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토론이 두려운 도시 대구에게

  •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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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01 07:55  |  수정 2023-06-01 07:58  |  발행일 2023-06-01 제21면

서창호
서창호(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 한날 강의를 마친 뒤 사회자로부터 '다음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그는 "하버드대 학생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녹화해서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토론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대답했다. 샌델 교수는 토론문화를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이자 그 사회의 시민의식을 반영하는 또 다른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아고라'로 유명한 그리스가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 역시 주요 사안에 대한 토론을 의사결정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적극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구시에서 '정책토론'과 관련해 시민참여의 문턱을 높여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대구시의회는 정책토론 청구 인원을 기존 300명에서 1천200명으로 대폭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구시 정책토론청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하 정책토론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책토론 청구 인원 기준을 무려 4배나 늘린 것이다.

대구시는 정책토론 청구 인원을 늘려야 하는 근거로 먼저 '경북 군위군 편입'으로 인한 인구변동을 들었다. 군위군이 편입된다 해서 대구 인구가 4배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군위 인구는 2만5천여 명 정도로, 현재 대구 인구의 1% 정도 변동만 있을 뿐이다.

정책토론 개정안의 또 다른 사유로 대구시는 '정상화'를 제시했다. 2008년부터 15년 동안 제도를 운영하면서 총 21회의 정책토론을 개최했는데, 이것이 비정상적이었단 얘기다. 1년에 한두 번 하는 정책토론회를 두고 "행정력 낭비"라고 하니 납득하기 어렵다. 주요 현안 혹은 정책방향과 관련해선 시민들에게 지자체와의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하고 독려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지방자치 아닌가.

시민으로서 지역사회 공통의 이해가 걸린 문제를 숙의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사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는 의무에 가깝다. 만약 시민이 토론을 회피한다면 시민으로서의 책임도 회피하는 일이 된다. 정책토론청구제도는 시민이 정책과 관련된 토론 주제를 정해 대구시에 청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주민소통, 지방자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정책토론청구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토론 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근 국민의힘 당원으로서 당의 행태에 대해 발언했다가 사상 초유의 상임고문 해촉이라는 '봉변'을 당했다. 홍 시장은 당이 쓴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마찬가지다. 지자체는 시민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 대구시와 대구시의회의 이번 정책토론개정안은 지방자치 역사에서 가장 나쁜 의결 중 하나로 남을지 모른다. 지방자치에 전혀 부합하지도 않고 주민참여를 후퇴시켰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의 우려가 크다. 토론을 막아선 안 된다. 풀은 누구보다 먼저 눕지만 결국 누구보다 먼저 일어서는 법이다.

서창호(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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