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독순술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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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6 06:41  |  수정 2023-05-16 06:51  |  발행일 2023-05-16 제23면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나온 지네딘 지단(프랑스)의 '박치기 퇴장'은 월드컵 역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된다. 이 사건이 상대 선수인 마르코 마테라치(이탈리아)의 막말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은 경기 직후 제기됐다.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너와 네 가족의 비참한 죽음을 기대한다"고 했다는 것. 이른바 '독순술(讀脣術·입술 모양으로 대화 내용을 판독하는 기술)' 전문가들의 판독 결과였다. 최근 마테라치가 17년 만에 입을 열었다. 그는 "지단이 내게 유니폼을 교환하자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니, 나는 네 여동생이 더 좋아'라고 농담을 했다"고 밝혔다. 독순술 해독과는 차이가 있다. 2018년 남북 정상의 '도보다리 독대' 내용도 온갖 추측을 낳았다. 독순술을 의식해 후일 북측이 '김정은 입술' 엄호에 나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 날리면' 논란 때도 호사가들 사이에서 독순술을 쓰자니 말자니 시끄러웠다. 소리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발언을 명확하게 판독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통상 독순술은 청각장애인과 일반인의 의사소통에 쓰인다. 하지만 조사·형용사·부사 등이 섞여 있는 대화체를 정확히 해독하기는 힘들다는 게 구화(口話)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근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대관식을 기다리던 중 뭔가 구시렁거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한 독순술사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입 모양을 읽은 결과 '지겨워'라고 했다"고 밝혔다. 독순술 에피소드에서 교훈을 얻는다. 무릇 공인(公人)은 자나 깨나 말조심해야 함을. 우리 여야 정치인들이 각별히 새겨야 하지 않을까.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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