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가도 즐거운 의성 조문국박물관 여행 .3·<끝>] 주변 명소

  • 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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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9 08:28  |  수정 2023-05-19 08:32  |  발행일 2023-05-19 제14면
공룡 발자국·화산 흔적·고분군·석탑·고택…"박물관 밖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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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여 기의 고분이 늘어선 의성금성면고분군(조문국 사적지)에는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 나들이 즐기기에 좋다. 이들 고분은 금성면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고대 국가 '조문국'의 흔적으로 대부분 5~6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성조문국박물관이 위치한 의성 금성면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 같다. 중생대 백악기 공룡 발자국부터 고대국가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고분군, 억겁을 견뎌낸 석탑과 고택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시대별로 독특한 역사성을 지닌 유물과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유적을 보고 있으면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의성금성면고분군과 탑리리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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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로 지정된 의성탑리리오층석탑.
의성조문국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의성금성면고분군(조문국 사적지)에 들어서면 땅과 하늘의 경계면에 풍만한 곡선의 향연이 펼쳐진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분이 그려낸 모습이다. 금성면 탑리리, 대리리, 학미리 일대(63만38㎡)에 늘어선 고분만 374기에 이른다. 이들 고분은 금성면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고대 국가 '조문국'의 흔적으로 대부분 5~6세기경에 만들어졌다.

고분군 사이로 고분 모양을 한 인위적인 건축물이 유독 눈에 띈다. 바로 조문국 고분전시관이다. 대리리 2호분의 발굴조사 이후 그 자리에 전시관을 지었다. 내부에는 대리리 2호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진열돼 있다. 전시관 바로 오른쪽에는 조문국 경덕왕릉이 위치한다. 금성면 고분군 중 주인이 알려진 유일한 무덤이다. 조선 영조 시절인 1725년, 현령 이우신은 경덕왕릉을 증축하고 하마비를 세웠다고 한다. 그때부터 경덕왕을 기리기 위한 제사를 지내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분군 한쪽에는 낯선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삼우당 문익점 면작기념비다. 중국 원나라에서 씨를 갖고 들어와 목화를 보급한 문익점의 손자 문승로가 의성 현감으로 부임해 금성면 제오리에 면화를 파종했다고 한다.

고분군을 뒤로한 채 남쪽으로 2㎞가량 이동하면 탑리여자중학교가 나온다. 학교 뒤에는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고 있는 석탑이 우뚝하다. 국보로 지정된 의성탑리리오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낮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형태다.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이 존재한다. 의성탑리리오층석탑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 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한 자료로 손꼽힌다.

금성산이 품은 산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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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반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산운마을 풍경.
의성탑리리오층석탑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 산운(山雲)마을이 위치한다. 마을에 들어서면 넓고 푸른 마늘밭 위로 우뚝 솟은 금성산(530m)과 비봉산(671m)이 한눈에 보인다. 조선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 이광준이 이곳에 정착해 마을을 이룬 뒤 영천이씨(永川李氏) 집성촌으로 번성했다. 고즈넉한 마을을 거닐다 보면 시대를 거슬러 조선시대 반촌(班村)과 마주한다. 초입에는 학록정사(鶴麓精舍·경북도 유형문화재)가 자리 잡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학동 이광준의 공을 기리고 후학 양성을 위해 1750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이다. 조선 중기 건축양식인 팔작지붕과 문틀 등이 당시의 원형대로 잘 보존돼 있다.

소우당 고택(素宇堂 古宅·국가민속문화재)은 산운마을 한가운데 둥지를 틀었다. 살림채와 별당에 해당하는 안사랑채 두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사랑채는 소우 이가발이 19세기 초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사랑채 동쪽 끝에 있는 중문을 통해 안채로 출입하게 하는 조선 후기 양반집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안채의 서쪽 별당 공간은 연못과 수석, 소나무와 상수리·산수유·대나무 등으로 작지만 멋스럽게 꾸며져 '영남 제일의 정원'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소우당 옆에는 산운마을 대표적 건축물 운곡당(雲谷堂·경북도 민속문화재)이 있다. 운곡 이희발이 지은 운곡당은 조선 후기 양반 집으로 안채·사랑채·고방채로 구성돼 있으며 안채의 마루를 높게 해 사랑채에 드는 손님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점이 독특하다.

죽파 이장섭이 1900년경에 건립했다는 점우당(漸于堂·경북도 민속문화재)은 운곡당과 담장을 공유한다. 안채·사랑채·헛간채·문간채로 구성된 'ㅁ'자형의 집으로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았던 옛집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고 있어 경북지역의 일반 살림집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다.

산운마을 남쪽에는 산운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생태관 1천334㎡, 자연학습원 3천800㎡, 잔디광장 5천752㎡, 기타 시설물 160㎡ 등 규모가 상당하다. 50여 종에 이르는 나무와 풀, 꽃이 자라고 연못, 분수, 데크, 산책로, 쉼터, 솟대, 장승 등이 마련돼 있어 여유롭게 나들이하기에 좋다.

옛 산운초등 건물을 리모델링한 생태관은 의성군의 특산품과 관광 코스를 알 수 있는 홍보관과 지진과 화산 활동 등의 자료를 전시한 제1 전시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설명한 제2전시실, 공룡 화석과 연대기를 볼 수 있는 제3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공룡 발자국과 화산 폭발 흔적도

국내 최초 사화산인 금성산과 비봉산은 중생대 백악기인 약 7천만년 전 화산 분출 후 생성됐다. 조문국 시대의 주산(主山)인 만큼 수많은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그 가운데 금성산 정상분지에 묘를 쓰면 3년 이내에 큰 부자가 되지만 주변 지역은 석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전해온다. 실제 묘를 쓰는 이들이 간혹 있었고, 가뭄이 이어지면 주민들이 묘를 파내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금성산에는 조문국 시대에 만든 길이 2천730m, 높이 4m의 산성 흔적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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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과 비봉산은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등산객에게도 잘 알려진 명산이다. 해발 150m에 있는 금성산 주차장에 차를 대고 등산로로 올라가면, 비봉산을 거쳐 금성산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올 수 있는 등산로가 마련돼 있다. 소요 시간은 6시간 정도다.

비봉산 깊숙한 곳에는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수정사(水淨寺)가 자리한다. 임진왜란 당시에 유정이 머물며 금성산에 진을 치고 왜적을 격퇴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수정사 석조아미타삼존여래좌상, 석조지장삼존상 시왕상 및 복장물 일괄, 지장시왕도는 경북도 유형문화재다.

금성면에서는 공룡 발자국 화석도 쉽게 볼 수 있다. 의성 제오리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는 1987년 도로 확장 공사 도중 발견됐다. 제오리 공룡 발자국은 약 1억5천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1천656㎡나 되는 넓은 지역에 316개의 공룡 발자국이 남아있으며, 공룡 발자국 화석 중 국내 최초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만천리에도 10여 마리의 공룡이 남긴 126개의 발자국이 있다. 특히 두 마리의 새끼 공룡 발자국이 발견돼 주목을 끈다. 전 세계적으로 새끼 공룡의 보행렬을 관찰할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또 청로리 공룡 화석산지는 1973년 국내 최초로 공룡골격 화석이 발굴된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이일로 의성조문국박물관장은 "의성 금성면에는 의성조문국박물관을 비롯해 지역 곳곳에 역사·문화 유적들이 가득하다"며 "보다 많은 이들이 금성면을 방문해 의성조문국박물관과 주변 명소를 둘러보며 뜻깊은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지원 : 의성조문국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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