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그단새] 문예반이 사라졌다

  • 안도현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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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30  |  수정 2023-05-30 06:50  |  발행일 2023-05-30 제23면

[안도현의 그단새] 문예반이 사라졌다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시인

1977년 대건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문예반에 가입했다. 학교 별관 귀퉁이에 '문예실'이라는 팻말을 단 동아리방이 있었고, 그곳을 드나들면서 선배들로부터 귀동냥으로 문학을 배웠다. 시화전을 준비하는 일은 가장 큰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시를 제출하면 선배들이 내키는 대로 밑줄을 그었고, 시화를 직접 제작했고, 행사 포스터를 붙이기 위해 대구 시내 고등학교를 모두 순회했다. 서울이나 경주에서 백일장이 열리면 몰려갔다. 수원, 대전, 부산, 울산에서 온 친구들하고도 무슨 거대한 작당을 하는 것처럼 어울렸다. 이런 우리를 묵묵히 지켜보고 계시던 시인 도광의 선생님이 우리의 든든한 '빽'이었다. 백일장이나 문예 공모전에 수상하는 횟수가 늘면서 시인이 되기를 꿈꿨고, 그렇게 꿈꾸기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팽개칠 수 없는 운명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문예반은 지금 사라졌다. 교육부는 2009년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교육과정을 편성하였고, 2015년에 이를 개정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다시 개편하면서 '문예반'이라는 용어를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특별활동으로서의 문예반 개념은 학교 현장에서 폐기되고 동아리 활동의 하나로 문학 동아리 개념이 등장하였다. 동아리 활동은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어 대학 입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문예반은 거기에 참여하는 학생들에 의해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는 동아리였다. 글쓰기는 여러 예술의 장르 중에 자신을 벗어나 빠져드는 열광이 가능한 영역이다. 문예반은 글쓰기가 중심 활동이 되는 동아리며, 글쓰기가 자율성에 기반을 둔 행위라는 점이 우리를 들뜨게 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우리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표현의 성취감은 성장기의 우리에게 교과교육에서 경험하지 못한 '아우라'로 작용했던 게 분명하다.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학교현장에서는 창의적 글쓰기보다 실용적 글쓰기가 더 강조된다. 실용적 글쓰기는 대체로 고등학교에서 입시를 위한 '자기소개서 작성'으로 국한되는데 이는 면접관의 시야에 들어가서 주목받는 글을 쓰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좋은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글쓰기 방법론을 익혀야 하고, 이 과정에서 수정과 교정이라는 첨삭지도가 뒤따르게 된다. 글쓰기의 기술적인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글 자체가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현실적인 목적이 존재하는 한 창의적 글쓰기는 실용적 글쓰기의 하부 단계로 전락할 뿐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자발성을 중시하는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가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이라는 것은 자명해진다.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설정한 문학 동아리가 특별활동으로서의 문예반 활동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유도 분명해진다. 학습자의 요구는 입시의 전형 방식에 따라 수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에 관여하되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 체계를 도입할 수는 없을까. 문학 동아리 활동이 입시를 위한 포트폴리오 작성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비교과 영역의 동아리 활동을 중시하는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학생들의 교내 활동은 물론 교외 활동의 성과도 평가 대상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글쓰기를 지도할 수 있는 전문 역량을 갖춘 교사가 많지 않으므로 지역사회 문인을 강사로 초빙해 활용하는 방안은 어떨까.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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