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칼럼] 심산 김창숙 선생의 '가짜선비론'

  • 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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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24  |  수정 2023-05-24 20:27  |  발행일 2023-05-24 제27면

[유영철 칼럼] 심산 김창숙 선생의 가짜선비론
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1879~1962) 선생이 살아있다면 현 시국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할까. 향토 성주 출신임에도 서울서 열리는 심산 서거 60주년 추모특별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2주 전 대학 서클 선후배 모임에서 교수로 퇴직한 대선배가 칼럼을 쓰는 데 참고하라며 '시대에 맞서 싸운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이란 추모도록집을 나에게 건넸다.

심산 추모전은 서울강북구청과 민족문제연구소 주최로 작년 12월14일 개막, 이달 말까지 강북구 수유동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날 그 선배는 별호(別號)인 '벽옹(躄翁)'(앉은뱅이노인)과 관련된 일화와 '가짜 선비론'을 언급하며 심산을 상기했다. 그럼에도 심산을 잘 몰랐던 나는 이번 칼럼 차례가 다가오면서 뒤늦게 도록집을 들춰보게 됐다. 심산의 '국권수호운동, 항일독립운동, 옥중투쟁과 창씨개명 거부, 해방공간의 반탁 통일독립운동, 반독재투쟁과 평화통일운동'이 간략하게 소개돼 있었다.

"아, 이런 분이…!" 나는 너무나 놀랐다. 역사를 좀 안다고 생각한 내가 이런 '큰 별'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 너무 부끄러웠다. 아는 건 겨우 심산이 1919년 유림대표로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대한독립을 호소하는 유림단의 청원서를 제출한 '파리장서사건' 정도였다. 도록집만으로도 놀란 나는 그제야 좀 더 찾아보았다.

'파리장서' 이전 심산은 26세 때인 1905년 을사오적 처단 상소를 올렸다. 1909년 '일·한 합방'을 주장하는 일진회를 성토,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1년 이승만의 위임통치안을 성토했다. 1926년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투척의거를 주도했다. 1927년 상해에서 상해주재 일본 영사관원에 체포돼 대구로 압송됐다. 징역 1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혹독한 고문으로 두 다리가 마비돼 뒷날 '벽옹'이 됐다. 1944년 몽양 여운형과 조선건국동맹을 결성했다. 1945년 8월 건국동맹 남한책임자로 왜관경찰서에 수감됐다. 해방된 날까지 갇혔다가 8월16일 풀려났다. 해방정국에서도 반탁 담화문을 발표했고, 남한만의 단독선거 불참을 선언했다. 이승만 독재정권에서는 이승만 하야 권고 성명, 반독재호헌구국선언을 했다. 5·16 다음 해인 1962년 5월10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팔십 평생 시대의 불의에 맞선 삶이었다.

우리는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 의사, 백범 김구 선생은 누구나 잘 알고 존경한다. 도산 안창호, 만해 한용운, 단재 신채호, 우당 이회영 선생도 잘 알고 존경한다. 그런데 심산은 잘 모르고 있다. 여배우 김창숙은 잘 알아도 심산 김창숙은 잘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김수환 추기경도 심산상(제13회)을 받고서야 심산을 알게 됐고 묘소를 찾아가 큰절을 두 번 올렸다고 한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았던 심산, 향토 출신을 떠나 이토록 민족 독립과 통일을 위해 항일 반독재투쟁과 평화통일운동을 말과 행동으로 일관한 분이 어디 있으랴.

부일단체 일진회를 성토하면서 "이런 역적들을 성토하지 않는 자 또한 역적이다!"라는 일갈은 현재에도 되새길 말이다. "성인의 글을 읽고도 성인이 세상을 구제한 뜻을 깨닫지 못하면 그는 가짜 선비이다!"라는 심산의 고함이 메아리친다. 현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교수, 언론인… '선비' 축에 속한다면 모두 반성할 일이다. "나는 가짜 선비인가."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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