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작가 김영진의 생각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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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10 08:56  |  수정 2023-02-10 08:57  |  발행일 2023-02-10 제34면
작품은 보여주기보다 오히려 생각하게끔 해야
작품은 나를 위한 것이고 상품은 남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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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바로 실재계라는 사라진 진리의 차원을 이미지를 통해 구현하려는 존재론적인 행위다. 작품은 보여주기보다 오히려 생각(사유)하게끔 해야 한다. 미술은 베끼는 것도 아니지만 배우는 것도 아니다. 1세대 선배님들은 거의 선생의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자유가 사라진다.

전시란 뭘까? 자랑이 아니다. 자기 필연의 고백이 없다면 왜 이 짓을 자꾸 할 수밖에 없는가.

일상과 우주의 지혜를 연마하는 작업(고행)을 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된다.

작업은 또 뭔가? 예술은 객관성 속에 주관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머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느낌을 통해서 이어간다. 자신만의 가치체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아닌가. 그래서 작업은 사유에서 나온다. 그것도 깊게 잠재된 사유. 그 숙성된 생각이 문득 깨달음처럼 와도 그놈한테 먹혀선 안 된다. 다시 그걸 수정·발전·포기하면서 시대성과 필연성과 연계해 봐야 한다.

작가는 꿈을 꾸는 인간이다. 꿈과 이상이 있는 이상 늙지 않는다. 세월은 얼굴에 주름을 주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 있을 때 영혼은 주름지지 않는다. 노자가 말하는 늙음은 젊음의 상실이 아닌 젊음의 완성이다. 글로써 생각을 풀어 보고 그림으로 생각을 막아본다.

작품은 나를 위한 거고 상품은 남을 위한 것이다. 작품은 자기만족(도취)이고 상품은 타인만족(돈)이다. 작품은 애물단지이고 상품은 명예를 좇는다. 작품은 거칠게 상품은 곱게 만들어진다. 작품은 적당히 못나야 하지만 상품은 예쁘장해진다. 작품이 무심이라면 상품은 성심의 범주에서 멈춘다. 작품은 미완성이지만 상품은 완제품으로 추락한다. 작품은 필연의 산물, 하지만 상품은 기획의 산물 아닌가.

나는 평생 누구에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늘 지금 여기에 있다. 최병소 선배한테 그렇게 말했다. '내가 죽어 없어지고 얼마 후 부음 소식을 들으시더라도 섭섭해하지 마시라'고. '자연에 무덤이라는 혹을 절대 남기지 않겠다'고. '내 유골이 빨리 지워지는 모든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고. '남은 작품 다 태워버리고 가고 싶다'고. 그래서 '세상이 더욱 투명해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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