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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 조각가들'은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과학자가 새로운 약이 창조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면서 약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 등 여러 방안이 동원됐지만, 결국 사태를 해결한 것은 바이러스 치료제와 백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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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만 지음/해나무/340쪽/1만8천500원 |
그런 신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여전히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있다. 신약은 왜 그토록 개발하기 어려운 것일까. 약이 되는 후보물질은 어떻게 찾는 것일까. 약의 효과는 최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모든 질문의 이면에는 묵묵히 분자를 조각하고 다듬어 생명을 살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분자 조각가들이 있다.
신약을 개발하는 화학자들은 분자를 조각하는 현대의 연금술사들이다.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피에타상을 조각했던 것처럼 분자 조각가들은 화합물에 탄소, 수소, 산소 같은 원자를 붙이거나 제거하고 커다란 분자를 연결해 형태를 만든다. 하지만 분자 조각가들의 최종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조각한 화합물이 나쁜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기능을 못 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화합물을 약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과학자가 새로운 약이 창조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 백승만 교수는 신약 개발 방법과 트렌드에 정통한 의약화학자인 동시에 약학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약의 역사를 다루는 인기 교양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과거부터 현대까지 신약이 개발된 역사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한다.
화학자들이 어떻게 신약 개발에 관심을 가졌는지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연금술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초기의 화학자들은 우연에 기대거나 동물이나 식물에서 영감을 얻어 신약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해열진통제의 대명사인 타이레놀은 개발 과정에서 여러 번의 우연한 사건을 겪었다. 타이레놀의 선조 격 의약품인 아세트아닐라이드는 의사가 처방한 약을 조제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잘못된 약물이 전달되면서 해열 효과가 발견됐다.
저자는 의약품 개발의 역사와 뒷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본업인 의약화학자로서의 전문성을 발휘해 어떻게 분자를 조각하는지 알려준다. 분자는 너무나도 작아서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존재다. 분자 조각가들은 화학반응을 통해 약이 될 수 있는 분자의 구조를 예측하고, 그 구조에 이를 수 있는 반응경로를 계획한다.
저자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화학지식을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그림과 비유를 동원해 능수능란하게 설명한다. 저자의 스토리텔링 화학 지식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약품이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신약 개발의 기본적 전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책 후반부에서는 최근 유행하는 신약 개발 트렌드를 다룬다. 화학자들이 생물학자, 동식물학자, 인공지능 개발자와의 협업으로 이뤄낸 성과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 어떻게 최신 의약화학 기술이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그 기술이 미래의 신약 개발 과정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알아본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약을 먹을 때마다 한 알의 약 뒤에 숨은 분자 조각가들의 치열한 고민에 경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저자 백승만은 서울대 제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2007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댈러스에 위치한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 약학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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