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리멤버…가족을 죽인 친일파 척살 '80대 노인의 핏빛 복수극'

  • 윤용섭
  • |
  • 입력 2022-10-28 08:47  |  수정 2022-10-28 08:49  |  발행일 2022-10-28 제39면

리멤버

뇌종양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한필주(이성민)는 은퇴 후 십 년 넘게 일해오던 패밀리 레스토랑 일을 그만두기로 한다.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가족을 죽음으로 몰았던 이들을 척살하기 위해서다. 필주의 부모와 형, 누이는 모두 친일파들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당시 소년이었던 필주는 무력하게 그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노쇠한 육체와 마찬가지로 기억력마저 쇠퇴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음을 느낀다.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손가락마다 처단해야 할 이름을 새기고, 숨겨 놓았던 권총을 다시 꺼낸 그는 마지막으로 레스토랑에서 친분을 쌓은 평범한 20대 알바생 인규(남주혁)에게 운전을 부탁한다. 딱 일주일만 운전을 도와주면 알바비를 넉넉하게 챙겨주겠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필주를 따라나선 인규는 첫 복수 현장의 CCTV에 노출돼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고, 의도치 않게 필주의 복수극에 휘말린다.

영화 '리멤버'는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은 노인의 복수를 다룬 캐나다 영화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2015)를 리메이크했다. 노인의 복수라는 콘셉트 빼고는 원작과 완전히 다른 결의 영화로 완성됐는데, 우리 사회가 암암리에 면죄부를 부여한 친일파들을 향한 단죄를 현대 시점으로 끌어왔다. 오래전부터 이 일을 계획해왔던 필주는 장성한 자식들이 각자 가정을 이루고,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금이 복수의 적기라고 생각한다. 가장의 책임에선 자유로워졌지만 살아온 세월이 오롯이 육체에 새겨지듯 과거의 기억들도 계속 망각 속으로 침잠해지자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 마지막 기억은 복수여야 해"라고 되뇌며 소멸해가는 육체의 마지막 힘을 다해 걸음을 옮긴 그는, 그렇게 조금씩 더 힘겨운 시간 속으로 향한다.

영화는 20대 청년 인규가 그를 돕는다는 설정을 새롭게 추가했다. 연출을 맡은 이일형 감독은 전작 '검사외전'(2015)에서 황정민과 강동원의 브로맨스를 이번엔 세대 차이를 넘어선 필주와 인규의 독특한 케미가 빚어낸 화끈한 버디 무비로 탈바꿈시켰다. 물론 80대 노인의 복수극이라는 한계는 존재한다. 그럼에도 친일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척살하는 과정에서의 속도감 있는 전개와 액션은 제법 박진감이 넘친다. 거창한 역사적 관점의 제시와 이데올로기라는 교과서적 주입 대신 살아남은 이의 기억을 통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품어봤을 분노에 포커스를 맞춘 점 역시 주효했다. 이일형 감독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말하는 것을 넘어 지금 세대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필요하다"며 "친일에 대한 문제, 현대 사회에 남아있는 잔재라는 측면을 넘어서서 과연 옳고 그르다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고 전했다.(장르:액션 등급: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