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11월에 가볼 만한 은행나무 단풍 명소…"1만 그루 도열한 경주 도리 은행나무숲, 샛노란 융단길 걸어보세요"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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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04 07:27  |  수정 2022-11-04 07:28  |  발행일 2022-11-04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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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월촌마을의 가장 윗자리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땅 위로 길게 드러난 굵은 뿌리로 비탈을 꽉 붙잡고 당당하게 서 있다.

차창 밖으로 노랗게 물들어 가는 은행나무 가로수를 본다. 나란히 서 있어도 이이는 노랑, 저이는 노랑연두, 지나쳐 잔상만 남은 그이는 아직 초록이다. 이즈음이면 저절로 생각나는 몇 그루 은행나무가 있다. 달성 도동서원, 경주 운곡서원, 영천 임고서원 같은 서원의 은행나무들, 금산 보석사나 청도 적천사, 경산 경흥사, 영동 영국사와 같은 절집의 은행나무들, 원주 반계리, 안동 용계리와 같은 마을을 지키는 은행나무들이 눈앞에 환하다. 그런가 하면 가슴에 아로새겨져 어느 계절이든 불쑥불쑥 떠오르는 나무들이 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노란빛들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들의 안부를 묻게 되는 그런 나무들.

◆경북 청도 하평리 월촌마을의 은행나무

청도 하평리에 월촌(月村)마을이 있다. 마을은 경사진 산비탈에 자리하고 아래에는 천이 흐른다. 태양은 산마루 위에서 빛나 희끄무레한 비탈이 은하수처럼 쏟아지는데, 마을의 가장 윗자리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형형한 시선에 흠칫한다.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엄청난 거대함이다. 우람한 뿌리 근육이 지상에 길게 드러나 그 굵은 뿌리로 비탈을 꽉 붙잡고 당당하게 서 있다. 그렇게 근 500년의 시간이라 한다.

나무는 조선 중중 때인 1509년 김해김씨 낙안당(樂安堂) 김세중(金世中)이 심었다고 전한다. 그 기념비가 나무 아래에 서 있다. 구슬 만한 은행이 나무 아래 가득하다. 왜 이 나무를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낮은 담장 위에 놓인 잘 익은 감, 그 옆에 나란히 놓여 있는 이름 모를 새가 가져다 놓은 이름 모를 열매, 산비탈을 개간해 가꾸어 놓은 감밭, "은행 좀 주워 가"라시던 노인의 음성 위로 그 강하고 처연한 가지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일지도.

☞여행 Tip 청도읍에서 운문, 경주 방향 20번 국도를 타고 줄곧 직진하면 된다. 하평리 은행나무의 단풍은 11월 중순 즈음에 절정일 것으로 여겨진다. 사진은 10월30일의 모습이다. 이 외에도 청도에는 800년 된 적천사 은행나무, 대전리 한밭마을의 400년 된 은행나무, 약 408년 정도로 추정되는 칠성리 은행나무, 530년 된 서원리 은행나무, 운문사 경내에 있는 407년 된 신원리 은행나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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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의동마을의 은행나무 길은 강렬한 노란빛과 무성한 이파리들로 이름나 있다. 사과나무밭에도, 창고의 박공지붕 위에도, 길가 벤치에도, 어느 좁은 담벼락 위도 모두 노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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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을 살아온 거창 연수사 은행나무는 가끔 슬피 운다고 한다. 몸에 난 깊은 고랑들은 나무의 눈물이 만든 흔적이라고 전한다.

◆경남 거창 의동마을 은행나무길과 연수사 은행나무

거창 모곡천(毛谷川)변 가로수의 단풍이 근사하다. 모곡천은 곧 황강에 합류한다. 이곳에서 황강은 아월천(阿月川)이라 불린다. 달빛이 넘쳐 땅 거위가 노는 것을 밤에도 볼 수 있어 아월이라 했다고 한다. 아월천을 가로지르는 의동교를 건너면 곧장 눈부신 은행나무길이 시작된다. 거창읍 학리(鶴里) 의동마을 입구의 은행나무 길이다. 길은 그리 길지 않지만 강렬한 노란빛과 무성한 이파리로 이름나 있다. 수확이 끝난 사과나무밭에도, 딸기 하우스의 하얀 지붕 위에도, 허물어질 듯한 창고의 박공지붕 위에도, 길가 벤치에도, 어느 집 좁은 담벼락 위에도 모두 노란 은행잎이다.

