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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 한 섬나라의 바다 위로 해가 지는 모습. 그곳에선 석양이 지고난 후 '낮보다 아름다운 밤'이 시작된다. |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 남쪽의 한 섬나라로 여행을 간 일이 있다. 오후 6시가 넘어서자 바다 위로 해가 지기 시작했다. 밤이 다가오자 조급해졌다. 이제 오늘의 여행을 마무리할 시간인 걸까. 하지만 저 아름다운 석양 이후 어두운 밤이 찾아온다는 생각에 쓸쓸해질 필요는 없었다. 그 나라는 낮만큼이나 밤에도 활기찬 곳이었기 때문이다. 해가 진 후 사람들은 저마다 거리로 나와 낮보다 쾌적해진 밤 공기를 즐겼다. 마치 이 밤을 위해 덥고 긴 낮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 같았다. 야시장들도 저마다 불을 밝히고 저녁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을 맞이했다. 부모 손을 잡고 밤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낮보다 아름다운 밤'이 실제로 거기에 있었다.
고흐와 같은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밤'을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밤의 경관이나 분위기가 더 좋은 사람일 수도, 또는 밤에 영감이 더 잘 떠오르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이 돼야 세상을 직시할 수 있는 부끄럼 많고 소심한 사람도 밤을 좋아할 것이다. 아니면 학업이나 일에 치여 제 시간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도 그동안의 결핍을 채우듯 밤 시간이 더욱 간절할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여러 나라의 밤을 수집하듯 여행할 것이다. 그 밤이 굳이 요란하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동남아시아의 활기찬 밤, 대도시의 차가운 밤, 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고요한 밤, 여름이면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북유럽의 백야(白夜)까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밤들이 있다. 어떤 공간이라도 밤에는 낮과는 다른 매력과 분위기를 뿜어낸다.
그런데 지난 몇 년은 많은 부분에서 '밤'을 잃은 시간이었다. 정확히는 밤 시간을 '어디서, 어떻게 보낼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잃어야 했다.
몇 해 전 지구상에 갑작스레 '코로나19'라는 불청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름도 낯선 이 신종 감염병으로부터 나와 내 이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잠시 동안 많은 것을 양보하고 포기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밤'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시간에도 제약이 생겼다. 눈앞에 닥친 팬데믹 앞에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코로나19는 밤의 모습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야간시간에 사람들은 바깥이 아닌 집에 있는 것이 권장됐다. 영업시간이 축소되면서 밤에는 카페도, 식당도 가기 힘든 때가 있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지난 시간은 밤에 발이 묶인 야행성 인간들에겐 아쉽기만 한 시간이었다.
시간적인 제약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간적인 제약도 함께 생겼다.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가서 그곳의 야시장을 즐기고 돌아오는 일도 팬데믹 기간 동안엔 불가능했다. 한동안 그 많던 비행기가 운항을 멈추고, 출입국이 제한되면서 해외여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 가서 멍하니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 될 줄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던 코로나19 상황이 점차 안정화되고, 최근엔 날씨도 따뜻해지면서 밤에 갈만한 곳이나 즐길 거리도 많아진 모습이다. 시간·공간적 제약 없이 '나의 밤'을 내 의지대로 보낼 수 있는 날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밤 여행자'들은 여행 계획을 세우며 혼자 속삭이고 있을지 모른다. "밤이 돌아왔다. 마침내…"
글·사진=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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