 복이 많았구나'고 하시더라. 그런 기분을 늘 느낄 수 없는데, 네가 호흡이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났다면서. 다만 그것은 늘 있는 일은 아니고 아주 멋진 우연, 멋진 행운의 순간이라고 하셨다. 앞으로 그렇지 못한 순간이 올 수 있으니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지 염두에 두면 좋을 거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선배 말처럼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진짜로 반응한다는 것, 살아있는 연기가 어떤 건지를 늘 고민하면서 연기에 임하고 있다."

▶'글리치'를 찍으면서 가장 도전적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은 뭔가.

"지효 자체였다. 나는 배우이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외계인을 만난 지효의 상황과 환경 자체가 사실 엄청 큰 과제이자 설정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믿어주려고 한 게 도전이었다. 지효는 자신의 상태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친구가 아니다. 그는 비균질적인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가 정제되지 않고 툭툭 발화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를 세련되지 않게 표현하고, 지효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큰 과제였다. 그리고 다 큰 어른처럼 보이는 지효 안에 생생히 살아있는 어린아이를 너무나 잘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렵진 않았다. 주변에서 정말 많은 사람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그냥 다 믿고 달릴 수 있었다."

▶데뷔 후 쉼 없이 달려왔다. 행운이라고 말했지만 그 동안의 노력이 있었기에 찾아온 결실이 아닐까 싶다.

"스무 살 초반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어떤 것을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많은 고민 끝에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연기를 배우는 순간 해방감과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배우가 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처럼 되지 않고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면서 갈급했던 것 같다. 배우가 되고 싶고, 연기가 하고 싶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함께 하고 싶었던 그때의 갈급함이 지금의 나를 지켜주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지치고 에너지가 고갈되는 순간에는 그때를 떠올려본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그때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이 순간, 단 한 번뿐인 이 순간을 잘 살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주어진 시간에 충실해지려 한다. 그래서 감사하다. 내가 감사한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나의 노력과는 상관없는 일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출연작들, 그리고 '글리치' 같은 작품이 나에게 와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 것 같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 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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