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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엽기자〈사회부〉 |
자가검진 키트 11세트, 뜯지 않은 KF94 마스크 23장, 3번 착용한 KF94 마스크 1장, 30% 정도 남은 손 세정제 1통, 몇 회 사용하지 않은 손 소독제 1통, 쿠팡 유료 멤버십, 네이버 페이를 연결한 배달의 민족 애플리케이션, 넉넉히 구비해 둔 생활용품들, 다수의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가볍게 운동할 수 있는 산책길 그리고 더 잦아진 창밖 배달 오토바이 배기음. 코로나19가 남긴 흔적들이다.
아직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시행되던 지난해. 매일 1시간 남짓 강변을 달린 뒤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집에서 출발해 준비운동 장소로 갈 때까지는 마스크를 낀 채 호흡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해 10여 분이 지나 땀이 흐르고 숨이 벅차오르면 고통이 시작된다. 땀을 머금고 축축해진 마스크는 가쁜 숨을 내쉬기도,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기도 어렵게 한다. 마스크 속 얇은 공간에 머무른 공기만 들숨과 날숨을 반복해 호흡하는 듯했다. 매번 운동할 때면 실외에서만이라도 마스크를 벗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요즘. 매일 출근을 할 때면 현관문 앞 복도에 달린 거울을 본다. 옷매무새를 다듬다 얼굴을 보면 익숙함과 어색함이 공존한다. 코로나19가 남긴 흔적이 잔상처럼 떠오른다. 이내 마스크가 없어도 된다는 것을 깨닫고 밖으로 나선다.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오는 6월1일을 기해 코로나19 위기경보 수준을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7일간의 격리 의무는 5일 권고로 전환되고, 동네 의원과 약국에서도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전면 권고로 전환된다. 코로나19 첫 발생 이후 약 3년4개월 만에 일상을 되찾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사스(2003년·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2009년), 메르스(2015년·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세계적으로 위협이 된 감염병이 나타났지만 코로나19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친 사례는 없었다. 이에 정부는 감염병 유행 및 대응을 위해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고 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다. 개개인이 받아들이는 경각심 또한 크게 높아졌다.
코로나19가 남긴 흔적은 거리 두기에서 출발해 일상회복까지 장장 3년4개월에 걸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경험을 통해 변하듯 이제 언제든 필요하면 꺼내 쓸 수 있도록 마스크는 구비해 둘 요량이고, 로켓배송과 음식 배달을 위한 비용을 계속 지출할 생각이다. 공간과 습관에 널부러진 흔적이 더는 별스럽지 않게 된 셈이다. 일상회복을 앞둔 이때, 아무런 준비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거대한 경험이 몰고 온 변화들을 곱씹어보게 된다.
김형엽기자〈사회부〉

김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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