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막는 첫 단계… 친구 사이 갈등부터 싹 둑

  • 이효설
  • |
  • 입력 2023-04-17 07:51  |  수정 2023-04-17 07:53  |  발행일 2023-04-17 제13면
경미한 학폭이 대부분…'관계회복지원단'이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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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장수현기자 jsh10623@yeongnam.com


#사례 1

지난해 4월 3학년 동급생인 A군과 B군. A군이 복도에서 만난 B군에게 "등신"이라고 소리쳤다. 이후 B군이 A군에 다가가자 "저리 가!"라고 외쳤다. 이 사안은 학교폭력으로 경찰서에 신고됐다. 양측 모두 행정심판을 제기했고 모두 기각됐다.

#사례 2

2021년 한 고교 1학년 여학생 C양이 교실에서 마주친 D양에게 이름 대신 "당근"이라 불렀다. 등굣길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 사안 역시 학교폭력으로 접수됐다. C양은 자신이 D양에게 외모비하 발언을 한 것을 인정, 서면사과했다. 또 피해학생에 대한 접촉금지(2호)를 조치받았다. D양은 전문가 심리상담을 받도록 조치됐다.

학생들 말다툼 종종 행정소송까지 번져
대구시교육청 대화를 통한 해결방안 제시
갈등조정 전문교사 키워 관계 회복 시도
피해 학생 마음 대변…친구들과 갈등 조정


◆가해학생 조치 83%는 경미한 조치

학생들 간 경미한 갈등이 교내에서 조정이 안 돼 학교폭력으로 이어지는 일이 적잖다. '갈등해결'과 '또래조정'이 학교폭력을 완화하는 열쇠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대구시교육청의 대화에 기반한 해결 방식이 눈길을 끈다. 교사들을 갈등조정 전문가로 키우고, 이들이 학교에서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의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현황(2021학년도)을 보면 1·2·3호가 전체의 약 83%로 거의 대부분이다. 심의위에서 결정되는 가해자 조치는 1~9호가 있으며 1호 서면사과, 2호 접촉금지, 3호 교내봉사로 경미한 단계다.

장진욱 대구시교육청 생활인성교육과 장학관은 "학교폭력으로 신고된 사안들의 대부분은 사소한 말다툼"이라면서 "학생들 간 사소한 갈등이 해결이 안 돼 행정심판, 행정소송까지 불사하고 결국 상처받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갈등조정 전문가 양성 직무연수

대구시교육청은 경미한 갈등을 대화로 풀어가는 공감대 형성 연수를 펼치고 있다. 주제는 갈등해결과 또래조정을 통한 회복적 학교 만들기. 이재영 한국평화교육훈련원장이 강사로 나서 지난달 8일부터 이달 19일까지 각급 학교 교장, 교감, 학년부장, 저경력교사, 희망교사를 대상으로 학생 간 사소한 갈등을 풀어내는 방법을 교육한다.

학교 갈등조정 전문가 양성 직무 연수도 진행한다. 연수 대상은 초·중등 교사 40명, 학교관리자·신규교사·학생 40명이다. 연수시간은 무려 80시간이다. 참가자들은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을 연습하고, 공감·경청·대화의 방법을 배운다.

◆대화 통해 '관계회복' 되면 '치유'도 가능

대구시교육청은 2019년부터 관계회복지원단을 운영해 학생 간 갈등을 전환, 관계를 회복하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각 학교급 학생생활부장 대상의 각종 연수에서 관계회복지원단의 갈등 해결 방법을 적극 알리고, 이를 지원받은 학교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면서 지원단을 찾는 학교, 학생이 점점 늘고 있다.

대구 A중학교에 다니는 김모(14)양은 친했던 친구가 따돌림을 주도해 같은 반 모든 학생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피해를 입었다. 김양은 어떤 친구와도 대화하지 못했고, 이를 알게 된 학부모가 학교에 알려 관계회복지원단에 신청을 했다.

지원단에서는 김양과 친구들을 불러 대화하는 모임을 꾸렸다. 일명 '회복적 서클'. 처음에 김양은 입을 다물었다.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대화를 진행하는 교사가) 아이를 복도로 따로 데리고 나가 이야기를 나눴다.

김양은 "친구가 너무 두렵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것 같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김양은 진정한 후 다시 모임에 돌아왔지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래서 진행 교사가 김양의 입장이 돼 다른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김양은 그제야 용기가 생겼는지 말문을 열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오해를 풀고, 사과를 하고, 새로운 관계를 위해 다음 만날 약속을 잡았다.

2주 후 어떤 일이 생겼을까. 다시 대화 모임에 나온 김양은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놀았다. 친구들에게 "먼저 인사해줘서 고맙고 예전처럼 친하게 돼서 행복하다. 친구들도 나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들도 "갈등이 해결되고 오해를 풀어서 앞으로는 추억이 더 많을 것 같다" "편안하고 기쁘다"고 표현했다.

이 과정을 경험한 김양의 담임 교사는 "아이들 간 갈등이 생기면 교사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오히려 노력할수록 상황이 더 어려워질 때도 많았다"면서 "대화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에 대해 제대로 알고 대처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우민서 대구시교육청 관계회복지원단 교사는 "학생 간 사소한 갈등을 외부에서 처벌했을 때 오히려 문제가 많다. 피해자는 치유받지 못하고 가해자는 반성하지 못한다"면서 "가해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치유의 효과가 있다. 대화 중 피해 학생은 점점 고개를 들고 자기주도권을 갖는다. 화해까지 기대할 순 없더라도 대화 자체가 피해를 본 아이에게 큰 힘이 된다"고 조언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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