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격앙된 권리와 냉담한 인권 사이의 이슬람사원 돼지머리 사건을 되돌아봅니다

  •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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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18 06:50  |  수정 2023-04-18 13:10  |  발행일 2023-04-18 제21면

서창호
서창호(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무슬림에게 매우 중요한 '라마단'이 오는 21일까지 이어진다. 이 기간 무슬림은 금식 등 엄격한 계율로 살아간다. 그러나 경북대 무슬림유학생은 지금도 매일 '돼지머리'와 마주쳐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해 10월 설치돼 벌써 6개월 가까이 이슬람사원 앞에 전시되고 있는 돼지머리는 무슬림에게는 엄격하게 금기시되는 동물이다. 엄숙하게 기도를 해야 하는 이슬람사원 앞에서 매일 돼지머리와 마주쳐야 하는 사실에 그들은 한국을, 대구를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폭력적 상황은 돼지머리 전시만이 아니었다. 돼지 바비큐에 수육 파티까지 이어졌다.

이슬람사원 앞 돼지머리 전시 행위는 지역 언론은 물론 세계적인 매체에서도 잇따라 보도했다. 무슬림을 존중하지 않는, 혐오와 차별의 폭력이라는 비판적인 보도가 주를 이루었다. 물론 오죽했으면 이슬람사원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돼지머리를 내걸었겠느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모든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은 이슬람사원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주민의 생존권이 우선이다" "국민의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등의 반대 이유를 들었다. 무슬림유학생들에게 가해지는 고통, 즉 '인권침해'엔 애써 눈을 감으면서 이슬람사원 건립으로 인한 '권리 침해'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주민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권리의 침해와 인권의 침해를 혼용하거나 오해하고 있다. 인권은 권리이지만, 모든 권리가 인권은 아니다. 그냥 권리라 하는 것과 인권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인권은 모든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데서 시작한다. 모두가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하며 자기편 말만 들어달라고 하면 권리가 공존할 수 없다. 이슬람사원 건립을 반대하기 위해 모욕적이고도 폭력적인 행위를 동원하고, 인권과 존엄성을 짓밟으며 철저히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태도가 과연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자신의 권리가 타자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즉 관계성과 상호성을 성찰하지 않는 배타적 권리는 권리로서 제대로 설 수 없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무슬림유학생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무슬림유학생들이 사원건립 과정에서 주민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이해를 구했는지, 주택가 종교시설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 마련에 부족했던 점은 없었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럼에도 무슬림유학생들의 이슬람사원 건립은 존엄성의 문제이자 인권 문제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슬람사원은 종교적 그릇이기도 하지만, 무슬림유학생으로서 자신이 자신다울 수 있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에 예외는 없다. 권리도 중요하지만 삶을 지탱하는 본질은 존엄성이자 인권일 수밖에 없다. 이슬람사원을 반대하는 주민의 권리도 존중돼야 하겠지만 이슬람사원 건립은 무슬림유학생들의 본질에 가까운 존엄성 문제임을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주민 또는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재를 부정당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그렇게 예외와 배제에 맞선 투쟁이 인권을 창조해 왔다.

간절한 기대이긴 하나 시간이 흘러 돼지머리도 치워지고 이슬람사원이 건립됐으면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숙제는 남는다. 관계성과 상호성에 기초해 무슬림 유학생들과 주민의 존엄성을 어떻게 공존시킬 것인지는 쉽지 않은 과제다. 그리고 갈등을 제대로 중재하지 못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행정력 부재와 '평등한 언어'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데 미흡했던 인권시민사회의 역량 부족 등이 함께 책임져야 할 일이다. 무겁지만 봄이다.

서창호(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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