거창으로 걸음 했다면 연수사도 기억하자. 연수사는 거창 감악산의 8부 능선 즈음에 자리한다. 일주문 속으로 돌계단이 하늘 높이 오르는데 그 옆에 돌계단보다 높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의 나이는 600살 정도로 추정되며 수나무다. 600년 전 고려 왕족과 혼인을 한 여인이 유복자를 낳고는 속세를 떠나 이 절에 들어와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아들이 노승과 함께 공부를 위해 떠날 때, 모자는 훗날을 기약하며 아들은 전나무를, 어머니는 이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때 심었다는 전나무는 1980년경 강풍으로 부러져 없어졌고 지금은 은행나무만 있다. 은행나무는 가끔 슬피 운다고 한다. 곡을 하듯 슬피 운다고 한다. 그 소리가 인근 마을에까지 퍼지면 사람들은 함께 운다고도 한다. 은행나무의 몸에 난 깊은 고랑들은 나무의 눈물이 만든 흔적이라고도 전한다. 노랗게 뒤덮인 낙엽에서 축축함이 느껴진다.

☞여행 Tip 거창읍에서 1089번 지방도를 타고 조금 북향하다 의동 이정표 따라 들어가면 된다. 의동마을은 10월 말부터 단풍이 시작되었다. 11월 첫 주면 절정이 아닐까. 연수사는 거창읍에서 1084번 도로를 타고 남향하다 남상면사무소 지나 좌측 감악산로로 들어서면 된다. 지나는 길에 보이는 남상면 무촌리 마을회관 앞의 은행나무도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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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도리마을에는 가늘고 긴 줄기의 은행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숲은 가을이 깊어져 노란 카펫이 깔릴 때 스산하게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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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운곡서원의 유연정과 은행나무. 천북면의 황금들판이 다 비워지고 나서야 은행나무는 물들기 시작한다.

◆경주 도리마을 은행나무 숲

경주의 서쪽이라는 서면. 영천과 등을 맞댄 골짜기에 도리마을이 있다. 골짜기지만 대부분이 평지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의 서쪽에는 심곡천이 흐르고, 그 주변에는 비옥한 땅이 펼쳐져 있다. 마을에서 시작된 심곡천은 마을 초입에 커다란 심곡지(深谷池)를 이루고 대천이 되었다가 형산강으로 합류한다. 심곡천이 심곡지가 되는 물결 앞에서 도리를 바라보면 황금 왕관을 쓴 것 같은 은행나무 숲들에 눈부시다.

도리의 은행나무는 1만그루쯤 된다고 한다. 은행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50여 년 전이다. 임협 시험장에서 근무하던 마을의 한 사람이 가로수로 팔기 위해 은행나무 묘목을 심었고, 그것이 반백 년 세월 동안 자라 높이가 15m에 이르게 된 것이다. 가늘고 긴 줄기들이 나란히 촘촘하다. 아직 푸른 기운이 많은 숲. 태양과 얼굴을 마주하는 우듬지만이 완연한 황금색이다. 바닥엔 노란 잎과 함께 아직 초록의 엽록소를 지닌 잎도 많다. 비옥한 흙 위에 떨어진 잎 위로 발걸음을 놓으면, 땅은 발소리마저 양분을 흡수하듯 빨아들인다. 도리의 은행나무숲은 가을이 깊어져 노란 카펫이 깔릴 때 스산하게 찬란하다.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영천IC에 내려 4번 국도 경주 방향으로 가다 서면에서 빠져나가 아화읍 내에 닿기 직전 심곡지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가면 된다. 도리마을 단풍은 11월 초부터 볼 수 있다. 중순 지나 잎이 떨어지면 더욱 거닐기 좋다. 실은 경주 운곡서원의 은행나무가 먼저 생각났었다. 서원 가는 길의 들판도 떠올랐다. 하기야 이 계절 경주의 모든 길이 예쁘지 않나.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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